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데뷔 문근영 "연기로 구속한 나, 연출이 해방시켜줬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배우 문근영이 10일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단편 영화 부문 '엑스라지'에서 감독 데뷔작인 단편 '심연' '현재진행형' '꿈에 와줘'를 첫 상영했다. 사진은 경기도 부천 CGV소풍에서 영화 상영 후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GV) 모습이다. [사진 BIFAN]

“한 관객이 세 단편 모두 맨발이 나온다고 의미를 둔 거냐고 묻더군요. 맨발에 큰 의미를 둔 게 아니었는데, 무의식에 있던 자유로운 연기의 갈망이지 않았나 싶어요.”
10일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 감독 데뷔작인 단편 영화 3편을 공개한 배우 문근영(35). 그가 직접 각본‧연출한 단편 ‘심연’ ‘현재진행형’ ‘꿈에 와줘’는 신진 감독 단편을 소개하는 부문 ‘엑스라지’에 초청됐다. 연출 데뷔작 ‘헌트’(8월 10일 개봉)로 올해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됐던 배우 이정재, 지난해 단편 연출에 도전한 이제훈‧손석구‧박정민‧최희서 등에 이어 또 한 명의 배우 출신 감독이 탄생한 셈이다.

배우 문근영 감독 데뷔 단편 3편 #10일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첫상영

신수원 "배우의 얼굴과 몸 들여다보게 한다"

‘감독’ 문근영의 단편들은 각 9~15분의 짧은 길이. 세 작품 다 대사 없이 배우의 몸짓과 표정, 미술과 조명, 음악 등으로 표현한 게 특징이다. ‘심연’은 문근영 자신의 이야기를, ‘현재진행형’ ‘꿈에 와줘’는 각각 주연 배우 정평과 안승균이 각자의 이야기를 토대로 문근영과 공동 각본까지 썼다. 문근영과 영화 ‘유리정원’(2017)을 함께 한 신수원 감독은 “배우의 얼굴과 몸을 들여다 보게 만드는 작품”이라 평했다.
문근영이 주연을 겸한 ‘심연’은 푸른 물속에서 수렁에 갇힌 여자(문근영)가 또 다른 빛을 찾아 나가는 모습을 그렸다. 어느 전시회에서 물이 가득한 작품을 보고 떠오른 심해(深海) 장면에서 구상을 발전시켰다.

배우 문근영의 감독 데뷔작인 단편 '심연'이 10일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 상영됐다. [사진 BIFAN]

-‘심연’이 자신의 이야기라 했는데.

“‘나’의 주체가 내가 되니까 연기가 다시 보이기 시작하더라. 그런 깨달음을 담은 작품이 ‘심연’이다. 인생은 끝없는 반복이고, 그것조차 내가 사랑해야 할 삶이란 걸 깨달았다.”

-9분 내내 수중 촬영 만으로 찍었는데.

“주인공이 숨 쉬는 걸 잊을 정도로 심취해 있다. 제가 연기를 너무 좋아해서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는 의미도 함축된 것 같다.”

‘현재진행형’은 무대 위 한 남자(정평)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조명 빛과 쫓고 쫓기기를 거듭하는 흑백영화에 가까운 색감의 작품. ‘꿈에 와줘’는 서울의 밤 거리를 걷던 남자(안승균)가 애타게 그리워하던 연인(이다겸)과 꿈에서 만나 춤을 추는 과정을 짧은 무용극처럼 그렸다.

배우 문근영이 직접 각본, 연출한 단편 영화 '현재진행형'이 10일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 공개됐다. [사진 BIFAN]

-‘현재진행형’은 주인공인 배우와 대중적 관심을 연상시키는 조명이 술래잡기를 하는 듯한 작품인데.

“제목을 ‘숙명’ ‘굴레’로 하려다 지금의 제목이 됐다. 배우라는 직업에 ‘살’이 꼈는지, 벗어나고 싶어도 도저히 벗어나지 못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에서 시작됐다.”

2010년 연기 회의 느낀 문근영의 선택은

2019년 드라마 ‘유령을 잡아라!’(tvN)까지 쉴 새 없이 작품 활동을 했던 문근영은 3년의 공백기 동안 여행하고 쉬면서도 새삼 고민에 빠졌다고 했다. 1999년 영화 ‘길 위에서’로 데뷔해 KBS 드라마 ‘가을동화’(2000)의 흥행 이후 ‘국민 여동생’으로 사랑 받은 그다.
“연기를 하느라 내 몸과 마음은 늘 뒷전이었다”는 그는 2010년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KBS2) ‘매리는 외박중’(KBS2), 연극 ‘클로져’ 세 작품을 몰아서 하면서 처음으로 회의가 들었다고 했다. “몸도 마음도 지쳤고, ‘연기란 뭐지. 나는 뭐지. 현장이란 뭐지’ 라는 생각이 휘몰아쳤기 때문”이라고 했다.

배우 문근영이 10일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 감독 데뷔작인 단편 '심연' '현재진행형' '꿈에 와줘' 첫 공개 후 경기도 부천 고려호텔에서 취재진과 만났다. [사진 BIFAN]

-가장 자유롭게 연기한 기억은.

“‘가을동화’와 ‘장화, 홍련’(2003, 김지운 감독) 때다. 너무 어리고 아무것도 몰라서 촬영장에서 마음대로 했다. 감독님들이 ‘더 해, 뭐 하고 싶어’ 하시면 ‘저라면 이렇게 할 것 같다’며 연기했다.”

-무엇이 자신을 힘들게 했을까.

“생각이 많아졌다. 더 잘하려고, 나아지려고, 항상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주려 하다 보니까 스스로를 구속하게 됐다. 연출의 경험이 그런 나를 해방시켜줬다.”

-카메라 뒤에 서니 뭐가 새롭던가.

“‘케어’받는 입장에서 ‘케어’하는 입장이 되니 내가 온전히 서 있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자각했다. 감독들이 참 외롭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배우들 하는 걸 보니 연기가 더 하고 싶어졌다.”

문근영표 '병맛' 공포영화 나올까

문근영 감독의 작품이 또 나올 수 있을까. 독특한 꿈을 잘 꾼다는 그는 꿈과 일상의 감정, 음악을 들으며 떠오른 장면 등을 꾸준히 기록해왔다. “내가 원하는 감정을 표현하고, 이야기를 들려줄 캐릭터를 직접 만들기 위해 동료 배우들과 '바치 창작집단'을 만들었다”는 그다. 이번에 연출한 단편들도 바치 창작집단 유튜브를 통해 볼 수 있다.
최근엔 짧은 공포영화 시나리오도 써봤단다. “완전 ‘병맛’ 공포에요. 저 ‘병맛’ 되게 좋아하거든요. 연출은 다른 분을 구할 수 있지만, 글은 계속 써보려고요.”
그는 “이번 작품 편집 기사가 ‘작품이 따뜻하다’고 칭찬해줬다”면서 “내 자식 같은 작품이 잘 뛰어노는 걸 보고 싶다. 자유롭게 봐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배우로서 연기 스타일에 대해선 "연기를 좋아하지만, 연기가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며 웃었다.
“연기할 땐 제가 무한했으면 좋겠어요. 신인 때부터 변하지 않는 목표예요. 자유롭고 틀에 박히지 않는 무한함과 가능성, 그리고 기대치를 만족시킬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이 있으면 좋겠어요. 욕심이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