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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부친 묘' 6000평 성역화했다…'칼잡이' 자오러지 생존법 [후후월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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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시진핑 3기 정치국 상무위원 6인 분석 ②자오러지

 중국 공산당 전국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으로 등극할 것으로 예상되는 자오러지가 지난 23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AFP=연합뉴스

중국 공산당 전국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으로 등극할 것으로 예상되는 자오러지가 지난 23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AFP=연합뉴스

"시진핑의 가장 충실한 수호자이자 심복(心腹)"  

자오러지(趙樂際·65) 중국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기율위)서기에 따라붙는 수식어다. 23일 중국 CCTV 등에 따르면 현재 서열 6위인 자오러지는 서열 3위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상무위원장 자리에 오를 전망이다.

실제로도 자오는 중국 공산당 제20기 제1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1중전회)에서 선출한 상무위원 7명 가운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과 리창(李强) 상하이 서기(총리 예상)의 뒤를 이어 세 번째로 입장했다. 시진핑 2기 상무위원 중 단 두 명만이 3기에 함께 입장했는데, 그 중 하나가 자오러지다.

시진핑 1기 '인사 설계자'…충성심 과시 

한 때 중앙 정계에서 '무명'이던 자오가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자리까지 오른 건 시 주석에게 충성심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시진핑 집권 1기 때 자오는 '인사 설계자'로서 맹활약했다. 중앙조직부장을 맡아 정부 부처, 국영기업, 언론, 대학에 이르기까지 4000여명의 인사를 결정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앙조직부장은 그림자처럼 보이지만 강력한 존재"라고 평가했다.

중앙조직부장으로 일하던 시기의 자오러지. 중앙포토

중앙조직부장으로 일하던 시기의 자오러지. 중앙포토

이 과정에서 자오는 후진타오(胡錦濤)와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세력을 밀어내고 시 주석의 친위 세력을 곳곳에 등용해 '시진핑 천하'를 설계하는 핵심 역할을 했다. 보즈웨 XIPU 차세대 발전연구원 부원장은 "자오는 시 주석의 간부 임명에 순응함으로써 충성심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2기 때는 반부패 사령탑…中초대 인터폴총재도 '아웃'

시진핑 2기 때 자오러지는 반부패 사령탑 자리에 올랐다. 2017년 취임하자마자 그는 서슬 퍼런 사정의 칼날을 휘둘렀다.

자오의 '칼 끝'은 공산당 엘리트와 고위급 인사들로 향했다. 2018년 한 해에만 해외로 도피했던 중국인 1000여 명이 중국에 다시 돌아왔는데 이 중 307명이 공산당 출신이거나 공무원이었다.

시진핑 시기 반부패 사령탑으로 일했던 자오러지(왼쪽)와 왕치산. 왕치산은 시진핑 1기에서 기율위 서기를 맡았다. 자오러지는 왕치산의 후임으로 시진핑 2기에서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가 됐다. 사진 트위터 캡처

시진핑 시기 반부패 사령탑으로 일했던 자오러지(왼쪽)와 왕치산. 왕치산은 시진핑 1기에서 기율위 서기를 맡았다. 자오러지는 왕치산의 후임으로 시진핑 2기에서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가 됐다. 사진 트위터 캡처

2018~2020년 중국 당국은 반부패 운동의 일환으로 해외 도피자 3848명을 잡아들이고 '불법 자금' 100억 위안(약 1조9800억원)을 환수했다고 주장했다. 더 디플로맷은 "해외 도피자들을 귀국시키는 작전은 범죄자들이 대상이지만 반체제 인사와 정적들을 대상으로 전개되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자오러지가 사정 당국에 있던 2018년 9월 멍훙웨이 중국 초대 인터폴 총재가 중국 방문 중에 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결국 멍은 2020년 징역 1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일각에서는 자오가 멍을 숙청한 건 '호랑이도 파리도 때려잡는' 시진핑의 반부패 사정의 완성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멍훙웨이가 시진핑 1기 반부패 수사 대상이었던 저우융캉의 측근이었기 때문에 잔존세력을 완전히 제거했다는 것이다.

대변인 자처…"시진핑 이익이 당의 이익" 

자오는 시진핑 주석의 '대변인'을 자처하면서 말과 글을 통해 시 주석을 추켜세웠다. 자오는 공산당 기관지에 시 주석의 지방 감찰단 활동을 지지하는 글을 올리며 중앙 정부의 지방 감찰체제를 적극 옹호했다.

2018년 개헌을 통해 헌법 서언(序言)에 추가된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에 대해서는 "현재 중국 공산당원이라면 누구나 시진핑 사상 학습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중국 헌법에 지도자 이름이 포함된 사상이 명기된 것은 마오쩌둥 이래 시진핑이 처음이었다.

일각에서는 "자오러지는 시진핑과 함께 하지 않으면 발언하지 않고, 일단 발언했다 하면 시진핑과 관련된 말 외엔 다른 말을 하는 법이 없다"는 평가를 내린다.

중국 지도자 분석에 독보적인 밍징(明境)출판사가 2015년 발간한『시진핑 신군(新軍)』에는 "자오러지는 '시진핑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곧 당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구절이 나온다.

시진핑 아버지 기념관까지 세우며 '성역화'  

자오는 시진핑 개인뿐 아니라 가족까지 성역화하면서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애썼다.

자오는 산시성 당서기로 있던 지난 2007년, 시진핑의 아버지이자 공산당 원로였던 시중쉰(習仲勳)과 시진핑 부자(父子)의 고향(푸핑현)에 있던 무덤을 거대한 능묘로 개조했고 기념관도 세웠다.

시중쉰 기념관의 모습. 사진 씨트립 홈페이지 캡처

시중쉰 기념관의 모습. 사진 씨트립 홈페이지 캡처

묘소와 같이 있는 시중쉰 기념관의 면적은 약 7000㎡이며 주변 전용도로와 주차장까지 합치면 2만㎡(약 6050평)가 넘는다. 고대 황제의 무덤과 견줄만한 이 묘소를 시진핑의 어머니인 치신(齊心)이 무척 좋아해 수 차례 방문했다는 후문이다.

자오는 시 주석이 15살 때부터 7년간 지식청년 생활을 한 옌안시 량자허(梁家河)에도 예산을 쏟아부으며 성역화에 나섰다. 출생지는 칭하이(靑海)성이지만 호적은 시 주석과 같은 산시(陝西)성이라는 점도 둘의 '연결고리'다.

가는 곳마다 최연소 '승승장구'...GDP 늘리는 귀재

인구밀도가 낮은 서북 오지인 칭하이성에서 태어난 자오는 17세 때 문화대혁명(문혁)을 겪었다. 칭하이성 구이더(貴德)현에서 하방(下放) 생활을 했다.

1977년 문혁 후 첫 대학생으로 베이징대 철학과에 입학해 1980년 졸업했다. 다시 칭하이로 돌아온 그는 칭하이 상업청 판공실에서 문서수납 겸 연락 담당을 맡았다. 1984년~1986년에는 냉장고, TV 등을 만드는 가전회사에서 일하며 현장 관리직도 겸했다.

그 뒤 승진을 거듭하던 자오는 1997년 칭하이성 성도인 시닝(西寧)시 서기로 승진했다. 2000년 그는 마침내 칭하이성 성장이 된다. 42세로 당시 중국 최연소 성장이기도 했다. 2003년 후진타오 시대로 들어서며 칭하이성 서기가 됐을 때도 최연소 성서기 기록을 세웠다.

자오러지는 시 주석의 장기 목표인 공산당원 기율 강화와 빈곤 탈출이라는 두 가지를 실행하기에 최적화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AP=연합뉴스

자오러지는 시 주석의 장기 목표인 공산당원 기율 강화와 빈곤 탈출이라는 두 가지를 실행하기에 최적화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AP=연합뉴스

자오는 빈부격차 해결을 위해 2000년대 시작된 중국의 서부 대개발 사업에 주목했다. 자오가 경제구 건설에 박차를 가하면서 칭하이성은 빠르게 발전했다. 2000년 263억 위안(약 4조5000억원)이던 칭하이 성의 국내총생산(GDP)은 6년 만에 641억 위안(약 11조원)이 됐다.

그렇다고 경제발전에만 몰두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환경보호에도 적극적이었다. 칭하이성에 있는 3강(장강, 황하, 동남아 메콩강 상류부)의 발원지에 자연보호구를 설치하는 데 관여했다. 이 과정에서 중앙 정부 예산도 수십 억 위안 받아냈다.

그의 재임 시절, 인구의 절반이 소수민족인 칭하이성에서 테러 등 심각한 소수민족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것도 출세가도에 보탬이 됐다.

2007년 산시성 서기가 된 그는 산시성의 GDP도 2012년 이임 때까지 3배로 늘려놨다. 산시성을 GDP가 1조 위안을 넘는 성급 행정구를 일컫는 '1조 클럽'에도 입성시켰다. 재임 기간 원촨대지진을 겪어 경제가 타격을 입었음에도 거둔 성과다. 자오는 산시성 시안 교통대학 학생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학생 식당은 맘대로 가격을 인상해선 안 된다"고 민생 안정도 챙겼다고 한다.

브루킹스 중국연구소는 "자오는 시 주석의 장기 목표인 공산당원 기율 강화와 빈곤 탈출이라는 두 가지를 실행하기에 최적화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베이징대 재학 당시 그를 아는 동급생들은 자오를 동서고금의 철학책을 닥치는 대로 읽는 독서가로 기억했다. 특히 제왕학과 관련된 중국 고전을 좋아했다 한다. 제왕학에 관심이 많던 그가 시진핑이란 '21세기 제왕'에 꽂힌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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