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이야기』『…에세이』제목의 책이 잘 팔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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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책제목과 판매에는 상관관계가 있는가.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제목을 고르기 위해 제작기간 내내 고심하면서도 지금까지 출판업자들은 그 실제적인 효용성에대해서는 의심의 눈초리를 던져 왔던 게 사실이다.
특정한 책이 잘 팔리면 그들은 판매호조의 원인을 책의 내용이나 광고 탓으로 돌릴지언정 제목의 호소력에 혐의를 두는 일에는 매우 인색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서점 가에서는 제목에 공통의 관형이나 명사를 쓰는 일군의 책들이 대거 베스트셀러 목록에 진입, 책제목과 판매간의 상관관계를 증명해 보이고 있다.「재미있는…」「…이야기…」「…에세이」등 이 그 대표적인 예.
지난달 최종 집계된 교보문고의 베스트셀러목록 자연과학부문에는『이야기 파라독스』(마딘 가드너·사계절)를 제1위로, 『재미있는 수학여행2』(김용운·김용국·김영사),『재미있는 물리여행1』(루이스 엡스타인·김영사), 『재미있는 별자리여행』(이태형·김영사), 『재미있는 이야기수학』(권영한·전원문화사), 『재미있는 수학탐험』(팰레리만·팬더북)등 앞에「재미있는…」이라는 관형어를 붙인 제목의 책만 5권이 10위 권 안에 올랐다.
사회과학부문에는『시민을 위한 경제이야기』(이영탁·김영사)가 3위로,『작은 밑천으로 돈버는 이야기』(매일경제신문사)가 4위로 올라「…이야기」란 명사형 제목을 단 책들이 최근 서점 가에서 크게 인기를 얻고 있음을 반영했다. 『…에세이』제목 붐을 선도한 것으로 알려진『철학에세이』(동녘)도 인문과학부문 6위를 마크, 장기스테디셀러로서의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재미있는…」「…이야기…」「…에세이」등의 관형어 내지 명사를 제목에 포함시키고 있는 책들은 내용이 어렵고 딱딱하며, 특히 두드러진 전문성 때문에 일반이 접근을 꺼리는 자연과학·수학·경제학·철학 등의 기초학문분야를 다루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 복잡한 숫자나 공식대신 군데군데 일러스트레이션을 곁들인 재미있고 평이한 설명으로 이해를 돕고 독자들의 부담감을 덜어 주기 위해 될수록 볼륨도 최소화하고 있다는 게 이들 책의 특징이다.
3년 전『재미있는 물리여행』1, 2호를 펴냄으로써「재미있는…」식 제목의 효시를 연 박은주 김영사 대표는『과학이나 수학을 아예 관심 밖의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사람들의 콤플렉스를 자극하기 위해 통상「재미없는 것」에 「재미있는…」이라는 역설적 제목을 붙여 보았다』며『재미있는 물리여행』이 1, 2권 합쳐 20만 부,『재미있는 수학여행』1, 2가 8만 부, 『재미있는 별자리여행』이 5만 부나 팔리는 베스트셀러로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제목의 직접적 호소력에 힘입었던 것 같다고 풀이했다.
「…이야기」식 제목은 60년대 구미서관에서 낸 박홍민씨의『이야기 한국사』가 첫 예이며 그후 78년 문예출판사가 욀듀란트의『철학이야기』를 발간, 인기를 모으면서「…이야기」제목의 폭발적 유행에 터를 닦았다.
해방 후 출판초창기부터 70년대까지는『대지』『광장』『빙점』『토지』『순교자』등 중후하고도 함축성 있는 2∼3자 정도의 짧은 추상명사가 제목으로 선호돼 왔고 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주어·술어에 토씨까지 갖춘 10∼20자의 길고 복잡한 제목들이 주류를 이루다시피 유행했던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
안 팔리는 분야에「재미있는…」「…이야기」「…에세이」등의 풀이 식 제목을 붙여 판매에 직접 연계시키는 전략은 최근 출판 및 서점 가에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흐름의 하나다.

<정교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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