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주차장서 13시간 버티게 한 '에어포켓'…'30㎝' 기적의 생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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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호 태풍 힌남노가 지나간 6일 오후 소방당국이 경북 포항시 오천읍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수색 중 발견한 여성 생존자 1명을 추가로 구조해 나오고 있다. 뉴스1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지나간 6일 오후 소방당국이 경북 포항시 오천읍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수색 중 발견한 여성 생존자 1명을 추가로 구조해 나오고 있다. 뉴스1

올 추석 밥상의 화제는 제 11호 태풍 '힌남노'로 인한 침수 피해 실종자의 13시간만의 생환이다. 지난 6일 한반도를 휩쓸고 간 힌남노로 침수된 경북 포항시 오천읍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모두가 생존자가 있을 것이란 희망의 끈을 놓으려 할 때, '에어포켓(air poket)'에서 버텨오던 주민 2명이 가족의 품으로 살아 돌아온 것이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들에 대한 애타는 수색 작업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들의 생환은 기적 그 자체였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지난 7일 구조된 생존자는 39세 남성 전모씨와 52세 여성 김모씨다. 이들은 생명에 큰 지장이 없는 상태로 현재 병원 치료 중이다. 생존자들은 지하 주차장 천장에 있는 배관을 잡거나 올라타는 방법으로 일종의 '에어포켓'을 찾았고, 30cm 남짓한 그 공간에서 버틴 끝에 살아남을 수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전씨의 아내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편이) 순식간에 물이 차올라 자동차를 탈 수 없었다고 한다"며 "물 속에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옷을 벗고 에어포켓으로 추정되는 공간에 있었다고 했다"며 전씨로부터 들은 상황을 전했다. 경북소방본부 관계자도 "부유물을 잡고 수면에 떠 있는 상태로 에어포켓으로 추정되는 공간에 머물러 생존이 가능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수난 사고 생존의 한줄기 빛 '공기주머니' 

에어포켓은 액체나 기체의 흐름을 막는 각종 공기주머니 가리키는 말로, 주로 선박 침몰 시 방출되지 못한 공기가 남아있는 공간을 지칭한다. 그 크기는 공간의 구조나 밀폐 상태에 따라 다르다. 수난 사고 시 사람의 생존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공간이다.

주로 배의 완전한 '침몰' 상황에서 발생하는 에어포켓의 개념을 포항 아파트 지하주차장과 같이 '침수'의 상황에 적용해 설명하는 것이 무리라는 지적도 있지만, 생존자들이 구조를 기다려볼 수 있는 공기층을 찾아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면 전씨와 김씨가 의지했던 공간을 에어포켓이라고 칭하기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전복된 어선서 40시간…침몰 배속에서 60시간

실제 에어포켓으로 인해 참사의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구조가 이뤄진 사례는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다. 불과 지난해인 2021년 2월 경북 경주 인근 해상에서 어선이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선원 6명이 실종됐다. 그런데 그 중 1명이 에어포켓에서 무려 40시간을 버틴 뒤 해경에 발견되면서 극적으로 구조됐다.

지난해 2월 21일 경북 경주 앞바다 어선 전복 사고에서 생존자가 여찬희 경장과 서성진 경장의 팔과 손을 꼭 잡은 채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해경 제공

지난해 2월 21일 경북 경주 앞바다 어선 전복 사고에서 생존자가 여찬희 경장과 서성진 경장의 팔과 손을 꼭 잡은 채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해경 제공

지난 2017년 12월 인천 영흥도 낚시배 추돌로 22명이 실종됐던 사고에서도 에어포켓은 생존과 구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출항 5분여만에 다른 배와 충돌해 뒤집힌 낚싯배에는 선실 일부 공간에 에어포켓이 생겨났다. 이 공간에서 생존자들은 방수폰으로 구조대와 연락을 취했고, 2시간 40여분만에 3명이 구조됐다.

지난 2017년 13월 3일 오전 6시9분쯤 인천 영흥도 인근 해상에서 9.77t급 낚싯배가 336t급 급유선과 충돌해 전복됐다. 이로 인해 선원과 낚시객 등 총 22명이 실종됐으며, 이 가운데 13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됐다. 생존자 7명 가운데 3명은 배 안 에어포켓에서 발견됐다. 사진=인천해양경찰청 제공

지난 2017년 13월 3일 오전 6시9분쯤 인천 영흥도 인근 해상에서 9.77t급 낚싯배가 336t급 급유선과 충돌해 전복됐다. 이로 인해 선원과 낚시객 등 총 22명이 실종됐으며, 이 가운데 13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됐다. 생존자 7명 가운데 3명은 배 안 에어포켓에서 발견됐다. 사진=인천해양경찰청 제공

세계적으로 '에어포켓의 기적'으로 가장 유명한 사례는 지난 2013년 5월 28일 나이지리아 인근 해안에서 발생한 선박 침몰사고다. 12명의 승무원을 태운 배가 침몰하고 3일이 지나도록 생존자가 나오지 않으면서, 구조당국은 사실상 구조를 포기한 채 시신 수습에 주력하고 있었다. 30m 수심의 바닥으로 완전하게 침몰한 배 속에서 시신을 수습하고자 네덜란드 다이빙회사 소속 스쿠버다이빙팀이 동원돼 물 속으로 들어갔는데, 배 안 에어포켓에서 탄산음료 한 병으로 60시간을 버티며 구조를 기다려 온 남성이 발견된 것이다. 세계적으로 에어포켓 내 가장 긴 생존시간으로 평가된다.

지난 2013년 나이지리아에서 침몰된 선박 내 에어포켓에서 무려 60시간을 버틴 끝에 구조된 남성의 모습. 사진=KBS뉴스 캡처

지난 2013년 나이지리아에서 침몰된 선박 내 에어포켓에서 무려 60시간을 버틴 끝에 구조된 남성의 모습. 사진=KBS뉴스 캡처

◇세월호도 천안함도 없었다…에어포켓 자체가 기적  

이 나이지리아 에어포켓의 기적은 우리나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약 1년 뒤인 2014년 4월 16일 무려 304명의 사망자를 낸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당시 언론과 전문가 등은 이 나이지리아 사례를 들어 세월호 내 에어포켓이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고, 실종자 가족들은 그 가능성에 모든 희망을 걸었다. 존재가 확인되지도 않은 에어포켓 내 산소 고갈을 우려해 침몰한 선체에 공기를 주입하는 작업을 할 만큼 에어포켓은 실종자 가족들에게 마지막 동아줄이었다. 그러나 수개월 뒤 열린 국회 세월호 청문회에서 해경은 이미 당시 세월호 선체 내 에어포켓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지만, 실종자 가족의 요청과 여론으로 인해 공기를 주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 4월 14일 전남 목포신항에 거치돼 있는 세월호 선체.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4월 14일 전남 목포신항에 거치돼 있는 세월호 선체.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2010년 발생한 천안함 피격사건 당시에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실종자의 전원의 사망이 확인되기 전 밀폐된 선실에 갇힌 장병들이 에어 포켓에 의지해 69시간 가량 생존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유가족과 국민들이 잠시나마 희망을 가졌지만, 결국 천안함에도 에어포켓은 없었고 장병들은 침몰 직후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010년 4월 3일 밤 11시쯤 천안함 실종자 가족 협의회가 실종자 인명구조 및 수색 작업 중단을 요청한 뒤, 백령도 사고 해안 광양함 갑판 위에서 야간 수색 작업을 준비중이던 해군 구조대 대원들이 철수하고 있다. 공동취재-KPPA

지난 2010년 4월 3일 밤 11시쯤 천안함 실종자 가족 협의회가 실종자 인명구조 및 수색 작업 중단을 요청한 뒤, 백령도 사고 해안 광양함 갑판 위에서 야간 수색 작업을 준비중이던 해군 구조대 대원들이 철수하고 있다. 공동취재-KPPA

선박 침몰 사고에서 에어포켓이 생겨 구조로 연결되는 것은 말 그대로 기적적인 일이다. 설사 에어포켓이 생겼어도 침몰된 선박 내에서 생존자가 에어포켓을 찾아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천운이 따라 에어포켓에서 구조를 기다릴 수 있게되더라도, 제한된 산소의 고갈과 수온으로 인한 저체온증으로 오랜 생존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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