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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켄지 스콧의 특별한 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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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안착히 글로벌협력팀장

안착히 글로벌협력팀장

지난주 초 미국 걸스카우트연맹이 들썩했다. 난데없이, 그것도 단체가 아닌 한 개인으로부터 8450만 달러(약 1200억원)라는 걸스카우트 역사상 최대 금액을 기부받았다. 팬데믹 이후 회원 감소와 재정난 심화로 허덕여온 이 단체를 다시 일으킬 액수라는 평가다. 통 큰 기부자는 매켄지 스콧,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전 부인이다.

스콧의 기부 활동은 베이조스와 이혼한 2019년부터 시작됐다. 위자료 380억 달러(당시 환율로 약 40조원)의 절반을 살아 있는 동안 도움이 필요한 곳에 조건 없이 나눠주겠다는 약속(The Giving Pledge)을 꾸준히 이행해오고 있다.

전 남편인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로부터 받은 위자료 일부로 17조원에 해당하는 돈을 각종 단체에 기부한 매켄지 스콧(오른쪽). [연합뉴스]

전 남편인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로부터 받은 위자료 일부로 17조원에 해당하는 돈을 각종 단체에 기부한 매켄지 스콧(오른쪽). [연합뉴스]

스콧은 지금껏 1200여 단체에 총 120억(약 17조원) 달러를 기부했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이런 기부 형태는 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통상 자선가들은, 예컨대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 빌 게이츠처럼, 재단을 세우고 관련 조직을 만드는 등 기부금 집행 절차에 여러 조건을 제시하는데 스콧은 사무실조차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팀을 통해 사전 조사만 하고 그냥 ‘쿨’하게 기부금을 쾌척한다는 것이다. ‘돈다발’을 받은 단체 중에는 당초 기부금 신청을 한 적도 없어 스콧 측의 기부 메일을 사기스팸으로 보고 삭제해버렸다는 일화도 있다.

스콧은 1992년 프린스턴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작가를 꿈꾸었다. 우선 돈을 벌기 위해 뉴욕의 한 투자회사 행정직으로 입사했고 옆 사무실의 수석 부사장이었던 대학 동문 베이조스를 만난다. 두 사람은 사귄 지 3개월 만에 약혼하고 1994년 결혼과 동시에 동반 퇴사를 감행했다. 스콧이 운전하는 볼보 차량으로 미국 횡단을 거쳐 시애틀에 정착한 뒤 세계에서 가장 긴 남미의 강 이름을 딴 아마존을 설립한다.

아마존 최초의 직원이자 회계 및 비서 역할을 맡았던 스콧은 예나 지금이나 공개 행보를 꺼리는데 2013년 한 인터뷰에서 인생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가 일생에서 가장 걱정하는 것, 우리를 가두는 느낌을 주는 것, 우리의 실수, 우리가 겪는 불행, 사고, 역설적인 일, 이런 것들이 결과적으로 뒤돌아봤을 때 가장 감사할 일이다. 바로 그것들이 우리가 갈 곳으로 인도해주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아버지의 사업부도를 경험한 그녀의 인생철학과 삶에 대한 태도를 엿보게 해주는 대목이다.

스콧은 자신의 블로그에 이런 글도 남겼다. “누군가를 돕는 일은 우리 모두를 돕는 일이다(Helping any of us can help us all)”.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고 있다. 기부와 모금의 계절이 다가오는 요즘 다시금 곱씹을 말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