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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X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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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전영선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영선 K엔터팀 팀장

전영선 K엔터팀 팀장

‘1970~79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 시각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한국에선 통상 이렇게 정의한다. ‘알 수 없는 미지수 세대’라는 평가 속에서 등장했다. 화려한 패션과 이전 세대와 완전히 구분되는 가치관으로 주목받은 시기는 짧았다. 서태지 데뷔(1992년)와 외환위기(1997년) 사이 쏟아진 X세대 담론이 무색하게 그 이후 조용하게 살고 있다. 신인류는 어쩌다 투명인류가 된 것일까.

우선 X세대의 결정적 특징 하나. 바로 ‘n86’(80년대 학번 60년대생) 후배 세대라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모셔온 n86은 아직, 아주, 매우 건재하다. 그 사이 기센 밀레니얼(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은 이미 사회 중심으로 진격했다. 70년대생을 제치고 상장사 대표도 되고, 공당 대표에도 오른다.

X세대는 n86의 디테일하지 않은 지시를 속으로 욕할지언정 이행해내는 데 익숙하다. ‘그걸 왜?’라고 따지는 밀레니얼을 달래느니, 직접 하는 게 빠르다는 경험을 쌓아왔다. 이러니 밀레니얼 입장에서 X세대는 n86과 한통속이다. X세대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높은 확률로 n86세대와 동반 퇴장, 혹은 ‘패싱’이 예고돼 있다.

X세대를 ‘저평가 우량주’라고 보는 『다정한 개인주의자』 김민희 작가는 조금은 희망적 관측을 내놓는다. 그는 X세대가 밀려난 이유에 대해 ‘자리싸움은 애초에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데, (자리에) 관심 있는 X세대가 많지 않다’고 본다. 또 현재 X세대가 영원한 조연으로 남거나 나다움을 찾아 새로운 시대의 리더가 될 갈림길에 있다고도 분석한다.

여기까지 읽으면 뜨거운 각성이 와야 하는데, 그보다 조기 퇴장의 장점을 애써 생각해내려고 하는 것을 보니 이 X세대는 아무래도 틀린 것 같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X세대는 문화에서 만큼은 독보적 존재감을 뽐낸다. 정치·경제·사회 무대에서 밀려나도, 입맛에 딱 맞는 보고 즐기고 소비할 거리가 공급 중단될 일은 없다. 그리고 X세대의 선택은 자주 메가트렌드가 된다(『영 포티, X세대가 돌아온다』). 그동안 길러온 취향과 안목은 누구도 빼앗지 못한다. 그러니, ‘힘내라, X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