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포럼

정치자금과 음주운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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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제정경제부 C국장은 지난달 초순 1급 승진자로 내정되었다. 재경부는 당시 그의 승진 내정을 알리는 보도자료를 엠바고(공식 발표 때까지 보도하지 말아달라는 요청) 조건으로 내기도 했다. 그러나 C국장은 청와대 심사 과정에서 탈락했다. 탈락 이유는 음주운전이었다.

노무현 정부 들어 음주운전 때문에 불이익 받은 공무원이 적지 않다. 지난해 말 외교통상부의 김숙(이 사례는 당시 언론에 많이 소개되었으므로 실명을 밝힌다) 당시 북미국장(현 한.미관계 비전 홍보대사)의 승진 탈락은 잘 알려진 사례다. 김씨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조정실장(현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으로 임명되기 직전 탈락했다. 십수년 전의 일까지 합해 두 차례의 음주운전 경력이 적발되었다는 것이다.

음주운전을 공무원 인사에 반영하는 관행이 과거 정부에도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를 원칙으로 만든 것은 노무현 정부다. 기준은 음주운전이 두 번 적발된 경우 한 차례의 승진 인사에 불이익을 준다는 것. 단순 음주운전 1회는 그냥 넘어가지만 혈중 알코올 농도가 높은 경우, 사람을 다치게 한 경우, 공무원 신분을 속이려다 적발된 경우 등에는 불이익을 준다고 한다.

음주운전이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이라고 인사상 불이익까지 주느냐고 못마땅해 할 사람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청와대는 음주운전을 도덕성의 문제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음주운전은 범법 행위고, 공직자의 범법 행위는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며 까다롭게 따지는 게 노무현 정부답다.

음주운전 외에 어떤 잣대가 고위공무원 인사에 적용될까. 청와대에 따르면 자녀 병역 문제, 부동산 투기, 주민등록 위장 전입, 고소.고발 사건으로 인한 물의 등을 비롯해 인사 기준을 자세히 설명한 문서가 수십 쪽에 이른다. 병역 비리나 위장 전입은 알겠는데 부동산 투기는 어떤 걸까. 집을 갖고 있으면서 근처의 재개발이나 재건축 딱지를 사는 경우가 대표적 유형이라고 한다.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이백만 전 홍보수석은 분양받아 강남 아파트를 샀기 때문에 이 기준에 해당하지 않은 것 같다. 고위공직자 인사검증을 담당하는 청와대 민정수석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에 근무하는 젊은 직원들이 인사 때마다 이 기준에 따라 후보자를 샅샅이 파헤치면서 난상토론을 벌여 결론을 내린다고 한다. 여기서 결정된 사항엔 수석비서관도 뭐라 하지 못한다. 이른바 시스템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문제있는 공직자를 걸러내는 장치가 과거 어느 정부보다 완벽하다고 할 만하다. 현 정부가 능력에 대한 검증은 모르겠지만 도덕적 검증은 나름대로 철저히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어제 이재정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를 보다 보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 후보자는 2002년 대선 때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2004년 구속됐다가 벌금형을 받았다. 개인적으론 억울하다는 생각이 없지 않겠지만 어쨌든 현 정부가 추구하는 '깨끗한 정치'의 틀을 벗어나 처벌받았다. 이씨뿐 아니다. 올 1월 임명된 이상수 노동부 장관도 이재정씨와 같은 때 같은 불법 행위에 간여해 이씨보다 무거운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이 장관을 지난해 광복절 때 사면 복권했다. 피선거권 제한이라는 굴레를 풀어주기 위해서다. 이재정씨는 상대적으로 낮은 처벌인 벌금형을 받아 피선거권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인지 지난해 사면 대상에서 제외됐다. 두 사람을 장관에 임명하는 데 법적인 문제는 없는 셈이다.

하지만 음주운전도 공무원이 승진하는 데 법적인 걸림돌은 아니다. 음주운전이 정치자금법 위반보다 더 심각한 범법 행위라고 말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 장관과 이 후보자의 정치자금법 위반은 노 정부 출범 전의 일이라고 봐주려 해도 십수년 전의 음주운전을 문제삼는 것과 형평에 맞지 않는다. 더구나 2002년 이전 음주운전자도 월드컵 4강 진출 기념으로 사면을 받은 상태다.

이렇게 보면 현 정부의 인사 기준은 사람과 자리에 따라 그때그때 다른 것 같다. 이 정부가 유난히 자랑하는 시스템이 장관급 인사, '내 편' 인사에는 작동하지 않는 셈이다. 개혁 대상인 공무원에 적용되는 엄격한 기준을 내 편에까지 들이댈 수는 없는 모양이다. 이 정부의 인사에 대한 비판이 유난히 많은 원인 중 하나가 남에겐 엄격하면서 내 편엔 너그러운 '이중 잣대' 아닐까.

이세정 경제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