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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시켜서 환자 실밥 풀었는데…간호조무사 유죄 확정 왜

중앙일보

입력

의료인이 아니면서 성형수술 환자의 실밥을 제거한 간호조무사와 이를 지시한 의사 모두 유죄가 확정됐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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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의료법 위반으로 기소된 의사 A씨에 대한 벌금 300만원, 간호조무사 B씨의 벌금 100만원에 대한 선고유예 형을 확정한다고 27일 밝혔다.

부산에서 의원을 운영하는 의사 A씨는 2020년 1월 28일 이마거상술 등을 받고 나서 실밥 제거를 위해 병원에 방문한 환자에게 간호조무사인 B씨가 혼자 실밥을 제거하도록 지시했다. 다른 환자를 수술하고 있어 치료할 시간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B씨는 메스와 핀셋을 이용해 환자의 양쪽 두 눈의 위아래에 꿰매어 놓은 실밥을 제거했다. 이들은 무면허 의료행위를 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수술 후 실밥을 제거하는 행위는 간호사나 간호조무사도 의사의 지시하에 할 수 있는 진료 보조행위’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실밥 제거에 앞서 수술 부위 상태의 이상 유무는 비의료인인 간호조무사가 아니라 의사의 의학적 판단이 우선돼야 한다는 게 지적했다.

진료의 보조는 의사가 주체가 되어 진료행위를 할 때 의사의 지시에 따라 조력하는 것을 뜻하므로, 의사가 환자를 전혀 진찰하지 않은 상태에서 간호조무사가 단독으로 진료행위를 하는 것은 진료보조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지난 2011년 대법원 판례를 언급하면서다.

또 실밥 제거 행위가 긴급했는지나 방법 등을 따져볼 때, 의사가 아닌 간호조무사만이 환자의 상태를 확인한 뒤 실밥을 제거한 것이 사회통념에 비춰 용인될 수 있는 정당 행위라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1심은 이에 의사 A씨는 벌금 300만원을, B씨에 대한 벌금 100만원형의 선고유예를 판결했다. 선고유예는 1년 이하 징역이나 벌금형에 해당하는 경미한 범죄에 대해 형의 선고를 미뤄주는 판결이다. 선고유예를 받은 날로부터 통상 2년이 지나면 해당 사건은 면소(免訴)된 것으로 간주한다.

피고인들은 유죄 판결에 각각 항소했다. 의사인 A씨는 “벌금 300만 원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고, 간호조무사 B씨는 “의사인 A의 지도·감독 아래 실밥 제거를 했기 때문에 위법성이 조각되는 정당행위”라고 주장하면서다.

항소심과 대법원은 이들의 항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유죄를 확정했다. 다만 이들이 전과가 없고, 사건 범행으로 중한 결과가 발생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점, B씨는 간호조무사로서 사용자인 의사 A의 지시에 따라 이 사건 범행을 하게 되는 등 그 경위에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해 선고유예 판결을 유지했다.

양형 기준에 있어 ‘의료법 위반에 해당하는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의료법 부칙이 공소사실 이후에 시행된 점을 참작해 이 부분이 항소심에서 직권파기됐지만, 실제 양형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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