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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으로 완성”…천년의 시도, 인생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04호 21면

오늘은 좀 추운 사랑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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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지음
민음사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은 시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천년을 사는 시인이 있기 때문이다. 문정희 시인의 새 시집에 실린 ‘시인의 장례식’에 나오는 ‘주장’이다. 영생불사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천년을 살아남는 시가 있다는 얘기다. 시가 남는다면 시인이 기억되는 법. 기억된다면 시인이 죽었다고 하기 어렵다. 사실 우리 곁에는 그런 시인들이 적지 않다. 백석·미당·윤동주·기형도….

시인 누구나 그런 영생의 꿈을 꿀 텐데, 문씨는 이번 시집에서 죽지 않는 비밀을 슬그머니 털어놓았다. 죽지 않는 시를 쓰는 비결 말이다. 놀랍게도 물결 위에 시를 써야 한다는 거다. 역시 ‘시인의 장례식’에 들어 있는 발상이다. 흐르는 물에 무언가를 쓴다는 것이 가능한가. 그렇게 쓴들, 남나.

격정의 시인 문정희를 읽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이번 시집도 마찬가지다.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가, 형용모순 같은 시인의 연금술, 시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살펴보는 일이다. 먹고 살기 바쁜데 무엇 때문에 시도 아닌 시인의 시론(詩論)을 듣고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자체로 한 편의 시이자 시인의 인생론인 ‘시인의 말’에 그 답이 들어 있다.

“늘 새로 태어나기 바빠/ 해가 기울어 간 것도 몰랐다.// 살과 뼈/ 들끓는 나로 시를 살았다.// 미완성으로 완성이다.// 10대 때부터 어린 시인/ 아직도 어린 시인// 그것 참 황홀하다.”

그러니까 시인의 시론을 살피는 일은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우리가 OTT·드라마·영화에 열광하는 이유도 근본에는 누군가의 삶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의 말 가운데 “미완성으로 완성”이라는 표현이 이번 시집에 적용된 연금술의 핵심인 듯싶다. ‘망각을 위하여’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도 보인다.

“나는 시들을 자유로이 놓아주었다/ 부서진 욕망, 미완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 불온한 생명이여”. 봄부터 가을까지 고치고 주무르다 결국 시를 망쳤다는 자책 다음에 나오는 시행들이다. 버려야 얻는, 미완성으로 완성하는 역설의 세계다.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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