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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아픔으로 굴곡진 삶을 산 지식인의 초상[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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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과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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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과 자유
지창보 지음
책봄

일본강점기에 이어 곧바로 터진 한국전쟁이란 쓰라린 역사는 많은 이들의 삶을 굴곡지게 만들었다. 개중에는 갈가리 찢긴 이념적 대립으로 전쟁이 끝난 뒤에 반세기 이상이 지나고도 해외에서 떠돌거나 고향을 찾지 못했다.

남들보다 일찍 깨우친 지식인들은 더 심한 경우가 많았다. 한없이 열린 가슴과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는 명석한 머리를 지닌 터라 부당하다고 느끼면 목소리를 높이기 일쑤였던 탓이다.

필자 지창보 박사는 일제강점기인 1923년 평양 근교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유학했으나 학도병으로 끌려갔다 해방을 맞았다. 어렵게 귀국해 연세대로 진학했지만, 서북청년단의 테러 때문에 학업을 포기했다 결국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열심히 공부한 끝에 명문 듀크대에서 6년 만에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대학에서 교편을 잡는 데 성공한다.

1984년 지창보 박사가 파리에서 이응노 화백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창보 제공

1984년 지창보 박사가 파리에서 이응노 화백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창보 제공

그러나 분단된 조국의 상황은 그를 힘들게 만들었다. 북한에 남은 가족을 만나기 위해 1971년 재미교포로서는 최초로 방북, 친북 인사로 몰리게 된다. 이런 낙인이 찍히게 되자 그는 도미 후 41년이 지난 1994년에야 남쪽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이렇듯 시대의 아픔 탓에 그는 뜻하지 않게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야 했다.

지 박사는 53년 도미한 이후 지식인으로서 수많은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과 유럽의 수많은 한인 예술가, 지식인들과 교류했다. 화가 김환기 내외와 이응노·김창열 화백, 작곡가 윤이상 등이 그들이다.

이 책을 보면 이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인간적인 모습이 생생하게 나온다. 지 박사는 “한 사람의 인생이란 그 시대의 주변 사건과 연관되어 계속되는 역사의 거울”이라고 주장한다. 평범한 무명 인사의 삶도 들여다보면 역사의 한 면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치열하게 살았던 재미 지식인의 삶을 통해 현대사의 이면과 유명 예술가들의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남정호 기자 nam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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