ADVERTISEMENT

‘이태원 참사’ 소방공동 대응 요청 2건 종결 이유는…“환자 발생 안 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난달 29일 사고 발생 전 경찰이 접수한 112 신고 중 ‘코드 0’(최단 시간 내 출동) 및 ‘코드 1’(우선 출동) 두 건에 대해 소방에 공동 대응을 요청했지만, ‘구급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접수 2분 만에 사건 종결을 통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용산소방서는 사고 당일 오후 6시부터 이태원역과 해밀턴호텔 인근에 16명을 배치했지만, 아무런 활동도 없이 첫 희생자가 나오기 직전인 오후 10시에 현장에서 철수한 사실도 드러났다. 재난 사고의 긴급구조기관인 소방에서 적극적으로 위험성을 파악해 대응했다면 환자 이송과 초기 대응의 ‘골든타임’을 확보할 수 있었을 수 있었단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에서 압사 사고로 심정지 환자가 대규모로 발생했다. 사진은 사고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소방구급 대원들이 현장을 수습하고 있는 모습. 우상조 기자

지난달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에서 압사 사고로 심정지 환자가 대규모로 발생했다. 사진은 사고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소방구급 대원들이 현장을 수습하고 있는 모습. 우상조 기자

 7일 소방 및 경찰 등에 따르면 소방청은 사고 당일 오후 10시 15분 최초로 119 구조 신고를 접수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경찰로부터 112 신고센터로 접수된 구조 신고에 대해 공동 대응 요청을 받았지만, 현장에 출동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했다.

 소방청이 경찰로부터 받은 공동대응 요청 건은 오후 8시 33분과 오후 9시에 접수된 112 신고 건이었다. 오후 8시 33분 신고는 코드1, 오후 9시 신고는 코드0으로 분류된 ‘출동 필요 사건’이었다. 각각 “사람들 지금 길바닥에 쓰러지고 막 지금 너무 이거 사고 날 것 같은데, 위험한데”, “지금 여기 사람들 인파들 너무 많아서 지금 대형 사고 나기 일보 직전이에요 다 밀려 가지고요 여기 와서 통제하셔야 할 거 같은데요” 등 인파 사고 위험을 우려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소방청은 신고자 통화 후 112상황실에 “인파가 많아서 위험하니 통제만 해달라고 한다”며 환자 발생 사고가 아니기 때문에 구급차가 필요한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경찰에 통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오후 10시 13분에는 위험한 상황임을 알리는 구조 전화가 걸려왔지만 묵살한 사실도 드러났다.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공개한 ‘119 신고자 통화 녹취록’에 따르면 사고 당일 오후 10시 13분 한 신고자는 “이태원…죠. 숨이…막혀가지고…○○아”라며 119에 신고했다. 이 신고를 받은 접수자가 “여보세요”, “전화가 잘 안 들린다”라고 여러 차례 대화를 시도했으나 소음 등으로 신고자와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고, 결국 해당 신고 내용은 ‘끊김’으로 종결 처리됐다.

 그동안 소방은 오후 10시 15분에 접수된 전화가 119에 접수된 첫 신고라며, 그 이전에는 신고가 없었다는 주장을 펴왔다. 이 때문에 소방의 은폐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이일 소방청 119대응국장은 7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평상시 대화처럼 (목소리에) 생기가 있었고, 압착되는 상황은 아닌 것으로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 호텔 부근 도로에 시민들이 몰려 있는 모습. 독자제공.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 호텔 부근 도로에 시민들이 몰려 있는 모습. 독자제공. 연합뉴스

 또 용산소방서 소속 소방공무원과 의용소방대원들이 사고 당일 밤 해밀톤호텔과 이태원역 인근에 배치됐지만, 현장 상황에 대한 별다른 보고 없이 사고 직전에 철수 한 것으로 드러났다.

 용산소방서는 지난달 29일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화재 사고에 대비해 의용소방대원 12명과 소방공무원 4명을 이태원역과 녹사평역, 엔틱가구거리에 배치했다. 소방공무원 4명은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해밀턴호텔 앞에서 4시간 동안 대기했으며, 의용소방대원은 오후 6~8시와 오후 8~10시 시간대별로 두 조로 나눠 6명씩 이태원역과 녹사평역 사이, 그리고 이태원역과 엔틱가구거리 사이를 순찰했다. 화재 사고에 대비해 이태원역 일대에 설치된 비상용 소방함 5개를 확인하고, 주변 상인 등에게 사용법을 안내하거나 재난 발생에 대응하는 게 이들의 임무였다.

 이는 용산소방서가 핼러윈 데이를 앞두고 대규모 인파 방문에 따른 화재와 안전사고에 대응하고자 지난달 25일 마련한 자체 소방안전대책에 따른 것이다. 이때 작성된 9쪽 분량의 대책 보고서는 화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나 소방인력이 배치된 장소 인근에선 사고 당일 오후 8시부터 압사 사고를 우려하는 112 신고 전화가 다수 걸려올 만큼 대규모 인파가 운집해 위험한 상황이었다. 이날 오후 10시 17분 사고 현장에서 2㎞ 떨어진 용산소방서 119구조대가 출동 지령을 받고 오후 10시 29분에 현장 인근에 도착했는데, 교통 혼잡 등의 이유로 구조대는 도보로 이동해서 상황을 확인한 뒤 오후 10시 42분에 심폐소생술(CPR)을 시작했다. 애초 배치된 16명의 소방인력이 인파 운집으로 부상자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파악해 이를 전파했다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거나 규모를 최소화했을 수 있었단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서울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화재와 같은 재난 예방 차원에서 투입된 것이지 인파가 몰리는 상황을 대비한 것은 아니었다”며 “근무 시점엔 (부상자 발생을) 인지할 만한 부분이 없었다고 하며 인파가 많았던 만큼 시야 확보에도 어려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유관기관 회의 참석 요청도 따로 받지 못했으며 안전 대책은 용산소방서에서 자체적으로 마련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현장에서 재난 사고 대응의 재량권을 가질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보통 재난 상황에서 소방이 지방자치단체의 지휘 감독을 받게 된다”며 “소방에서도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지자체와 대응 매뉴얼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다만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화재 예방 관련 대비는 소방에서 하는 게 맞지만, 그 밖에 모든 안전 영역을 소방에서 다 해야 한다고 말하면 부적절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