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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세균 녹조는 사람-동물 모두 위협하는 원 헬스 이슈" 이지영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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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하이오주립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이지영 교수. [이지영 교수 제공]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이지영 교수. [이지영 교수 제공]

"남세균(시아노박테리아) 녹조와 같은 유해 조류의 대발생(HAB)은 사람과 동물, 환경과 보건이 합쳐지는 원 헬스(One Health) 이슈이고, 피해를 예방하려면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이지영 교수는 지난 6일 한국식품과학회와 11일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에서 진행한 강연에서 "남세균 녹조 독소는 물과 토양·공기 사이를 오가고, 물과 농작물·물고기 등 다양한 노출 경로를 통해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독성 위험을 어느 한 경로만 따질 것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기후변화로 전 세계 녹조 빈발

2020년 여름 미국 오하이오 털리도 시 인근 이리호에서 짙은 녹조가 발생했다. AP=연합뉴스

2020년 여름 미국 오하이오 털리도 시 인근 이리호에서 짙은 녹조가 발생했다. AP=연합뉴스

이 교수는 "기후변화로 남세균 녹조가 전 세계적으로 빈번하게 발생하고,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녹조 연구는 기후변화까지 고려하는 학제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물·공기·토양 등 다양한 매체를 동시에 살펴봐야 하고, 생태학·보건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가 참여해야 하는 통섭(統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남세균 녹조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인공위성을 동원하고, 사람의 습관까지도 살펴야 한다.

북미 5대호 가운데 하나인 이리(Erie) 호는 오하이오주와 접하고 있는데, 남세균 녹조가 자주 발생한다. 오하이오 주 털리도 시에서는 2014년 수돗물에서 남세균 독소인 마이크로시스틴(MC)이 검출돼 도시 마비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 교수는 "MC는 피부와 눈·코를 자극하고, 간암을 일으키며, 남성에게 생식 독성을 유발하기도 한다"며 "청산가리보다 수천 배 독성이 강한 데다 열에 강해 끓여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특히, 순수한 MC보다 남세균 세포 용해물(lysate)을 먹였을 때 생쥐의 간암 발생률이 높았다. 이는 남세균 세포 내에는 MC 외에 다른 독소나 다른 유해한 물질이 있어 상승작용을 일으킨 탓으로 이 교수는 판단하고 있다.

녹조 독소 노출 장내세균도 바뀌어

북미 5대호 가운데 하나인 이리호에서 발생한 녹조.

북미 5대호 가운데 하나인 이리호에서 발생한 녹조.

담수 생태계에서 자라는 다양한 남세균 종류들. 오른쪽 아래 붉은색으로 표시한 마이크로시스티스가 가장 흔하게 관찰되는 남세균이다. [이지영 교수]

담수 생태계에서 자라는 다양한 남세균 종류들. 오른쪽 아래 붉은색으로 표시한 마이크로시스티스가 가장 흔하게 관찰되는 남세균이다. [이지영 교수]

그는 "최근 연구에서 생쥐에게 MC와 남세균 용해물을 먹인 결과, 장내 세균의 숫자가 줄어들고, 세균 군집 구성(microbiome)이 발암물질에 노출됐을 때와 비슷하게 바뀌는 것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인공위성으로 확인한 미국 내 남세균 녹조 발생 상황과 간 질환 발생 자료를 비교해 상수원에서 녹조 발생이 10% 증가할수록 비(非)알코올성 간 질환 사망률이 3% 늘어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인공위성으로 크고 작은 호수를 대상으로 남세균 특유의 색소인 파이코시아닌(phycocyanin) 농도를 분석한 것이다.

오하이오주로 범위를 좁혀 살펴본 결과, 녹조가 발생한 물을 상수원으로 사용하는 지역에서는 간암 발생이 뚜렷이 높았고, 상수원에서 가까울수록 더 뚜렷했다. 물과 함께 물고기·농작물의 영향 때문으로 추정됐다.

실제로 MC가 포함된 물로 당근을 재배했을 때 당근에서 토양보다 훨씬 높은 농도로 MC가 검출됐다. 농도가 미국 환경보호청(EPA)이나 세계보건기구(WHO)의 기준을 초과하는 수준이었다.

이 교수는 "남세균 녹조가 발생한 호수에서는 독소가 물고기 간에 축적되고, 녹조가 발생한 물로 농사를 지으면 토양과 농작물이 독소로 오염이 된다"며 "남세균이 공기 중으로 퍼져 토양과 농작물을 오염시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4대강 간 질환 녹조 관련됐을 수도

이지영 교수와 부경대 이승준 교수가 발표한 4대강 인근 지역 녹조와 간 질환 발생 상관 관계 연구 결과를 나타낸 지도. 4대강 살리기 사업 전에 비해 엽록소a 농도가 증가했고, 해당지역에서 간 질환 발생이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Journal of Environmentall Science and Health, 2019]

이지영 교수와 부경대 이승준 교수가 발표한 4대강 인근 지역 녹조와 간 질환 발생 상관 관계 연구 결과를 나타낸 지도. 4대강 살리기 사업 전에 비해 엽록소a 농도가 증가했고, 해당지역에서 간 질환 발생이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Journal of Environmentall Science and Health, 2019]

이 교수는 2019년 이승준 연구원(현 부경대 식품과학부 교수)과 함께 국내 4대강 살리기 사업 후에 4대강 인근 지역에서 간 질환이 많이 늘어난 사실을 확인해 논문으로 발표했다. 그는 "4대강 사업 전후, 4대강 인근 지역과 다른 지역을 비교해보면 간 질환 발생에서 뚜렷한 차이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다만, 자료가 없어 파이코시아닌이 아닌 엽록소a 분석 자료를 사용한 점과 인과관계가 아닌 상관관계를  분석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 10일 낙동강 합천창녕보에 짙은 녹조가 발생했다.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국장 제공]

지난 10일 낙동강 합천창녕보에 짙은 녹조가 발생했다.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국장 제공]

그는 "남세균 녹조 독소는 사람뿐만 아니라 가축과 야생동물에도 영향을 주는 원 헬스 이슈라는 점에서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지영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교수

이지영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교수

이 교수는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미생물학과에서 학사·석사 학위를, 미국 미시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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