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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물이 돌아왔다, 인권위 조사관은 통곡했다[BOOK 휴가철 추천도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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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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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호소의 말들
최은숙 지음
창비

국가인권위원회의 진정‧민원 접수 e메일 주소는 뭘까. 인권을 뜻하는 영어 단어 ‘human rights’나 도움을 의미하는 'help' 일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확인해 보니 ‘호소’(hoso@humanrights.go.kr)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누구나 무엇이든 억울한 일이 있으면 호소할 곳이 돼야 한단 의미로 이렇게 정했다고 한다. 하긴, 억울함을 남에게 간곡히 알리는 것이 침해된 인권 구제를 위한 첫발일 테다.

이 책 『어떤 호소의 말들』은 저자가 20여년간 인권위 조사관으로서 그 첫발들을 함께 걸어오며 귀기울인 호소의 기록이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배움이 짧다는 이유로, 이주노동자라서, 장애인이라서, 비정규직이라서….다양한 무늬의 억울함을 날마다 접해온 그는 다정(多情)한 마음으로 한 땀 한 땀 사람들과 사건 너머의 이야기를 적었다.

우리는 피해자의 호소가 언제나 절실하리라 지레짐작하고, 지지를 받으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저자에게 온 호소들은 때로는 천진하며, 종종 외롭다. 스포츠 분야 인권침해를 조사하며 만난 아이들은 “욕은 좀 하시지만 아주 많이 때리는 건 아니다”라고 피해 경험을 가벼운 일인 양 풀어놓는다.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인 진정인은 주변 동료들에게 지지는커녕 ‘망상증 환자’로 의심받는다.

저자는 마음이 힘들었던 순간도 솔직히 털어놓는다. 캐비닛에 쌓인 사건 수를 줄여보려다 자칫 사건을 잘못 종결시키는 건 아닌지 두려워한다. 진정인에게 보낸 조사 지연 통보서가 ‘수취인 사망’이라는 스티커가 붙은 반송 우편으로 돌아오자 통곡한다. 강간 피의자가 진정인이 되어, 체포 과정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며 열변을 토하자 인권을 보호하는 일에 대한 회의감에 빠지기도 한다.

인권위가 출범한 건 2001년. ‘인권은 평등하지 않다’ 같은 말이 들릴 때면 우리 사회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다. 그래도 쌓아온 것이 적지 않다. 폭력을 옹호하는 사람이 이상하게 보이는 세상, 인권 감수성이란 말이 더는 낯선 단어가 아닌 세상임을 체감할 때가 그렇다. "인권팔이"라는 식의 욕을 먹으며 20여년 이 길을 갈고 닦아온 저자에게 감사함과 미안함을 함께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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