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박한슬의 숫자읽기

한국에만 있는 산후조리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박한슬 약사·작가

박한슬 약사·작가

산후조리원은 한국에만 있다. 일부 국가에 유사한 시설이 존재하는 사례도 있지만, 산후조리원이 사회적으로 보편화한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사실이 아니라 해석이다. 대체 왜 한국에만 유난스러운 형태의 산후조리 문화가 발달했느냐는 것이다. 한국식 산후조리가 과잉인 부분도 많지만, 산후조리원 자체는 국내외의 제도적 차이와 문화적 변화가 맞물려서 만들어낸 한국 고유의 현상이라고 읽는 게 훨씬 합리적이다.

출산 후 몸조리의 필요성은 국가 간에 차이가 없지만, 대처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주요 선진국에서는 산모가 출산 후 산후조리원 같은 시설에 입소하지 않는다. 그런 시설이 없기도 하거니와, 산모 본인은 물론이고 배우자도 장기간의 출산 휴가(maternity leave)를 사용할 수 있으므로 집에서도 부부끼리 요양이 가능해서다. 대신 전문적인 산모 돌봄에 구멍이 생길 수 있으니 국가나 지자체 등의 보조로 전문적인 산후조리 인력이 가정에 파견되어 산모를 돕는데, 한국에서는 남성 육아휴직과 돌봄 인력 지원이 모두 없다시피 하단 게 문제다.

2020년 기준 국내 육아휴직자 중 남성은 24%에 불과했다. 남성 육아휴직에 대한 인식이 나아지곤 있지만, 여전히 산후조리를 돕기에는 턱없이 낮은 비율이다. 게다가 전문적인 산모 돌봄 인력이 지원되지도 않으니, 산모 돌봄은 아직도 국내에선 제도적으로 거의 방치 상태다. 과거에는 끈끈한 가족문화에 기대, 친정엄마가 그림자 노동 형태로 산모를 돌봤지만 이런 가족문화조차 변화하자 산모 돌봄에 다시 빈틈이 생겼다. 산후조리원은 이 자리를 영리하게 채운 것에 가깝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실제로 보건복지부의 ‘산후조리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2020년에 출산한 산모의 81.2%는 산후조리원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작 20년여 남짓한 역사를 가진 산후조리원이 조직적으로 산모들의 행동 양식을  바꿨다고 보긴 어려우니, 숨은 돌봄 수요가 그만큼이나 많았다는 방증일 것이다. 문제는 돌봄 수요를 흡수한 산후조리원의 절대다수가 민간기관인 탓에, 비용 부담을 느끼는 저소득층 산모는 접근이 어렵다는 점이다.

같은 조사에서 가구소득이 월 200만원 미만인 가정의 산모는 고작 58%만이 산후조리원에서 전문적인 돌봄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소득수준에 따라 전체 산후조리 기간도 차이가 났다. 소득 최저구간 산모는 소득 최고 구간 산모보다 산후조리 기간이 무려 12일이나 짧았다. 육아나 교육 부담 경감 이전에 출산 직후 산모의 건강관리 격차조차 벌충해주지 못하는 것이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선 거시적인 구조 개혁도 중요하겠지만, 당사자인 산모의 돌봄 문제조차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지 잘 모르겠다.

박한슬 약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