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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증가속도 세계 2위…코너 몰리는 국내 기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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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한국의 기업부채 증가속도가 올해 2분기 기준 세계 주요국 중 두 번째로 빠른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부채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고금리·고물가에 경기 둔화까지 겹치며 기업의 상환 여건은 악화하고 있다.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내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국제금융협회(IIF)가 최근 발표한 ‘세계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비금융 기업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은 올해 2분기 기준 117.9%를 기록했다. IIF가 비교한 35개국 중 홍콩(279.8%)과 싱가포르(161.9%), 중국(157.1%)에 이어 네 번째로 높았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한국 기업은 부채 비율도 높지만, 증가 속도도 빨랐다. 한국 기업의 부채비율은 1년 전보다 6.2%포인트 늘며 베트남(7.3%포인트)에 이어 부채 증가 속도가 두 번째로 빨랐다. 같은 기간 한국보다 부채비율이 높았던 홍콩(-24.9%포인트)과 싱가포르(-7.8%포인트), 중국(-0.4%포인트) 등은 부채비율이 감소했다. 부채 비율 순위도 같은 기간 6위에서 4위로 뛰었다.

한국 기업의 부채 증가 속도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기업신용(2476조3000억원)은 1년 전보다 10.8%가 증가했다. 기업신용 증가율은 지난해 말 두 자릿수(10.5%)를 넘어선 뒤 좀처럼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고 있다. 반면 가계신용 증가율은 지난해 2분기 10.5%로 정점을 찍은 후 올해 2분기 3.2%로 떨어졌다.

특히 최근에는 회사채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던 대기업까지 은행 창구로 몰리며 기업대출이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1~9월 기업대출은 89조8000억원이 늘어났다. 특히 대기업 대출은 27조9000억원이 늘며 지난해 연간 대출 증가액(7조7000억원)을 넘어섰다.

기업 대출 증가세는 최근에도 이어지고 있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기업대출 잔액(지난달 27일 기준)은 703조7512억원으로 지난 9월 말보다 8조8522억원 증가했다. 올해 5대 시중은행에서 늘어난 기업대출 규모는 67조8633억원으로 지난해 전체 증가액(60조2596억원)을 넘어섰다.

빚이 늘어도 매출이나 영업이익이 그만큼 증가하면 문제가 없다. 다만 최근에는 상황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기업대출의 질도 좋지 않다. 은행권보다 금리가 높은 비은행의 대출이 더 빠른 속도로 늘었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은행권 기업대출은 1년 전보다 10.3% 늘었다. 반면 비은행의 기업대출은 28.3%가 늘며 증가속도가 훨씬 빨랐다. 저축은행 등 비은행권의 경우 대출금리가 시중은행보다 훨씬 높다. 저축은행의 기업대출 평균 금리는 연 8.01%(9월·신규 취급액 기준)로 은행(연 4.66%)보다 3.35%포인트 높다. 게다가 기업대출의 경우 금리 인상에 취약한 변동금리 비중이 크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따르면 은행권 기업대출 중 변동금리 비중은 9월 말 기준 72.7%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출금리는 빠른 속도로 뛰고 있다. 은행권 기업대출 평균금리(잔액 기준)는 지난 9월 연 4.24%로 한 달 사이 0.24%포인트가 뛰었다. 2015년 2월(연 4.3%)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계기업이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은은 지난 9월 금융안정상황 보고서에서 한계기업 비율이 지난해 말 14.9%에서 올해 말 18.6%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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