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행복한 미래 연주하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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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 장한나씨가 16일 서울 영락교회에서 불우한 어린이들을 초대, '사랑이 있는 음악회'를 연 뒤 아이들에게서 꽃다발을 받고 환히 웃고 있다. 변선구 기자

16일 오후 7시 서울 중구 영락교회 베다니홀. 세계적 첼리스트 장한나(24)씨가 300여 명의 아이들 앞에 섰다. '사랑이 있는 음악회'라는 제목의 '깜짝' 자선공연. 장씨는 빠른 손놀림으로 러시아 작곡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숨을 죽인 채 선율에 빠져들었다.

장씨의 공연에 초청된 관객은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이 전국 58개 지역에서 돌보고 있는 불우 아동들이었다. "넉넉지 못한 형편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 무료 공연 행사를 열어 줄 수 있느냐"는 기아대책의 제안으로 성사됐다. 18일 시작되는 전국 투어를 위해 입국한 장씨는 2009년까지 공연 스케줄이 꽉 찼지만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냈다. 개런티도 받지 않았다.

장씨는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쉬운 생상스의 '백조' 등 작품 6곡으로 한 시간 동안 '맞춤형 공연'을 펼쳤다. 한곡 한곡 연주를 끝낼 때마다 마이크를 쥐고 아이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장씨는 "어렸을 때는 누구나 힘든 시기가 있어요. 저도 그랬죠"라며 "하지만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의지를 갖고 낙담하지 않으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아이들의 용기를 북돋웠다.

공연이 끝나고 희정(10.여.이하 가명)이가 무대에 올랐다. "언니, 너무 좋은 추억이에요. 언니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 거예요"라는 감사편지를 장씨에게 전달했다. 장씨는 희정이를 끌어안고 "오늘 공연 잘 봤어요"라며 물은 뒤 "어려워도 씩씩하게 이겨내세요"라고 속삭였다. 들뜬 표정의 희정이와 친구 20여 명은 무대에 올라 복음성가 '아주 먼 옛날' 합창으로 화답했다.

장씨가 던진 희망의 메시지에 다원(10.여)이의 눈이 빛났다. 지난해부터 배우기 시작한 피아노는 다원이의 유일한 해방구다. 우울증을 앓는 아빠와 단둘이 살면서 바이올린.플루트에 욕심을 냈지만 꿈같은 얘기였다. 다원이를 돌보는 사회복지사 이현주씨는 "욕심이 워낙 많은 아이인데 가정환경 때문에 성격이 공격적으로 변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원이는 지난해 한 기업의 후원으로 피아노를 배우고 나서 자신의 감정을 음악으로 풀어 놓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다. 다원이는 "나도 피아노 연습을 열심히 해 한나 언니처럼 훌륭한 연주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하얀색 오카리나를 손에 꼭 쥐고 장씨의 연주를 듣던 탈북청소년 인정(11)이는 "태어나서 음악회에 와본 건 처음인데 음악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 그동안 몰랐다"며 "이번 크리스마스 때는 오카리나로 꼭 캐럴을 연주하겠다"고 말했다.

공연이 끝난 뒤 장씨는 "다른 어떤 세계적 공연보다 감동적이었다"며 "밝게 자라는 아이들을 보니 내가 더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김호정 기자<wisehj@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 장한나씨 = 일곱 살에 첼로를 시작해 1994년 로스트로포비치 국제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대상을 받으며 극찬을 받았다. 아홉 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줄리아드예비학교를 나왔으며 현재 하버드대 철학과를 휴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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