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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간첩신고 홍보도 맡은 카카오…협업 정부기관 무려 150곳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취재진과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취재진과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사실상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국가 기간 통신망과 다름이 없는 것이고….”(17일 윤석열 대통령)

지난 15일 판교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 직후 국민들의 눈길을 끈 건 윤석열 정부의 대응 태도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화재 이틀 만인 지난 17일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카카오 관련 질문이 나오자 “사실상 국가 기간 통신망”이라고 지칭하며 범정부 차원의 신속 대응을 주문했다. 같은 날 오후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도 카카오를 향해 “책임 방기”와 같은 강경한 표현을 쓰며 “플랫폼에 이상이 생길 경우 시스템리스크로 확산될 수 있다”고 질책했다. 이튿날인 18일엔 한덕수 국무총리까지 나서 “(카카오 사태가) 국가 안보에 치명적일 수 있다”고 직격했다.

왜 이런 발언이 쏟아졌을까. 온라인 플랫폼을 장악한 카카오가 멈춘 사이 메신저·뱅크·택시·지도 등 국민 실생활까지 상당한 타격을 입은 데 대해 행정 책임자로서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정부 입장에서도 행정 업무에 상당한 타격을 초래할 사태였다는 게 23일 국민의힘 윤두현 의원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나타나 있다. 이에 따르면 카카오에 업무를 위탁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정부기관은 현재 150개에 달한다. 대한민국 정부 공식채널은 물론 행정안전부·법무부·국방부 등 주요 부처 상당수가 카카오 계열사에 업무를 위탁하고 있었다. 일반 국민뿐만 아니라 군인이나 공무원의 개인정보도 카카오에서 유통돼 “사실상 국가 기간 통신망”이라는 평가가 적절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카카오톡으로 알림 채널을 운영 중인 정부기관 중 일부. 카카오톡 캡처

카카오톡으로 알림 채널을 운영 중인 정부기관 중 일부. 카카오톡 캡처

정부가 카카오에 가장 많이 맡긴 업무 중 하나는 인증 서비스였다. 2020년 말 공인인증서가 폐지되고 행정안전부가 공공 분야 전자서명 확대를 선언한 뒤 ‘카카오 인증서’가 여러 정부 부처에서 주요 인증 사업자로 활용되고 있다. 국세청이 운영하는 홈택스 연말정산 간소화서비스, 국민권익위원회의 ‘국민신문고’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법무부의 수사·재판 정보 제공 플랫폼 ‘형사사법포털’에서도 카카오 인증서를 통해 본인인증을 할 수 있게 됐다. 카카오에 따르면 카카오 인증서는 출시 1년 만인 지난해 12월에 이미 이용자 수 3000만명을 돌파했다.

특히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사태는 카카오가 국가기관을 대신해 인증 기능을 갖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는 인증을 받아야 카페와 식당 등을 이용할 수 있게 했고, 그런 인증을 일반 국민이 편하게 사용하는 카카오나 네이버 등을 활용하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정부기관의 인증 기능을 대체한 것이다. 행정안전부의 행정서비스인 ‘국민비서 구삐’는 카카오톡으로 백신 접종 예약이나 재난지원금 알림 기능을 실시하면서 코로나19 국면에서 카카오가 자연스럽게 국민 삶으로 파고들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

카카오가 사실상 ‘온라인 주민센터’의 역할도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4월부터 행정안전부는 카카오톡으로 통합 민원 포털 ‘정부24’의 주요 공공문서를 신청하고 발급받을 수 있는 ‘카카오톡 지갑 전자증명서’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이 서비스를 통해 카카오톡으로 주민등록등본, 건강보험료 납부확인서, 초·중·고 졸업증명서 등 주요 공공문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 지방세·국세부터 과태료, 전기·수도·가스 요금 고지서도 카카오페이로 받고 납부할 수 있는데, 지난해부터 국세청은 온라인 채널로 세금을 전자고지 받을 경우 ‘1000원 세액공제’ 혜택도 부여하고 있는데, 해당 서비스 알림은 카카오톡이나 문자로 받을 수 있다.

카카오는 병무청·경찰청·방위사업청 등 ‘국가안보’를 담당하는 부처와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었다. 병무청은 2019년부터 현역 입영과 예비군 훈련 통지서를 카카오톡으로 발송하고 있다. 국군의무사령부는 최근 해외 체류 중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자가 격리 중인 국민들을 대상으로 카카오톡을 통한 화상 의료상담을 실시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에서 재난 민원 신고 접수를 위해 운영하는 ‘안전신문고’ 앱은 카카오 지도 서비스와 연동돼 있다. 그 탓에 지난 15일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로 신고 기능이 일시적으로 마비되는 부작용도 겪었다. 국가정보원 역시 카카오톡 채널을 운영하여 홍보 활동을 하고 있다. 국정원 채널에는 간첩 신고 전화번호인 111을 국정원 전화 번호로 표시해 놨다.

15일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재난 등 민원 신고 서비스인 '안전신문고'가 한때 신고 업무가 마비됐다. 해당 서비스는 카카오 지도의 위치 기반 서비스와 연동돼 있다. 안전신문고 홈페이지 캡처

15일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재난 등 민원 신고 서비스인 '안전신문고'가 한때 신고 업무가 마비됐다. 해당 서비스는 카카오 지도의 위치 기반 서비스와 연동돼 있다. 안전신문고 홈페이지 캡처

업계에선 “많은 국민이 이용하는 플랫폼 사업자가 정부기관과 서비스 협업을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윤두현 의원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네이버 역시 126곳의 행정·준행정기관과 연계해 인증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여권에선 독·과점 플랫폼 기업과의 행정업무 협업에 대한 우려도 크다. 양금희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지난 17일 “카카오는 지난 정부 5년간 ‘유니콘 기업 육성’ 기조 아래 막대한 혜택을 누렸다”고 비판했다. 윤두현 의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플랫폼 사업자에게 과도할 정도의 정부 업무를 위탁했다”며 “지금이라도 플랫폼 사업자들이 업무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 파악하고, 최소한의 국가 안보 관련 사항은 다른 대체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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