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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도 낮은 항생제에 노출되면…남세균 녹조, 독소 더 내뿜는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9월 미국 캘리포니아 클리어레이크에 발생한 남세균의 녹조. 독소 농도가 높아지자 보건 당국에서는 주민들에게 호숫물을 끓여도 독소가 제거되지 않는다며 식수로 사용하지 말라는 권고를 내렸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9월 미국 캘리포니아 클리어레이크에 발생한 남세균의 녹조. 독소 농도가 높아지자 보건 당국에서는 주민들에게 호숫물을 끓여도 독소가 제거되지 않는다며 식수로 사용하지 말라는 권고를 내렸다. AFP=연합뉴스

녹조 원인 생물인 남세균(시아노박테리아)이 치사량보다 낮은 농도의 유해물질에 노출되면 녹조 독소인 마이크로시스틴을 더 많이 배출한다는 연구 결과가 제시됐다.
대신 항생제·중금속 등 유해물질 농도가 치사량보다 많으면 남세균이 죽으면서 마이크로시스틴 농도도 낮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중국 난징 정보과학기술대학과 미국 매사추세츠대학, 독일·스페인·브라질 등 국제연구팀은 최근 '환경 과학 기술(Environmental Science and Technology)' 저널에 조류(algae)의 '호르메시스(hormesis)' 반응과 관련된 기존 논문 39편을 종합 정리한 리뷰 논문을 게재했다.

유해물질이 성장 촉진…호르메시스 반응

남세균 종류들. 낙동강물환경연구소

남세균 종류들. 낙동강물환경연구소

일반적으로 생물체는 유해물질의 농도에 따라 서로 다른 반응을 나타낸다. 높은 농도에서 생물체에 해로운 영향을 주는 유해물질이라도 낮은 농도에서는 오히려 생물체의 성장을 촉진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보이기도 하는데, 이를 호르메시스라고 한다.
연구팀은 치사량보다 낮은 저농도의 유해물질이 조류, 특히 마이크로시스티스(Microcystis)나 아나베나(Anabaena) 같은 남세균의 성장을 촉진하는 호르메시스 반응을 끌어낸다고 밝혔다.

유해물질 농도가 최대 무독성량(NOAEL)보다 낮으면 생물체는 유해물질이나 다른 환경 스트레스에 대해 내성을 키우고 방어 능력을 향상하게 된다는 것이다. 호르메시스는 질소·인·철분 등이 조류의 성장을 촉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질소·인 등은 유해물질이 아닌 영양물질이다.

호르메시스 반응을 촉발하는 유해물질로는 세균을 공격하는 항생제가 대표적이고, 이외에도 비소와 중금속, 환경호르몬, 난연제, 할로겐 유기화합물, 과산화수소, 나노물질,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 희토류, 살충제, 소독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유해물질 여러 종이 혼합돼 있을 때는 호르메시스 반응을 더 강화하고, 녹조 발생 등의 위험을 부추긴다.

저농도 조류 제거제 역효과 발생 

낙동강 상류 내성천에 설치된 경북 영주시 영주댐에 발생한 녹조현상. 한국수자원공사에서는 녹조 제거를 위해 이곳에 조류 제거제를 살포하기도 했으나 뚜렷한 효과를 보지 못했다. [내성천 보존회 제공]

낙동강 상류 내성천에 설치된 경북 영주시 영주댐에 발생한 녹조현상. 한국수자원공사에서는 녹조 제거를 위해 이곳에 조류 제거제를 살포하기도 했으나 뚜렷한 효과를 보지 못했다. [내성천 보존회 제공]

특히, 조류를 제거하기 위해 살포하는 일부 조류 제거제에 대해서도 호르메시스 반응이 나타난다. 조류 제거제 농도가 낮으면 오히려 조류 번식을 촉진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조류 제거제를 과다하게 투여하면 강·호수 생태계를 파괴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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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저농도 유해물질이 조류의 성장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남세균의 경우 독소인 마이크로시스틴 생성을 촉진하고, 세포 밖으로 마이크로시스틴을 배출하는 양도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유해물질이 치사량에 이르면 남세균의 세포가 줄어들면서 세포 밖의 마이크로시스틴 농도도 점차 줄어든다. 매우 높은 농도의 유해물질에 갑작스럽게 노출되면 남세균 세포가 파괴되면서 세포 밖으로 마이크로시스틴이 대량 방출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남세균 독소 독성 강해질 수도

낙동강애 발생한 녹조. 중앙포토

낙동강애 발생한 녹조. 중앙포토

노출되는 유해물질에 따라 남세균이 생성하는 마이크로시스틴의 종류가 달라질 수도 있다. 200여 종에 이르는 마이크로시스틴 중에서 독성이 더 강한 종류를 더 많이 생성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마이크로시스틴 생성을 증가시키는 항생제의 농도는 0.1~2000ppb 범위였는데, 항생제에 의한 생성 자극은 대부분 0.6ppb 이하의 농도에서 나타났다.

이러한 호르메시스의 정확한 메커니즘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다양한 유전자가 간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이크로시스틴 생산의 경우에도 낮은 농도의 유해물질이 마이크로시스틴 합성 효소뿐만 아니라 세포 전체의 질소 성분을 조절하는 유전자, 단백질 합성 효소, 세포 내 에너지 대사, 마이크로시스틴 방출 효소 등 다양한 구성 요소의 활동을 '촉진'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녹조 증가…기후변화 탓만 아니다

지난 7월 10일 낙동강 합천 창녕보에 짙은 녹조가 발생했다. [대구환경운동연합]

지난 7월 10일 낙동강 합천 창녕보에 짙은 녹조가 발생했다. [대구환경운동연합]

유해 조류의 대발생은 미국에서만 연간 40억 달러(약 5조400억 원)가 넘는 경제적 손실을 유발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낙동강이나 대청댐 등에서 짙은 녹조가 해마다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수온 상승, 광합성의 재료가 되는 이산화탄소의 대기 농도 증가가 남세균 녹조를 부추기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논문을 발표한 연구팀은 "수온 상승과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 비료 사용의 증가로는 세계적으로 늘어난 녹조 발생을 설명하기 어렵다"며 "유해 화학물질 배출에 의한 조류 독소 생성 촉진도 정책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또 "독성 임계값보다 낮은 오염 물질 농도에서 조류의 성장이 촉진되고 독소의 방출이 증가하는 것은 자연계에서 드물지 않다"며 "유해 조류의 대발생에 대한 유해물질의 영향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폭넓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유해 조류 대발생을 고려한다면, 독성 임계값보다 낮은 유해물질도 위험 평가 때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유해물질 농도가 조류 독소 생성에 미치는 영향은 물속 질소·인 농도의 영향을 받기도 받는다. 조류 독소에 질소 성분이 많다면 질소를 줄이면 독소 생성이 제한되고, 인을 제거하면 오히려 독소가 증가한다는 보고도 있다.

녹조 낙동강 유해물질 배출 많아

2018년 6월 22일 경북 구미하수처리장에서 방류한 물이 낙동강으로 합류하고 있다. 당시 대구상수도사업본부는 "구미하수처리장 방류수를 수거해 분석한 결과 과불화화합물이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며 "과불화헥산술폰산이라는 과불화화합물이 배출된 것은 사실이지만 발암물질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2018년 6월 22일 경북 구미하수처리장에서 방류한 물이 낙동강으로 합류하고 있다. 당시 대구상수도사업본부는 "구미하수처리장 방류수를 수거해 분석한 결과 과불화화합물이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며 "과불화헥산술폰산이라는 과불화화합물이 배출된 것은 사실이지만 발암물질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한편, 녹조가 심각한 낙동강의 경우 중류에 위치한 공업단지에서 다양한 유해물질이 방류되고 있다.

지난해 4월 환경부에 제출된 '낙동강 수계 산업단지 미량유해물질 조사 및 인벤토리 구축'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단지와 공공 폐수처리시설 등 8곳의 방류수를 조사한 결과, 분석한 60여 종의 물질 가운데 19종이 검출됐다.

여기에는 알루미늄·코발트 등 중금속과 노닐페놀·헵타데칸 등 유기화합물, 과불옥탄산(PFOA) 등 과불 화합물 등이 포함돼 있다.

녹조 발생과 녹조 독소 생성의 관점에서도 낙동강에 방류되는 유해물질의 양과 농도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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