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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칠순 다음날 크림대교 타격…러軍 치명타에 핵위협 세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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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를 직접 연결하는 유일한 군사보급로인 크림대교(케르치해협대교)에서 8일 오전 6시(현지시간) 발생한 폭발 사고로 다리 일부가 파괴되고 최소 3명이 사망했다고 러시아 당국이 밝혔다. 그간 ‘푸틴의 자부심’으로 불려온 크림대교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70세 생일 다음날 공격당하자, 러시아 강경파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결정적 조치’를 촉구하고 나섰다.

8일 크림대교에서 트럭 폭발로 발생한 불길이 유조열차로 옮겨붙어 거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UPI=연합뉴스

8일 크림대교에서 트럭 폭발로 발생한 불길이 유조열차로 옮겨붙어 거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UPI=연합뉴스

'푸틴의 다리' 파괴, 러軍 보급 치명타

이날 로이터통신과 가디언·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외신은 크림대교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군대의 가장 중요한 공급라인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러시아군은 보급 악화, 후방 상실이라는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고 지적했다. 또 개전 이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력 집결지로도 사용해왔다며 향후 러시아군의 병력 배치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크림대교는 복층 구조의 길이 19㎞의 다리로, 상층의 철도교와 하층의 왕복 4차선 도로교로 이뤄졌다. 유럽에서 가장 긴 교량으로,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2014년 착공됐다. 도로교는 2018년, 철도교는 2019년 완공돼 개통됐다. 푸틴 대통령은 도로교 개통식 때 오렌지색 카마즈 트럭을 직접 몰고 다리를 건너는 이벤트를 통해 ‘푸틴의 다리’라는 상징성을 과시했다. 크림대교를 짓는데 70억 달러(약 10조원)를 쏟아부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번 사고는 8일 크림대교의 하층 도로교를 지나던 트럭에 실린 폭탄이 터지며 1차 폭발이 이뤄졌다. 이때 발생한 불길이 상층의 철도교를 지나던 유조열차를 덮쳤다. 석유를 가득 싣고 있던 유조 열차의 저장탱크 7개가 곧바로 화염에 휩싸여 폭발했고, 이로 인해 다리의 일부가 파손됐다.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에 따르면 이날 저녁 철로교와 도로교의 통행은 일부 재개됐다. CNN은 크림대교 폭발 영상을 확인한 결과, 차량용 교량 서쪽 방향 차선은 파괴됐지만, 동쪽 방향 차선은 큰 피해가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덴마크 교량 설계·건축 전문업체 코위(COWI)의 데이비드 매켄지 기술이사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폭발로 인해 크림대교의 구조가 손상돼 완전 복구까진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상당히 큰 화재여서 교량 철골의 강도에 충격이 있었을 것”이라며 “교량 상판에 있는 강철은 한계 이상의 열을 받았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철로가 재개통되더라도 적재 중량이 제한될 것으로 전망했다. NYT는 크림대교 폭발에 따른 손상 규모를 즉각 파악하기 어렵다면서도 “이 다리를 통한 통행에 지장이 생기면 러시아의 전쟁 수행 능력에 심대한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전했다.

크림대교가 제역할을 못할 경우, 크림반도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남부와 동부를 공략 중인 러시아군에 대한 식량·연료·장비·탄약 공급이 제한될 수 있다. 실제로 러시아는 폭발 사고 직후 크림반도에 식료품 구매 제한령을 내렸다. 크림반도 행정부는 “식량과 기본 생필품은 충분히 있다”면서도 “시장의 인위적인 혼란을 막기 위해 고객 1명 당 최대 3㎏의 식료품을 구매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가디언은 “크림대교의 대안으로 자포리자주의 멜리토폴에 연결된 철도를 이용하거나, 선박·항공편을 이용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지만, 안정성과 수송 용량을 고려하면 엄청난 격차가 발생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 대안 도시들은 크림반도보다 우크라이나 전선에 가깝고, 일부는 우크라이나 포대 사거리 안에 있어 한계가 있다. 미국 싱크탱크 외교정책연구소(FPRI)의 러시아 군사 전문가인 롭 리는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 사이 케르치 해협을 오갈 러시아 수송선이 충분한지도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물자 보급뿐 아니라 병력 배치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크림반도는 러시아가 개전 후 우크라이나 공격을 위한 병력 집결지로 삼아왔다. 안드리 자고로드뉴크 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크림대교 손상으로 러시아가 자국 내에서 전투 부대를 구성하고 우크라이나 배치를 위해 더 먼 거리를 이동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지난 9월 러시아의 군동원령으로 징집된 예비군들이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에 모여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9월 러시아의 군동원령으로 징집된 예비군들이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에 모여있다. AFP=연합뉴스

푸틴 자존심 타격…전술핵 등 보복 가능성 

크림대교의 폭발과 일부 붕괴는 러시아와 푸틴의 자존심에 타격을 입힌 결정적 사건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과거 푸틴 대통령은 2018년 크림대교 개통식에서 “(제정 러시아의) 차르 통치 등 여러 역사적 국면에서 사람들은 이 다리의 건설을 꿈꿔왔다”며 “1930년대, 40년대, 50년대에도 다리 건설을 계획했지만, 결국 여러분의 노고와 재능으로 이 기적이 이뤄졌다”고 역사적 의미를 강조했고, 정치적으로도 십분 활용했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자신의 70세 생일 바로 다음날 크림대교 폭발 사고가 벌어진 것에 대해 개인적인 모욕으로 느낄 공산도 크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수세에 몰리면서 푸틴 대통령의 자국내 입지가 취약하다는 점도 변수다. 일각에선 푸틴 대통령이 체면 회복과 입지 강화를 위해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술핵무기 등 초강경 보복 조치에 나설 가능성도 크다고 지적했다. NYT에 따르면 친러 성향의 텔레그램 채널인 리바르(Rybar)는 “이번 사건은 ‘결정적 조치’를 내려야 한다”며 “국민들은 복수를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CNN은 “푸틴에게 실패를 인정하는 것은 내키지 않은 일이고, 더 큰 도박이 쉽게 보일 수 있다”며 “만일 판을 키울 경우, 우크라이나 침공 시도는 물론 푸틴 정권 자체가 붕괴를 맞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크림대교 폭발을 주제로 만든 우표 모양의 작품 앞에서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AFP=연합뉴스

크림대교 폭발을 주제로 만든 우표 모양의 작품 앞에서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AFP=연합뉴스

한편, 이번 크림대교 폭발과 우크라이나의 관련성은 아직 명확히 드러난 바 없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 사건 이후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소셜미디어에 “러시아 권력의 악명 높은 두 가지 상징, 모스크바함과 크림대교가 크림반도에서 무너졌다. 다음은 차례는?”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우크라이나 국가안보회의(NSC) 장관인 올렉시 다닐로프는 “푸틴의 70세 생일 축하”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관련 영상과 사진을 공유하며 환호하고 있다. 한 우크라이나의 고위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NYT에 “우크라이나 정보국이 이번 공격을 조직했으며, 트럭에 탑재된 폭탄과 관련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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