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OTT계정 200원에 2시간 빌린다…MZ, 신박한 고물가 생존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직장인 조모(27)씨는 햄버거 가게에 갈 때마다 기프티콘을 챙긴다. 기프티콘은 사용기한 만료가 임박한 걸 온라인 플랫폼에서 산다. 5000원짜리 쿠폰을 4700원에 살 수 있어서다. 300원 더 싸게 햄버거를 먹을 수 있는 비결이다. 최근엔 배달도 끊었다.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전용 신용카드까지 발급받아 매일 시켜 먹었지만, 배달비가 아깝게 느껴졌다. 웬만하면 집밥을 해 먹고, 배달 대신 직접 가서 포장해 온다. OTT는 구독하지 않지만, 보고 싶은 드라마는 챙겨본다. 온라인에서 구독자의 아이디를 2시간 빌리고 그 대가로 200원을 지불한다.

‘절약 게임’…고물가 시대를 사는 MZ만의 방식<상>

치솟는 물가와 경제 불황 속에서 MZ세대가 살아남는 방식이다. 자신만의 ‘고(高)물가 시대 공략법’을 찾는 MZ세대의 여정은 게임처럼 유쾌하면서도 치열하다. “고물가라는 부정적 상황을 게임으로 희화화하는 것이 현 사회에 대한 MZ세대의 저항 방식”(최샛별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이라는 분석도 있다. 물가 상승이라는 고난도 미션을 맞닥뜨린 그들은 ‘절약 게임’의 플레이어를 자처한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①덕질을 경영하다

취업 준비생 최모(23)씨는 자타공인 ‘짠내사업가’다. 취업 준비에 필요한 비용과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짠내나는 투쟁을 하고 있다. 최근엔 좋아하는 연예인의 포토카드와 음반 등 ‘굿즈’(기획상품)를 중고거래로 내다 팔기 시작했다. “고물가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덕질’(좋아하는 것을 파고드는 일)의 잔해를 팔아 치우고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스타벅스 커피를 살 때마다 발급되는 적립 쿠폰인 프리퀀시도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 장터에 팔고 있다. 그렇게 해서 건당 500~1500원을 번다.

짠내사업가들의 핵심 ‘수익모델’은 중고거래 앱 활용이다. 필요 없는 물건을 팔아서 돈을 벌기도 하고, 기프티콘 등을 저렴하게 구매해 사용한다. 어떻게 돈을 아끼는지 소셜미디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랑하는 건 덤으로 따라오는 소소한 즐거움이다.

MZ세대는 '기프티스타' 등 온라인 플랫폼에서 사용기한이 임박한 기프티콘을 구입해 저렴하게 식품을 산다. [기프티스타 앱 캡처]

MZ세대는 '기프티스타' 등 온라인 플랫폼에서 사용기한이 임박한 기프티콘을 구입해 저렴하게 식품을 산다. [기프티스타 앱 캡처]

②캥거루가 되다

직장인 문서연(30)씨는 서울 종로구 직장 근처에서의 자취 생활을 접는다. 다음 달 자취방 계약이 종료되면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본가에 들어간다. 주거비와 생활비가 급등하면서 문씨처럼 자취를 그만두는 ‘돌아온 캥거루’가 늘고 있다. 문씨는 “작년까지만 해도 발품을 팔면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 원대의 괜찮은 원룸을 구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기본이 70만원”이라며 “주거비와 생활비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고 했다. 그는 “본가가 경기도인 지인 중에 자취를 접고 본가로 들어간다는 사람이 많다”고 덧붙였다.

③취미를 ‘컷팅’하다

절약에 나선 2030세대들은 달마다 OTT를 구독하는 대신 구독하는 아이디를 단기로 빌려 보고 있다. [OTT 1일권 판매 사이트 페이센스 캡처]

절약에 나선 2030세대들은 달마다 OTT를 구독하는 대신 구독하는 아이디를 단기로 빌려 보고 있다. [OTT 1일권 판매 사이트 페이센스 캡처]

취미 생활도 단칼에 끊어버린 ‘컷팅족’도 늘고 있다. 직장인 김민선(30)씨는 서핑을 포기하기로 했다. 서울과 강원도 고성군을 오가는 교통비에 숙박비·식비, 보드 보관비 등 40만원 넘는 비용이 너무 컸다. 김씨는 “서핑하러 매달 동해를 찾을 만큼 취미에 진심이었다. 하지만, 생활에 꼭 들어가는 돈도 부담인 마당에 취미는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의 남자친구는 좋아하던 골프를 끊었다고 한다. 한 달에 1만원 내외인 OTT 구독료에 부담을 느낀 2030들은 최근 일일 이용권을 찾는다. 그걸 파는 사이트도 등장했다.

택시 대신 대중교통, 그마저도 아끼려고 ‘뚜벅이’가 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여름 휴가철이 다가왔지만, 해외여행은 물론 국내 여행도 포기가 속출하고 있다. 프리랜서 정모(30)씨는 “올 여름휴가는 집 근처 무료 전시로 보낼 계획”이라며 “친구들과 ‘가성비’ 휴가를 보내는 방법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④집밥으로 돌아가다

지난 5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들의 장바구니가 비어 있다. 뉴스1

지난 5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들의 장바구니가 비어 있다. 뉴스1

장바구니를 아이템으로 장착하고 어설프지만 요리에 진심이 된 ‘집밥메이커’도 있다. 이들은 외식·배달 대신 집에서 밥을 지어 먹고, 카페 대신 회사 탕비실의 커피 머신 앞으로 향한다. MZ세대가 배달을 끊고 직접 밥을 해 먹기 시작하면서 배달 앱 이용자도 줄어드는 추세다. 데이터 분석 솔루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배달의민족’ 앱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는 지난 1월 2072만여명에서 지난달 1993만여명으로 3.8%줄었다.

대학생 황지원(21)씨는 집 근처 대형마트보다 재래시장을 애용하고 있다. 황씨는 “대형마트에선 딸기 한 팩에 5000원인데 시장은 3팩에 1만원”이라고 했다. 그는 “예전엔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분식집에서 김밥을 사 먹었는데, 김밥도 500~1000원씩 올랐다. 그래서 집에서 밥을 해 먹는다”고 말했다.

최샛별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MZ세대는 기본적으로 ‘재미’와 ‘성장’을 중요시한다. 지금의 고물가 상황이 힘들겠지만, 일부러 게임처럼 가볍게 소화함으로써 나름대로 어려움을 타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제 불황을 헤쳐 나가는 자신의 경험을 개인적 성장의 계기로 삼고 있다는 점도 그들 세대의 특성과 맞닿아 있다”고 분석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