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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얼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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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모든 것은 얼굴에 있다"고 한 사람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다. 몽테뉴는 "아름다움은 인간 관계에서 1순위를 차지한다. 아름다움은 거대한 권위와 놀라운 인상으로 우리의 판단을 유혹하고 선입견을 갖게 한다"고 썼다. 아름다운 얼굴에 대한 오랜 선호를 보여주는 말들이다.

과학 저널리스트 대니얼 맥닐은 "얼굴은 우리가 대하는 가장 중요하고 신비로운 외면이다. 얼굴은 우리를 개체로 만들어준다. 그것은 사회적 신분이자 나침반이며 매력을 발산하는 미끼고 우리의 사회적 우주다"라고 썼다. ('얼굴')

얼굴이 곧 그 사람이라는 것은 일상 속에서 쉽게 확인된다. 사랑할 때는 연인의 얼굴을 그리워하고, 실연하면 그 얼굴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호감이 생겼다는 증거는 상대의 얼굴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그들의 이목구비를 재배치한 것이다.

얼굴과 관련해 최근 주목 받는 것이 '신체이형장애(BDD.Body Dysmorphic Disorder)'다. '추모(醜貌)공포증'으로도 불린다. 자신의 얼굴을 과도하게 추하게 인식해 우울증.성형중독.자해와 자살충동에 이르는 강박적 정신질환이다. 거울에 집착하는 이들은 운전할 때 백미러를 너무 자주 봐 사고를 내고, 반대로 레스토랑처럼 거울이 많은 곳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10여 차례 불법 성형수술로 일반인의 세 배나 되는 얼굴을 갖게 된 '선풍기 아줌마'는 BDD의 의혹이 있다. 그녀의 사연은 TV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30회 이상 성형수술을 했고 잠잘 때도 화장을 지우지 않는다는 마이클 잭슨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BDD 자체는 누구에게나 잠재된 경향이다. 누구나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 부위가 한두 군데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BDD는 새롭게 발명되고 확산 일로에 있는 현대병이다. 미국인의 2%, 약 500만 명이 이 병에 걸린 것으로 추산된다. 맥닐은 자기 외모에 대한 미국인의 불만이 비약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인용하면서 "우리는 점점 자신의 얼굴에 비판적이 돼가고 있다"고 썼다. BDD의 발병 원인은 불명이지만 최근 들어 급증하는 이유는 명백해 보인다. 직업미인인 스타들을 통해 비현실적인 미와 신체이미지를 유포시키는 대중매체 때문이다.

과연 포스트 모던 사회는 정신에서 육체를 해방시켰는가. 오히려 육체는 획일적 이미지의 포로가 돼가고 있지 않은가. 거식증에 걸린 말라깽이 모델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더 이상 놀랍지 않은 시대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