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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헌재 결정 계기로 수사기관 통신조회 남용 뿌리 뽑아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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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해 1월 2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현판식에 김진욱 초대 처장,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 윤호중 당시 국회 법사위원장 등이 참석해 있다. 장진영 기자

지난해 1월 2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현판식에 김진욱 초대 처장,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 윤호중 당시 국회 법사위원장 등이 참석해 있다. 장진영 기자

헌재 “사후 통지해야” 임의 조회 제동  

지난해 공수처, 무더기 사찰로 물의

헌법재판소가 수사기관의 깜깜이 통신조회에 대해 제동을 걸었다. 검찰·경찰·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군·국가정보원 등이 법원의 영장 없이 통신조회를 할 경우 반드시 조회 대상자에게 사후 통지를 해야 한다는 내용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어제 내렸다. 이에 따라 입법부는 내년 말까지 수사기관이 임의로 통신조회를 할 수 있도록 한 해당 법률 조항(전기통신사업법 83조 3항 등)을 개정해야 한다. 개정하지 않을 경우 임의 통신조회에 대한 법률적 근거 자체가 사라진다.

이 조항에 대한 위헌 논란은 과거 민주화운동 때부터 제기돼 왔다. 그러다 지난해 공수처가 과도하게 통신자료를 들여다보면서 본격적으로 논란이 됐다. 공수처는 ‘고발 사주 의혹’과 이성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의 ‘공소장 유출 의혹’ 등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정치인, 언론인, 법조인, 시민사회 인사 등에 대한 대대적인 통신조회를 했다. ‘고발 사주 의혹’은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이던 2020년, 검찰이 총선을 앞두고 당시 범여권 측 인물들의 형사고발을 사주했다는 의혹이다. 국회 등에 따르면 이 의혹으로만 국민의힘 국회의원 80명, 기자 100명 이상 등이 통신자료를 조회당했다.

특히 공수처는 ‘김진욱 공수처장의 이성윤 고검장 황제조사’ 등의 내용이 보도되자 그 출처를 찾겠다고 혈안이 됐다. 이 과정에서 기자들이 통신조회를 당했지만 이 중 몇 건이 법원의 영장 발부 없이 처리됐는지 알 수 없었다. 한 기자의 어머니 통신자료까지 조회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민간인 사찰 논란도 일었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국회에서 “적법한 수단이며 사찰이 아니다”고 항변했지만 구체적으로 임의사찰이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답을 내놓지 않았다.

헌재는 영장 없는 임의 통신조회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효율적인 수사와 정보 수집의 신속성, 밀행성 등의 필요성을 고려해 사전에 통지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면 수사기관이 통신자료를 취득한 이후에 정보 수집 목적에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통신자료의 취득 사실을 이용자에게 통지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 경우 당사자는 수사기관의 조치에 대해 소송 등의 방법으로 자기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대처할 기회가 생긴다.

수사기관은 헌재의 엄격한 임의 통신조회 주문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헌재는 “전기통신사업자를 통해 통신자료를 취득하는 것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할지라도 국가가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개인의 정보를 취득하는 일은 공익을 달성함에 있어 필요한 경우로 엄격하게 한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소한도의 범위 내에서만 허용돼야 하는 건 두말할 필요 없다. 차제에 수사기관의 통신조회 관행 전반에 대한 점검과 함께 헌재 결정에 맞춰 법을 개정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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