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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치, 내년 美 성장률 0.5%로 낮춰…'고통스러운 긴축' 본격화

중앙일보

입력

고민스러운 제롬 파월 Fed 의장. 블룸버그

고민스러운 제롬 파월 Fed 의장. 블룸버그

내년 미국에 경기 침체가 상륙할 전망이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미국의 내년 경제성장률을 '0%대'로 전망했다. 물가 상승 속도가 좀처럼 줄지 않으며 미국의 가계 소득이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한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고통스러운 긴축'도 이어질 전망이다.

18일(현지시간) CNN 등에 따르면 피치는 미국의 내년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0.5%로 전망했다. 지난 6월의 전망치(1.5%)보다 1.0%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피치는 올해 미국 성장률은 1.7%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피치는 스탠다드앤푸어스(S&P)와 무디스 등과 함께 3대 국제 신용평가사로 꼽힌다.

피치 “美 내년 2분기 경기침체…그래도 ‘온화’할 것”

피치가 내년 미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크게 낮춘 건 경기 침체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에서다. 높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이 이어지며 물가가 뛰면 가계의 지갑이 얇아질 수 있다. 사실상 소득이 주는 효과가 생기며 내년 2분기 소비 지출이 줄어들고, 그에 따른 경기 침체가 이어질 수 있다는 예상이다.

피치는 내년의 경기 침체 양상이 1990년 7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이어진 90년대 초의 경기 침체기와 비슷할 것으로 분석했다. 당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며 경기 침체로 이어졌는데, 이번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가격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다만 피치는 이번 경기 침체가 ‘꽤 온화한’(quite mild) 수준의 완만한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파괴적인 수준이었던 2008년 세계금융위기와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피치는 “미국 가계의 재정 상태는 2008년보다 훨씬 튼튼하고, 은행 시스템은 더 건전하며, 주택 시장에는 과잉 건설의 증거가 거의 없다”고 밝혔다.

미국의 실업률은 현재 3.5%에서 2024년 5.4%로 2년간 1.9%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경기 둔화의 여파로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지만, 과거보다는 상대적으로 양호하다는 것이 피치의 설명이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당시엔 실업률이 5.6%포인트, 코로나19 시기엔 11.2%포인트 급등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미국의 성장률을 낮춰 잡은 곳은 피치만이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9월 중간경제전망에서 미국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1.2%에서 0.5%로 0.7%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올해 성장률은 1.5%로 전망했다. OECD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에 각종 물가와 임금에 반영되며 물가 상승 압력이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지난 7월 내년 미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2.3%에서 1.0%로 1.3%포인트 대폭 낮췄다. 지난 11일 발표한 올해 마지막 발표에선 1.0%를 유지했지만, 내년 1월에 발표할 새 전망에선 피치·OECD처럼 성장률 전망치를 0%대로 하향 조정할 가능성이 크다. IMF는 올해 미국 성장률을 1.6%로 예상했다.

연준 내부 “금리 인상 멈출 이유 없다” 목소리

문제는 경기 침체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Fed가 긴축의 가속 페달을 더 밟을 수 있다는 데 있다. Fed 내부에서는 기준금리(연 3.0~3.25%)의 상단을 4.75% 이상으로 올릴 수 있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에도 Fed는 강경한 분위기다.

제롬 파월 의장은 지난달 21일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고통 없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건 없다"고 밝혔다. 물가를 잡으려면 경기 침체와 같은 고통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Fed 인사들도 이런 분위기에 가세하고 있다.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18일(현지시간) 미네소타주에서 열린 행사에서 “근원 인플레에 진전이 없으면 4.5%나 4.75% 수준에서 기준금리 인상을 멈출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미 노동부가 발표한 9월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6.6% 상승하면서 40여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래피얼보스틱 애틀랜타 연은 총재 역시 "(물가 안정 조치는) 단기적으로 일부 고통이 있더라도 장기적으로 명확히 이득일 것"이라며 "경제를 안정적인 장기 궤도에 올려놓지 못하면 완전고용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미니애폴리스연방준비은행 닐 카시카리 총재

미국 미니애폴리스연방준비은행 닐 카시카리 총재

기준금리 4.75%를 달성하려면 오는 11월과 12월 예정된 FOMC에서 두 차례 모두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아야 한다. 이렇게 되면 5연속 자이언트 스텝이다. 일각에선 울트라 스텝(한 번에 1.0%포인트 인상)을 밟을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인플레와의 싸움에 대한 Fed의 결연한 의지가 흔들린다는 인상을 금융시장에 주고 싶지 않을 것”이라며 “그렇게 될 경우 시장이 Fed 목표와 다르게 움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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