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리볼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장원석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장원석 S팀 기자

장원석 S팀 기자

‘회전하다’는 뜻의 영어 revolve는 ‘돌다’는 의미의 라틴어 volvere에 접두사 re가 붙은 단어다. 자동차 브랜드 볼보(volvo), 회전식 연발 권총 리볼버(revolver) 등과 뿌리가 같다. 금융권에서 리볼빙(revolving)은 하나의 서비스명으로 쓰인다. 정식 명칭은 ‘일부결제금액이월약정’이다. 이달 결제대금 중 일부를 다음 달로 넘긴다는 뜻이다.

매달 100만원씩 쓰고, 사전에 정한 결제비율이 10%라면 첫 달엔 10만원만 결제하고, 90만원은 이월된다. 다음 달에도 100만원을 썼다면 총 결제금액은 이월된 90만원을 합해 190만원이지만 역시 10%인 19만원만 결제하고, 171만원은 다음 달로 넘어간다.

카드 산업이 발달한 영미권에선 리볼빙이 널리 쓰인다. 신용카드 소지자 중 리볼빙 사용자 비중이 70%에 달한다. 자동차·가전 같은 내구재를 제외하곤 할부가 별로 없기 때문인데, 리볼빙으로 할부 효과를 얻는 셈이다. 상대적으로 한국은 리볼빙 사용자가 적다. 식당 같은 서비스업에서도 할부가 일반적이니 대금 자체는 일시불로 결제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국내에 리볼빙 서비스가 상륙한 건 대략 20년밖에 안 됐다.

리볼빙은 장점이 있다. 당장의 상환 부담을 줄이면서, 연체까지 피할 수 있어서다. 결혼·여행같이 갑자기 지출이 늘 때 쓰면 좋다. 하지만 대금 납부를 공짜로 미뤄줄 리 없다. 국내 카드사의 리볼빙 평균 금리는 최고 연 18.43%. 현금서비스나 카드론 못지않다.

그런데도 쓰겠다는 사람이 많다. 7월 말 리볼빙 이월 잔액은 6조6651억원으로 또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3월 이후 줄곧 늘어나는 추세다. 리볼빙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에 포함되지 않는다. 돈줄 막힌 서민이 리볼빙을 사실상 추가 대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당국도 비상등을 켰다. 지난 7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리볼빙 불완전 판매에 대한 우려가 있다”며 금리 산정 내역 공개, 공시 주기 단축 등을 언급했다.

리볼빙을 ‘돌려막기’ 수단으로 쓰면 대출과 다르지 않다. 일반 대출은 상환 일정이라도 있지만, 리볼빙은 최장 5년까지 덜 갚은 대금과 이자가 계속 쌓인다. 스며들듯 빚의 수렁에 빠지기 쉽다. 리볼빙은 중도상환수수료가 없다. 급할 때 잠깐 쓰고 빨리 갚는 게 이득이다. 당장 어렵다면 결제비율이라도 꾸준히 높이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