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학계「조선 후기사」연구 활발|국사편찬위·서울대 한국문화연 등 학술회의 잇따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우리의 역사에서 자생적인 근대화의 싹이 트기 시작했던 조선후기의 중요성이 재인식되고 있는 가문데 이 시대를 집중 분석하는 학술회의가 잇따르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2일 오전 10시30분 국사관 대 회의실에서「조선후기 사상계의 동향」을 주제로 학술회의룔 개최하며, 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도 같은 주제의 학술회의를 9일 오전10시 서울대 문화관에서 갖는다. 이에 앞서 지난달 19, 20일 이틀간 단국대 동양학연구소는 조선후기 사회변화의 뿌리를 경제 구조적 측면에서 분석하는「한국근세문학의 특성-조선후기경제구조의 변동」을 주제로 학술회의를 개최했었다.
조선후기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은 전체 한국사에서 이 시대가 갖는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확산을 반증하고 있다. 조선 후기는 일반적으로 임진왜란 이후∼개항이전까지의 시기를 의미한다. 이 시기는 이전까지의 중세적 봉건질서가 해체되면서 사회경제적으로 새로운 신분질서·생산양식이 나타나며, 문화·사상 면에서도 새로운 사조가 수용되고 평민들의 의식이 깨어나는 등 근대화가 싹트기 시작한 때로 중요시되고 있다.
특히 이 시기를 새롭게 인식하고자 하는 것은 식민사관의, 해악과 질곡을 털어 내고자 하는 학계의 노력으로 주목된다. 식민지배를 합리화하고자 일본 제국주의가 강조해온 식민사관은 조선후기를 역사적 발전이 멈춘 정체기로 파악하는「정체성론」과 따라서 외부(일본)에서 발전의 길로 이끌어 줘야한다는「타율성론」으로 대표되며 해방이후에도 국내 역사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조선후기에 대한 최근의 연구는 이 같은 식민사관을 실증적으로 반박, 왜곡된 우리 역사를 바로잡자는 것이다. 즉 비교적 많이 남아있는 조선후기 자료 속에서 자생적인 근대화의 맹아를 찾아냄으로써「식민지배로 근대화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주적 근대화가 좌절되었던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다.
국사편찬위의 학술회의는 조선후기 사상 중 성리학·양명학·예학의 새로운 발전과 서학의 수용 등에서 나타나는 근대적 양상을 분석한다. 당시 사상계의 가장 중요한 흐름인 실학은 범위가 넓고 다양해 별도의 학술회의에서 독립주제로 다뤄질 예정이다. 주제발표자는 김장태 서울대교수(성리학)·지두환 부산대 교수(양명학)·이영춘 국사편찬위 연구사(예학)·최석우 한국교회사연 구소장(서학)등.
이영춘씨는 예학에 대한 논문에서『조선후기 들어 예학연구가 방대하게 이뤄졌고 정치·사회적 기능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연구가 미미했다』며『그 가장 큰 원인은 일제식민 사관에서 비롯된 학계의 선입견·공리공론이라는 인상의 거부감』이라고 지적했다. 이씨는 『이같이 오도된 식민사관의 불식을 위해 연구가 본격화돼야 한다』며『예학은 의전문제를 둘러싼 저속한 정쟁의 명분이 아니라 당시 사회저변에 내면화된 보편적 이념』이라고 강조했다.
우연히 같은 주제로 열리게 된 서울대 한국문학연구소의 학술회의는 실학과 문학·풍수·도교윤리 등 보다 광범위한 사상의 변화를 포괄하고 있다. 이번 회의는 연구소에서 그 동안 충분히 활용되지 못했던 규장각의 방대한 사료를 분석하기 위해 지난 88년 기획한 공동연구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된 것이다.
주제 발표문 중 홍순민씨(연구소 특별연구원)의「조선후기 선원록의 편찬과 군주관」은 왕실의 조보인 선원록(규장각 소장)을 통해 당시 정치사의 전개를 분석하는 특이한 연구방법론으로 관심을 끈다. 이밖에 조선후기의 사서에 나타난 발해 관계 기록을 통시적으로 분석, 주체적·적극적 역사의식의 성장을 밝혀낸 송기호 교수(서울대)의 논문과 민간도교에 비친 민중의식의 변화를 연구한 김낙필 교수(인하대)의 논문 등도 주목된다. <오병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