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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넘버원 ‘짝퉁 왕’, 이번엔 애플에 완전히 패했다?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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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베이가 재채기하면 사과가 떨어진다

화창베이의 한 전자제품 상가. [사진 화샤스바오(華夏時報)]

화창베이의 한 전자제품 상가. [사진 화샤스바오(華夏時報)]

‘화창베이(華强北)’. 광둥성 선전에 위치한 중국 최대의 전자상가다. 사실 화창베이란 이름보다는 ‘산자이(山寨·짝퉁)의 천국’으로 불린다. 이유는 모조품을 주로 판매하는 곳이기 때문.  제품 아이디어만 있으면 전 세계 어느 곳보다 빠르게 제품을 만든다. 짝퉁을 빠르게 베끼는 기술력이 그대로 혁신에 적용되는 이곳, 화창베이다.

절정기의 화창베이는 36개의 도매시장과 2만 6천 개의 상점을 두고 있었고 1년에 1억 5천만 개의 짝퉁 휴대폰을 판매했다. 매출은 3000억 위안(약 60조 원)에 달했다. 심지어 1㎡의 판매대도 1년에 12만 위안(약 2400만 원) 이상의 임대료를 받았고, 그 자리마저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중 가장 많은 모조품이 애플사의 제품들이다. 중국인들은 우스갯소리로 화창베이가 재채기하면 사과(애플)가 흔들린다고 말한다.

애플이 신제품을 출시하기도 전, 화창베이에선 애플의 신제품을 볼 수 있는 광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핸드폰은 물론 액세서리까지도 이곳에서 모두 구매 가능했다. 지난해 초, 애플이 아직 발표하지 않은 '에어팟 3세대'가 화창베이에서 출시될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고 곧 현실이 됐다. 누리꾼들은 “애플은 화창베이의 자회사”라며 “팀 쿡이 하룻밤 사이에 화창베이에 물건을 사러 간 거냐”고 조롱할 정도였다.

[사진 신랑차이징(新浪財經)]

[사진 신랑차이징(新浪財經)]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사과나무가 굳건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화창베이의 배경엔 ‘차오산상방(潮汕商幫)’이 있다. 광둥성 차오산 지역 출신의 상인 집단을 일컫는데, 막강한 재력과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동양의 유대인’이다. 고객이 필요로 하는 어떤 전자 부품이든 차오산상방들은 최단 시간에 제품을 찾아낸다. 실리콘밸리의 한 미국 엔지니어는 “미국에서 전자부품 400개를 찾는 데 두 달이 걸린다면, 화창베이에서는 하루면 된다”고 말할 정도다.

이번 아이폰14 모방 제품 역시 화창베이 상인들이 만들어냈다. 중국이 아닌 미국 버전의 아이폰을 그대로 모방했는데, 가격 우위가 전혀 없다. 아이폰 128G의 미국 버전 공식 가격은 6천 위안, 화창베이에서 만들어낸 제품은 5999위안으로 중국 소비자가 선택할 가격적 메리트가 충분치 않다. 또 유심칩 세팅이나 카플레이, 불법 복제 탐지 기능 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점은 신형 아이폰14의 글로벌 생산능력이 풍부해 더는 짝퉁 아이폰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아이폰 모방 실패에 대한 매출 하락은 빙산의 일각이다. 화창베이는 전반적으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표면적인 이유는 중국의 스마트폰 판매 부진이다. 2022년 2분기 중국 휴대폰 시장 매출 데이터에 따르면 스마트폰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14.2% 감소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시장 축소, 판매 부진, 새로운 수요 증가 포인트 활용 및 기초 안정화에 직면해 휴대폰 제조업체를 진정시키는 방법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짝퉁 제조는 결국 저가형 네이쥐안(内卷·소득 없는 경쟁) 제품으로 통한다. 게다가 ‘칩 공급 대란’으로 아무리 비슷하게 잘 만들어도 상인들의 이윤이 갈수록 줄고 있다. 한 대에 2~300위안을 벌 수 있었던 짝퉁 스마트폰은 한 대를 팔면 5~6위안의 순이익만 남을 뿐이다. 가격 우위가 사라진 화창베이에서 휴대폰을 만들고 파는 헛수고를 하려는 상인이 줄고 있는 시점이다.

화장품 상가로 변모한 화창베이 전자상가. [사진 上觀新聞]

화장품 상가로 변모한 화창베이 전자상가. [사진 上觀新聞]

그렇게 화창베이의 거리는 대부분 ‘화장품’ 상가로 변모한 지 오래다. 애플을 모방할, 스마트폰을 만들어 팔 여력조차 없어졌다. 화창베이에 있는 2만여 개의 상점 중 10%가 미용제품 판매로 업종을 탈바꿈했다. 홍콩을 통해 들여온 세계 면세 화장품들이 이곳 화창베이에서 싼값으로 유통된다. 아직 이름을 채 바꾸지 못한 다수의 전자상가는 면세 화장품을 싹쓸이해 담는 보따리상, 일명 ‘따이궁(代工)’들이 북적이며 화장품 판매로 진을 이뤘다.

그렇게 화창베이는 짝퉁 전자상가에서 면세 화장품 도매 1번지로 탈바꿈 중이었다. 전국 각지 화장품 유통업자들이 선전으로 몰려들면서 화창베이 화장품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다. 판매 가격은 시중 판매가의 절반 정도에 불과해 하이난(海南) 면세점보다도 저렴했다. 중국 언론은 하루에만 최소 1억 위안의 화장품 거래가 이뤄졌다며 중국 본토 '면세 천국'으로 떠오른 하이난 면세점도 위협할 정도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화장품 납품의 대부분이 ‘밀수’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밀수 자체는 불법적인 사업으로 화창베이를 과거의 영광으로 회복시키는 데 실패할 뿐만 아니라 막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 당국은 2020년 말부터 대대적인 단속에 돌입하며 대량의 해외 화장품을 밀수해 중국 내에 유통하던 밀수 범죄단체 4곳을 적발했다. 또 최대 6억 위안 규모의 밀수 사건으로 화창베이에서 36명이 체포되기도 했다.

한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화창베이에서 팔리는 대다수 화장품은 불법적으로 유통된 것”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이토록 싼 값에 팔 수가 없다”고 전했다. 중국의 한 언론사도 “화창베이의 화장품 90%는 밀수나 짝퉁”이라고 지적했다. 화창베이는 결국 전자상가도, 화장품 도매 1번지도 아닌 ‘밀수 거리’로 전락했다.

[사진 바이두]

[사진 바이두]

그러나 화창베이는 여전히 중국에서 가장 큰 전자 시장이며 경쟁력이 분명하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화창베이 상인들은 시장 수요에 매우 민감하며 인기 있는 어떤 것이든 시도한다는 것이다.

포켓몬고 게임이 대중화되었을 때, 화창베이는 포켓볼 모바일 전원 공급 장치를 개발했다. 해당 제품은 현재까지 중국 전자상거래 징둥에서 구매가 가능하다. 스마트 웨어러블 제품이 유행할 당시, 스마트 팔찌, 시계와 같은 웨어러블 장치는 화창베이의 대부분 상점에서 살 수 있었다. 이제는 AI 대화형 기능을 갖춘 학습 기계와 동반 로봇이 화창베이 상인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나 화창베이 건물과 거리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다. 과거 영광의 ‘최대 전자상가’ 재현은 불투명해졌다. 일부 상인들은 ‘칩’ 생산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그러나 투기 과열 및 수요 하락으로 인해 이 역시 쉬운 길은 아닌 듯하다. 화창베이는 ‘짝퉁’, ‘밀수’의 딱지를 껴안은 채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까.

차이나랩 김은수 에디터

[사진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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