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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변방서 얼마나 애썼는지…" 20년차 드랙퀸, '모어'의 고백 [배우 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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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모어' 한 장면. 2019년 스톤월 항쟁 50주년 공연에 초청된 드랙아티스트 모어가 흑조 분장을 하고 뉴욕 도심 한복판에 서있다. [사진 엣나인필름]

다큐멘터리 '모어' 한 장면. 2019년 스톤월 항쟁 50주년 공연에 초청된 드랙아티스트 모어가 흑조 분장을 하고 뉴욕 도심 한복판에 서있다. [사진 엣나인필름]

미국 성소수자 인권 운동의 발단이 된 ‘스톤월 항쟁’이 50주년을 맞은 지난 2019년,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등이 섰던 전위 예술의 메카 라 마마 극장에 한국 창작 뮤지컬 ‘13 후르츠 케이크(13 Fruit Cakes)’로 초청받은 배우 겸 드랙아티스트 모어(본명 모지민‧44).
올란도 역할을 맡아 마침내 토슈즈를 신고 무대에 오른 그는 한때 발레리나를 꿈꿨습니다. 전남 무안 시골집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의 삶이 “투쟁하듯 아름답게 꼬여야 했던” 이유죠. 중앙일보 팟캐스트 ‘배우언니’가 지난 6일 그를 만났습니다.
드랙(Drag)이란 주어진 성별‧지위에 기대되는 모습을 벗어나 자신을 꾸미는 퍼포먼스의 일종. 화려한 깃털 장식, 망사 스타킹, 하이힐을 즐기는 모어는 이태원 바(Bar) ‘트랜스’ 무대에서 20년 넘게 활동해온 독보적 ‘드랙퀸’입니다.
독창적 외양과 안무로 가수 이은미의 ‘녹턴’(2010), 이랑의 ‘나는 왜 알아요’(2017), 씨엘의 ‘+H₩A+(2020), 미미시스터즈의 '우리, 수다떨자'(2021),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탱탱볼'(2021) 등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며 드랙의 존재를 알렸죠. 솔직발칙한 삶을 가사처럼 실어낸 쇼 대사들도 독창적입니다.
자전적 록 뮤지컬 ‘헤드윅’으로 이름난 배우 겸 연출가 존 카메론 미첼은 모어의 공연 영상에 반해 그를 만나려고 내한 일정을 늘리고, 스톤월 항쟁 50주년 공연 때는 자신의 뉴욕 집을 숙소로 쓰라며 무상으로 내줬을 정도입니다. 당시 브로드웨이에서 열린 ‘헤드윅’ 콘서트 무대에도 초대했죠.

다큐멘터리 '모어'에서 '헤드윅' 스타 존 카메론 미첼(오른쪽)과 모어가 만난 장면.[사진 엣나인필름]

다큐멘터리 '모어'에서 '헤드윅' 스타 존 카메론 미첼(오른쪽)과 모어가 만난 장면.[사진 엣나인필름]

일본에서 다큐멘터리를 찍던 이일하 감독이 모어를 발견한 것도 파격적인 화보 사진에섭니다. 무대 뒤 분장실 거울에 기대 망사스타킹, 속옷 차림으로 다리를 쫙 벌린 채 짙은 화장을 한 드랙퀸의 모습. 사진을 찍은 일본 작가의 "그는 한국인"이란 귀띔에 그길로 2018년 한국에 달려와 이태원 지하바에서 공연하던 모어를 만났죠. 아름다운 환상 장면 속 퍼포먼스와 밥상 차리는 일상이 어우러진 다큐멘터리 ‘모어’가 탄생한 계기입니다.
이후 3년간 촬영해 지난해 완성한 다큐는 지난해 DMZ국제다큐영화제 국제경쟁부문에 초청돼 ‘아름다운 기러기상’을, 이어 서울독립영화제 독불장군상을 받았죠. 부산국제영화제,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에서 주목받고 올해 무주산골영화제에선 “존재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준 아티스트”란 평가와 함께 아빈크리에이티브상을 수상했습니다.
지난달 23일 극장에서 개봉한 뒤엔 영화를 보고 오열했다는 관객이 많습니다. 화려함 뒤에 살아남기 위해 버텨온 모어의 고단한 표정을 보고서입니다.

“여성성 버리라” 뺨갈긴 무용과 선배, 자살 대신 택한 '드랙'이란 애환

“세상에는 여러 유형의 사랑이 있고, 여러 유형의 색을 가진 사람이 있죠.” 드랙 아티스트 '모어' 모지민씨의 삶과 드랙, 사랑에 관한 인터뷰, 9일 공개된 ‘배우 언니’의 ‘발레리나 꿈꾼 20년차 드랙퀸, 털 난 물고기 '모어' 모지민’편(https://www.joongang.co.kr/jpod/episode/888)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여러 유형의 사랑이 있고, 여러 유형의 색을 가진 사람이 있죠.” 드랙 아티스트 '모어' 모지민씨의 삶과 드랙, 사랑에 관한 인터뷰, 9일 공개된 ‘배우 언니’의 ‘발레리나 꿈꾼 20년차 드랙퀸, 털 난 물고기 '모어' 모지민’편(https://www.joongang.co.kr/jpod/episode/888)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그는 중학교 땐 친구도 많았지만, 여느 사내아이들과 다른 말투‧몸짓 탓에 괴롭힘도 당했다고 합니다. 유연성이 남달라 학교 교사 권유로 시작한 발레는 숨구멍이 됐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합격했을 땐 읍내에 축하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한예종에선 발레리나가 아닌 발레리노 복장으로 무대에 올랐죠. 이제 맘껏 춤출 수 있을까 했던 기대는 학교 선배가 “너 그 여성성 버려라”며 그의 뺨을 갈긴 순간 산산조각 났습니다. “아, 네버엔딩 스토리구나.” 자살까지 생각했던 그는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세상의 조롱을 피해 이태원 쥐구멍으로 도망쳤다 (중략) 얼굴의 화장은 두터워지고 또 다른 자아가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다큐에서 모어가 들려준 독백입니다.
군대에 가선 커밍아웃을 하자 격리조치와 함께 칠판에 이름과 함께 ‘정신질환’이란 꼬리표가 적혔다고 합니다. 올해 만난 지 24년 되는 ‘남편’ 제냐와도 부침이 많았습니다. 3남 1녀 중 유별났던 그에게 “왜 다른 ‘머시매’들과 다르냐”고 비난하지 않은 아버지, 어머니, 가족들의 사랑이 그를 살 수 있게 했답니다.

다큐멘터리 '모어'에서 한예종 시절 모지민씨가 발레 연습복을 입은 모습이다. [사진 엣나인필름]

다큐멘터리 '모어'에서 한예종 시절 모지민씨가 발레 연습복을 입은 모습이다. [사진 엣나인필름]

이런 내용은 다큐와 함께 지난 4월 펴낸 자전적 에세이집 『털 난 물고기 모어』에도 담겼습니다. 두 작품 다 털 모(毛)에 물고기 어(魚)를 넣어 그가 직접 지은 예명이 제목이 됐습니다. “2006년 엄정화의 무대에 설 땐 제 성을 따 영어 모어(More)로 지었는데 4년 전 가수 이랑과 뉴스레터를 연재하고 낭독하며 한자까지 붙여보게 됐죠. 털 난 물고기, 이 사회 어디에도 속하기 애매하고 이질적이고 낯선 저를 명시하는 정확한 2음절 같았어요.”
그는 “어떤 소수자의 삶만이 아니라 한국사회 변방에서 인간 ‘모어’ 모지민이 얼마나 애쓰며 살고 있는지 봐달라”고 부탁합니다. 다큐와 책, 꾸준한 공연 활동이 “나는 없다고 말하지만 결국 나는 있다 라는 걸 이 사회에 증명하고자 하는 결과물”이라면서요.
“세상에는 여러 유형의 사랑이 있고, 여러 유형의 색을 가진 사람이 있죠.” 1시간을 꽉 채운 모어의 삶과 드랙, 사랑에 관한 이야기, 9일 공개된 ‘배우 언니’의 ‘발레리나 꿈꾼 20년차 드랙퀸, 털 난 물고기 '모어' 모지민’편(https://www.joongang.co.kr/jpod/episode/888)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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