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소리없는 결정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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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16강전 하이라이트>
○ . 서봉수 9단 ● .천야오예 5단

유리한 바둑을 죽 밀어서 이기는 사람은 정신력이 무척 강한 기사다. 미세한 바둑은 물론이고 천지개벽이 일어나지 않는 한 뒤집힐 수 없다던 바둑도 곧잘 역전되고 만다. 대국심리가 만들어 내는 조화다. 유리한 쪽의 부자 몸조심과 불리한 쪽의 결사항전 의지가 교묘한 화학작용을 일으켜 역전 드라마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장면도(173~182)=끝내기의 과정은 지극히 정상적으로 보인다. 173으로 5점을 살리자 백은 178까지 선수로 A의 약점을 커버한 뒤 180의 큰 곳을 차지했다. 천야오예(陳耀燁) 5단이 181로 따내며 B의 연결을 강요했을 때 서봉수 9단은 문득 섬뜩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백은 좌하에서 크게 이겼고 도처의 작은 접전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기분 같아선 크게 유리해야 마땅한데 얼핏 집을 세어 보니 그게 아니다. 천야오예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181의 시점에서 백이 쉽게 B로 잇고 흑이 C로 지킨다면 계산은 어찌되는 것일까.

▶흑집=우변과 중앙, 좌하까지 빙 돌아간 집이 61집. 좌상 3집. 상변 5집. 합계 69집.

▶백집=우상 12집. 하변 25집. 좌하 10집. 좌상과 중앙 16집. 덤 6집반. 합계 69.5집

아슬아슬한 반 집 차이가 아닌가. 물론 백이 선수이고 약간 두터운 만큼 유리한 것은 틀림없으나 적은 생각보다 근거리에 있는 것이다. 이걸 모르고 승전 무드에 도취해 있다면 결과는 뻔한 것. 서 9단의 182가 바로 이때 판을 강타했다. '참고도' 흑 1의 저항은 백 6까지 파탄. 잘 버텨온 천야오예도 드디어 막다른 길에 몰렸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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