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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Blog] 미국 '영화제'서 짝짝짝 … 이젠 미국 '시장'을 뚫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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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할리우드 한복판에서 한국 영화가 상영되고 박수 갈채를 받았습니다. 한 10년 전이라면 큰 뉴스였겠지만 이제는 그리 놀랄 만한 일도 아니죠. 12일 막을 내린 미국 영화연구소(AFI) 국제영화제 얘기입니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이 영화제에 한국 영화로는 '괴물''시간''가족의 탄생' 등 세 편이 초대됐습니다. 이 중 '괴물'은 두 번의 상영 모두 매진될 정도로 인기였다고 합니다.

10일 오후 영화제가 열리는 할리우드 아크라이트 극장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인 샤즈 베네트는 한국 영화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한국 영화는 신선하고 독창적인 작품이 많아 아주 좋아합니다. 특히 김기덕 감독 영화는 신작이 나올 때마다 빼놓지 않고 초대하고 있죠. 올해는 사실 더 많은 한국 영화를 상영하고 싶었지만 나라별 안배를 하다 보니 여의치 않았어요."

짧은 인터뷰에 이어 '가족의 탄생'이 상영되는 극장 안을 들어가 봤습니다. 관객은 60여 명으로 많지도 적지도 않은 수준이었죠. 한국 영화이고 코리아타운이 가까운 지역이니 재미동포 관객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습니다. 드문드문 동포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지만 인종과 피부색이 다른 사람이 훨씬 많더군요.

AFI 영화제와 연계한 아메리칸필름마켓(AFM)에서도 한국은 주목을 받았죠. LA타임스는 '한국 영화가 몰려온다'는 제목의 특집기사에서 "한국은 21개 회사에서 100여 명을 파견했다. 규모로는 참가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전했습니다. AFM에서 소개된 한국 영화는 100여 편을 헤아립니다.

이렇게만 보면 한국 영화는 미국 시장에서 이미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냉정히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거대한 미국 시장의 문을 이제 막 두드리기 시작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겠죠. 영화제의 호평이 흥행의 성공을 보장하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영화제에서 외국 영화를 찾아볼 정도로 열성적인 예술영화 팬과 심심풀이로 극장을 찾는 일반 관객과는 큰 차이가 있거든요. AFM에서도 실제 계약이 성사된 사례는 많지 않았습니다.

미국 시장의 가장 큰 장벽은 언어 문제입니다. 미국 관객은 대체로 자막이 들어간 영화를 싫어합니다. 한국 영화를 미국에서 직접 틀어서는 좀처럼 흥행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그래서 요즘 충무로는 미국 시장을 뚫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감독.배우를 활용해 현지에서 영어로 제작(CJ엔터테인먼트 '웨스트 32번가' 등)하거나 할리우드의 유명 제작자와 합작 영화를 추진(LJ필름 '줄리아 프로젝트' 등)하는 등이죠.

미국에서 한국 영화가 확실한 설자리를 얻으려면 어떤 식으로든 성공 사례가 빨리 나와 시장의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해 보입니다.

LA=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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