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밈 주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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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조현숙 기자 중앙일보 기자
조현숙 경제정책팀 차장

조현숙 경제정책팀 차장

‘밈 주식(Meme stocks)이 돌아왔다.’

지난 1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실린 기사 머리글이다. 밈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를 타고 유행하는 사진·동영상을 뜻한다. 주식이란 말이 뒤에 덧붙어 밈 주식이란 단어가 생겨났다. 밈 주식에서 매출·순익 등 지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름 그대로 소셜미디어에서 떴다 지는 유행 같은 주식이다.

밈 주식이 부상한 건 지난해다. 월가가 아닌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을 주 무대로 활동하는 미국의 젊은 개인투자자가 열풍을 주도했다. 이들은 쓰는 말도 남다르다. 자신을 ‘유인원’이라고 칭한다. 영화 ‘혹성탈출’에서처럼 자신들의 무지함을 비웃는 인류(월스트리트 엘리트 투자가)를 몰아내고 지구(주식시장)를 점령하겠다는 욕심을 숨기지 않는다. 손실이 나도 흔들리지 않고 가격을 떠받치는 투자자를 ‘다이아몬드 손’이라 칭송하고, 주가를 끌어올리며 ‘달을 향해(to the moon)’ 가자고 외친다. 가격이 떡상(급등)할 때까지 존버(끝까지 버티기)한다는 동학·코인개미와 닮았다.

밈 주식 대표주자는 게임스톱이다. 사양 산업인 비디오게임 유통을 하던 게임스톱은 실적 부진으로 파산 위기에 몰렸다. 헤지펀드의 공격 대상이 된 게임스톱을 지켜내자며 개인투자자가 뭉쳤다. 2020년 4월 주당 3.25달러에 불과했던 게임스톱 주가는 지난해 1월 347.5달러까지 치솟았다. 1만692%에 이르는 무시무시한 수익률을 자랑했다. 몇몇 헤지펀드의 파산도 이끌어냈다.

하지만 상처뿐인 승리였다. 게임스톱 주가는 이후 수십 분의 1 수준으로 추락했고, 고점에 산 투자자는 손실을 떠안았다. 영화관 체인 AMC 엔터테인먼트, 생활용품 업체 베드배스앤드비욘드(BB&B), 블랙베리 등 다른 밈 주식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밈 주식이 최근 미국 증권가를 다시 달구기 시작했다. BB&B나 AMC 같은 밈 주식이 하루 사이 폭등과 폭락을 거듭하는 중이다. 미국 중앙은행이 긴축 속도전을 벌이고 있어 주가 붕괴 우려는 지난해보다 더하다. 블룸버그 기고에서 몰딘투자연구소의 투자전략가인 재러드 딜리언은 밈 주식에 다시 빠진 개미들을 두고 월가의 오랜 속담을 다시 꺼내 들었다. ‘(쉬지 않고 굴러오는) 증기 롤러 앞에서 동전을 줍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