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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후 또 200명 넘는 사상…핼러윈데이 이태원 압사참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22년 10월 30일 새벽 서울 용산구의 이태원 압사참사 현장.

2022년 10월 30일 새벽 서울 용산구의 이태원 압사참사 현장.

“야, 나 겨우 살아나왔어”

지난 29일 밤 10시 25분쯤 서울 지하철 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 길거리에서 한 여성이 주저앉으며 소리쳤다. 옆에 있던 그의 친구는 행인들을 향해 울먹이며 “119에 전화 좀 걸어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 대부분은 대형 사고를 눈치채지 못 하는 듯했다. 걸음을 내딛기 어려울 정도로 인파가 몰린 가운데 클럽 등 곳곳에서 음악 소리가 크게 울려 퍼져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한 행인은 “사람이 실려가는데 좀비 분장을 하고 있으니까 처음엔 무슨 상황극을 하는 줄 알았다”라고 말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과 소방이 현장에 도착해도 마찬가지였다. 행사를 즐기던 일부 시민은 집단으로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추기도 했다.

결국 밤 11시쯤 겨우 현장이 통제되면서 참사 현장의 실태가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여기저기서 비명과 울음 소리가 음악 소리를 뚫고 나왔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역대 최대 압사 사고…“사람들 대여섯 겹 쌓여”

2014년 4월 16일 300여 명이 사망·실종된 ‘세월호 참사’ 이후 8년여 만에 다시 100명 넘는 사람이 집단으로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핼러윈 데이(10월 31일)를 이틀 앞두고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서 대규모 행사가 진행되는 도중 벌어진 압사 사고다. 국내에서 벌어진 압사 사고 중에선 최대 규모다.

30일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비극은 전날(29일) 밤 10시 15분쯤 일어났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해밀턴 호텔 서쪽 인근에 있는 5m 너비, 50m 길이의 내리막길에서였다. 경사 진 좁은 공간에 핼러윈 데이를 즐기려는 젊은이들이 빽빽하게 몰린 게 원인이었다. 골목의 동편은 해밀턴 호텔의 외벽으로 막혀 있어 빠져나갈 틈이 없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만원 전철 안에서처럼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에서 사람들이 한쪽으로 몰리기 시작했고, 갑자기 도미노처럼 사람들이 순차적으로 쓰러졌다. 한 목격자는 “순식간에 인파가 무너졌고, 대여섯 겹으로 쌓였다”라고 말했다.

현장에 있었다가 다행히 살았다는 유튜버 선여정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당시 뒤에서 ‘야 밀어’라고 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앞뒤 무리가) 서로서로 힘을 가하며 밀었다”라며 “앞뒤 양쪽에서 압박이 오며 눈앞이 하얘지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마침 같이 간 친구가 저보다 힘이 센 편이라 저를 잡아줬다”라며 “친구가 아니었다면 진작 기절해서 땅에 쓰러졌을 것”이라고 했다.

현장에서 물러선 채 지켜보던 이선영(38)씨는 “20~30명 정도가 맨바닥에 드러누워 있었고, 경찰과 소방 당국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나서서 심폐소생술을 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라고 밝혔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최소 154명 사망, 132명 부상…“대부분 1020, 여성”

이 압사 사고로 이날 오후 9시 현재까지 154명이 사망했고, 132명이 부상했다. 사망자 중 여성은 98명으로 남성(56명)보다 배 가까이 많다. 상대적으로 체격이 작고 버티는 힘이 약한 여성들이 더 큰 피해를 봤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연령별로 보면 10~20대가 가장 많았다. 국적별로는 외국인이 26명에 달한다.

안타까운 사연도 잇따른다. 오스트리아 교포 김모(30·남)씨는 부모님과 모국어로 대화하기 위해 연세대 한국어학당에 유학 왔다가 참변을 당했다고 한다.

부상자 가운데엔 36명이 중상, 96명이 경상을 입었다. 중상자 중에서 추가로 사망자가 나올 수도 있다.

약 65㎏ 몸무게의 성인 100명에 눌리는 사람은 18t의 압력을 받고, 폐에 공기가 전달되지 않아 결국 산소 부족으로 사망에 이른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심정지가 온 직후 심폐소생술을 통해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은 4분가량으로 알려졌지만, 소방당국은 인파를 뚫느라 골든타임을 넘겨 현장에 도착했다.

이날 참사는 예고된 것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3년 만에 ‘노 마스크’로 핼러윈 데이 기념행사가 열린 탓에 과도한 인파가 몰렸지만, 관계당국이 안전 표지판이나 안전 요원을 배치하는 등 안전 관리를 하지 않아 화를 불렀다고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지적했다.

사고 전날에도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다는 목격담도 있다. 한 시민은 “하루 전인 28일 밤에도 골목길이 가득 찼다”라며 “일부 여성들이 인파에 떠밀려 넘어지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소방당국은 사상자들을 서울과 경기도의 병원 40곳가량으로 나눠 옮겼다. 한남동 주민센터 3층에선 실종자 신고를 받고 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경찰, 업무상과실치사상에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수사 검토

경찰은 서울경찰청에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사고 수습과 함께 대대적인 수사를 예고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만일 주변 업소 등에서 사고의 원인을 제공했다면,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참사에 마약류 관련 범죄가 연관됐는지도 규명 대상이다.

검찰은 대검찰청에 사고대책본부를 구성하고 검시(檢屍)에 집중하는 중이다. 검시란, 사람의 사망이 범죄의 영향인지 변사체를 조사하는 일로 검사의 권한이다. 검찰은 신속하게 시신의 신원을 확인한 뒤 유족의 의견을 존중하며 부검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대형참사에 대한 수사 권한이 있는 경찰로부터 협조 요청이 들어오면 검찰은 법리 검토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검찰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뿐만 아니라 중대재해처벌법상 중대시민재해에도 해당되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서울 용산구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이날(30일)부터 다음 달 5일 자정까지 국가 애도기간으로 정했다. 서울광장 등엔 합동분향소가 설치된다.

윤 대통령은 담화문을 통해 “국정 운영의 최우선 순위를 사고 수습과 후속 조치에 두겠다”라며 “장례 지원과 더불어 가용 응급의료체계를 총가동해서 부상자에 대한 의료 지원에 만전을 기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사고의 원인을 철저하게 조사해서 향후 동일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으로 개선하겠다”라고 했다. 또한 핼러윈 행사뿐만 아니라 지역 축제까지 긴급 점검을 실시하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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