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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로 지운듯 잿더미된 과일"…대구 매천시장 상인 눈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6일 대구시 북구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매천시장) 농산A동 건물이 전날 화재로 크게 그을려 있다. 김정석 기자

26일 대구시 북구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매천시장) 농산A동 건물이 전날 화재로 크게 그을려 있다. 김정석 기자

26일 오전 대구시 북구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매천시장) 차량 출입구. 전날 화재가 발생한 건물과 다소 거리가 떨어져 있는데도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과일과 채소 등 상품을 싣고 내리는 화물차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사이로 과일을 주로 취급하는 청과시장 농산A동 건물이 보였다. 건물은 대형 화재가 휩쓸고 가 처참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매천시장 대형 화재

연면적 1만6504㎡ 규모인 이 건물에 25일 오후 8시27분쯤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했다. 주민 신고를 받은 소방당국은 대응 2단계를 발령하고 소방차 89대와 소방대원 248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에 나섰다. 대응 2단계는 화재가 발생한 지역에 인접한 2~5개 소방서 소방력이 총동원되는 상황을 말한다.

불은 지하 1층, 지상 2층 구조의 농산A동에서 발생했다. 농산A동에는 1층에 69개, 2층 83개 등 각종 점포 152개가 밀집해 있다. 이 중 약 70곳의 점포가 불에 탄 것으로 추정된다. 소방당국은 이날 오후 9시34분쯤 큰불을 잡았고 화재 3시간30분 만인 오후 11시59분쯤 진화를 완료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재산피해가 막대할 것으로 예상한다.

26일 대구시 북구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매천시장) 농산A동 건물 내부가 전날 화재로 다 탔다. 김정석 기자

26일 대구시 북구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매천시장) 농산A동 건물 내부가 전날 화재로 다 탔다. 김정석 기자

화재 다음날 오전 한 30대 여성 상인이 통제선 바깥에서 눈물을 흘리며 건물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상인은 불에 탄 점포 한 곳을 가리키며 “저곳이 내 가게”라고 흐느꼈다. 그는 “경매를 마친 뒤 과일 박스를 잔뜩 쌓아놨었는데 모두 불에 타버렸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게에 기르던 개도 있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불탄 가게 바라보며…“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경찰이 통제하고 있는 건물은 멀리서 봐도 내부가 완전히 불에 탄 모습이었다. 철골 구조물이 불에 녹아 내려앉아 있었고 외관도 심한 그을음에 덮여 원래 모습을 알아보기 어려웠다.

26일 대구시 북구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매천시장) 농산A동 건물 외부가 전날 화재로 그을려 있다. 김정석 기자

26일 대구시 북구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매천시장) 농산A동 건물 외부가 전날 화재로 그을려 있다. 김정석 기자

농산A동에서 과일을 취급하는 정옥진(59)씨는 “건물 출입이 통제돼 내 가게가 어떤 상태인지도 못 봤다”며 “향후 수습 계획도 들은 것이 없어 답답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수산물 유통업을 하는 민승욱(37)씨는 “어제만 해도 과일 박스들이 건물 내부에 가득 쌓여 있는 모습을 봤는데 지금 보니 마치 지우개로 지운 듯이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다”고 말했다.

소방당국은 농산A동이 불에 잘 타는 샌드위치 패널 구조로 이뤄져 있고 여러 점포가 비닐 소재로 칸막이를 만들어 밀집해 있어 불길이 더욱 빠르게 번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매천시장은 경매공간이 부족하고 건물이 낡아 홍준표 대구시장이 달성군 하빈면으로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또 이번 화재가 김장철을 한 달여 앞두고 발생하면서 배추 등 김장 관련 품목을 판매하는 상인들의 타격이 클 것으로 우려됐지만 농산A동은 과일과 버섯을 주로 취급하고 있어 김장철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소방, 합동 감식 벌여 화재 원인 조사 나서

경찰과 소방은 합동 감식을 통해 정확한 화재 원인과 소방 시설 작동 여부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지난 25일 오후 대구 북구 매천동 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대형 화재가 발생해 소방 당국이 진화에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5일 오후 대구 북구 매천동 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대형 화재가 발생해 소방 당국이 진화에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비수도권 농수산물도매시장 중 최대 규모인 매천시장에 대형 불이 나면서 대구 지역 농산물 유통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매천시장의 지난해 거래액은 9280억원에 달했다.

한편 매천시장은 9년 전인 2013년 8월 29일 새벽에도 큰 화재가 발생, A동 건물 점포 80곳 가운데 32곳이 피해를 보았다. 당시 소방당국이 추산한 재산 피해액은 10억원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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