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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최동원, 아픈데도 저와 캐치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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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아버지 최동원을 대신해 KBO 올스타전(16일)에 참석해 ‘레전드 40인’ 트로피를 받고 감사 인사를 하는 아들 최기호씨. 최동원은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전무후무한 4승(1패)을 기록하는 등 불꽃 같은 야구인생을 살아왔다. [뉴스1]

아버지 최동원을 대신해 KBO 올스타전(16일)에 참석해 ‘레전드 40인’ 트로피를 받고 감사 인사를 하는 아들 최기호씨. 최동원은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전무후무한 4승(1패)을 기록하는 등 불꽃 같은 야구인생을 살아왔다. [뉴스1]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11번 투수가 전광판에 등장했다. 유니폼 뒤에 적힌 이름은 최동원. 잠실야구장의 만원 관중이 일제히 환호했다. 영상 속 최동원이 특유의 역동적인 폼으로 불꽃 같은 공을 뿌리자 잠실구장 마운드에 서 있던 선동열이 와인드업을 시작했다. 가상과 현실을 잇는 두 ‘전설’의 릴레이 시구. 지난 16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2 프로야구 올스타전의 서막이자 하이라이트였다.

최동원의 아들 최기호(32) 씨는 백스톱 뒤에서 그 장면을 바라보다 솟구치는 눈물을 간신히 참았다. 최씨는 18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생전 아버지 모습과 정말 비슷해서 깜짝 놀랐다. 아버지가 이 자리에 직접 오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 울컥했다”고 털어놨다.

KBO는 올해 프로야구 출범 40주년을 기념하는 ‘레전드 40인’을 선정했다. 전문가 투표(80%)와 팬 투표(20%) 결과를 합산한 뒤 가장 많은 점수를 얻은 선수 4명을 올스타전에서 먼저 공개했다. 최동원은 선동열에 이어 2위에 이름을 올렸다. 3위가 이종범, 4위가 이승엽이었다.

다만 올스타전 초대장은 최동원 본인에게 닿지 못했다. 그는 2011년 대장암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 일본에서 회사원으로 일하는 아들 최씨가 휴가를 내고 귀국해 아버지 대신 기념 행사에 참석했다. 최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벌써 11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야구를 좋아하는 많은 분이 아직도 아버지를 기억해주시고, 추억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게 느껴져서 뭉클했다”고 했다.

최동원이 프로야구 한화이글스 2군 감독 시절 모습. [중앙포토]

최동원이 프로야구 한화이글스 2군 감독 시절 모습. [중앙포토]

최동원은 불꽃 같은 투수였다. 금테 안경 뒤로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이면서 지칠 줄 모르고 공을 던졌다. 특히 1984년은 하이라이트였다. 최동원은 그해 51경기에 등판해 284와 3분의 2이닝을 소화했다. 성적은 27승 13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2.40, 삼진 223개였다. 무엇보다 최동원은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홀로 4승(1패)을 따냈다.

최씨는 올스타전에서 선동열과 같은 차를 타고 그라운드로 나왔다. “선동열 감독님이 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는지, 또 아버지의 연투 능력, 자기 관리, 야구를 대하는 마음가짐 등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자세히 얘기해주셨다. 새삼 감동을 받아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며 “내게는 그냥 다정하고, 때로는 엄격하기도 한 평범한 아버지셨다. 그런데 야구 레전드 분들께 전해 듣는 아버지의 모습은 낯설면서도 신기하고, 또 자랑스러운 느낌이었다”고 했다.

많은 야구인은 최동원을 자존심 강한 천재 투수이자 냉철한 승부사로 기억한다. 아들이 떠올리는 아버지의 얼굴은 조금 다르다. 집 근처 공원에서 함께 캐치볼을 하며 즐거워하던, 고교시절 어느 날의 함박웃음이 기억에 가장 또렷하게 남아 있다. 최 씨는 “그날 집에 있다가 갑자기 아버지와 캐치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하러 나가실래요?’ 하니까 흔쾌히 ‘그러자’ 하셨다. 우리 둘이 캐치볼을 하니 어느새 (아버지를 알아본) 주변 분들이 곁에 모여 응원을 해주시더라”며 웃었다.

당시 최동원은 캐치볼조차 힘들 만큼, 어깨에 만성 통증을 달고 살았다. 그런데도 아들의 공을 받고 아들을 향해 공을 던지며 연신 웃음을 터트렸다. 아들은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여전히 생생하다”고 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마음에 담아뒀던 그리움을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평소엔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아버지의 빈자리가 무척 커요. 여전히 투수 최동원을 그리워해주시는 많은 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저도 실은, 아버지가 정말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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