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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박성훈의 차이나 시그널

중국과 무역, 사상 첫 적자…반도체 7만 곳 '인해전술' 펼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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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박성훈 베이징특파원

박성훈 베이징특파원

우리나라가 중국과의 무역에서 27년 9개월 만에 적자를 기록했다. 1994년 8월 이래 처음 벌어진 일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5월 대중국 수출액은 134억 달러인 반면 수입액은 145억 8000만 달러를 기록해 적자 폭이 11억 달러(약 1조4000억)를 넘어섰다. 이번달 대중 무역 흐름도 좋지 않다. 지난 10일까지 이미 6억 달러 이상 적자를 기록 중이다. 한·중수교 30년, 중국과의 무역 역조가 현실화되고 있다.

관세청 수출입통계에 따르면 지난 5월 우리나라는 27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과의 월간 무역 집계에서 11억 달러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  [바이두 캡처]

관세청 수출입통계에 따르면 지난 5월 우리나라는 27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과의 월간 무역 집계에서 11억 달러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 [바이두 캡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정부에 비상등이 켜진 가운데 한국무역협회 베이징지부가 사태 파악에 나섰다. 현재까지 조사에 따르면 대중국 수입 품목 1위는 반도체(16.5%)였다. 배터리 소재인 정밀화학원료(10.3%), 컴퓨터(5.5%)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지난달 중국 반도체 수입액은 24억 달러로, 1년 전 같은 기간에 비해 40.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우리나라 대중국 수출 역시 1위가 반도체였지만 동기간 수출 증가율은 11%로 중국이 우리나라보다 4배 가까이 빠른 증가세를 보였다. 반도체 수출입 변동 폭이 대중 무역 역조에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 것이다. 대체 중국 반도체 산업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걸까.

원자탄 개발에 빗댄 중국 반도체 

미국의 집중 견제 속에 중국은 반도체 기술 국산화에 사활을 걸었다. 1960년대 말 국가의 명운을 걸고 나섰던 ‘양탄일성’(兩彈一星·원자탄,수소탄,위성) 개발에 반도체를 빗대고 있다. 2015년 ‘제조 2025’ 계획을 발표한 중국은 10대 전략 산업의 첫 번째로 차세대 IT 기술과 반도체를 지목하며 국가반도체 펀드를 조성했다. 중국반도체협회에 따르면 2019년까지 1387억 위안(26조7000억 원)을 제조·설계 등 상위 50개 반도체 기업에 지원한 데 이어 2020년 발표된 14.5규획(14차 5개년 계획)에 따라 2차 반도체펀드 2041억 위안(39조3000억원)을 조성해 또 지원하고 있다. 중국 국무원은 2025년까지 1조 위안(약 190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가 지난 9일 발표한 2022년 1분기 세계 10대 반도체 설계 기업 순위에서 중국 웨이얼 반도체(Will Semi)가 처음으로 세계 9위에 올랐다. [웨이얼 홈페이지 캡처]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가 지난 9일 발표한 2022년 1분기 세계 10대 반도체 설계 기업 순위에서 중국 웨이얼 반도체(Will Semi)가 처음으로 세계 9위에 올랐다. [웨이얼 홈페이지 캡처]

그 결과 중국 반도체 업계 상황은 시시각각 달라지고 있다.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박성훈의 차이나 시그널] #5월 대중 수출입 11억불 적자 #중국 반도체 수출 40% 늘어 #설계ㆍ저가ㆍAI반도체 집중 #“중국발 반도체 인해전술”

① 반도체 설계 기술 향상=중국 자체 반도체 설계(팹리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가 지난 9일 발표한 2022년 1분기 세계 10대 반도체 설계 기업 순위에서 중국 웨이얼 반도체(Will Semi)가 처음으로 세계 9위에 올랐다. 미국 퀄컴·엔비디아·브로드컴·AMD 등 쟁쟁한 글로벌 기술 기업 대열에 합류했다. 웨이얼은 카메라에 들어가는 CMOS 이미지 센서 반도체 설계를 주력으로 하는 회사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반도체 설계 기업이 성장하는 것은 중국 내 다양한 반도체 수요 때문이다. 반도체 설계 업체가 이미 1600곳을 넘어섰다. 컴퓨터 CPU나 휴대폰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같은 14나노급 이하 최신 반도체 이외에 일상 생활에서 특정 용도로 사용되는 반도체의 종류는 상당하다. 중국 업체들이 소규모로 다변화한 반도체 수요에 대응해 중저가 반도체 설계에 집중하는 양상이다.

② 저가형 반도체 ‘인해전술’= 현재 삼성과 대만 TSMC는 3나노(10억 분의 1m)급 반도체 개발 경쟁이 치열하다. 하지만 중국 1위 반도체 제조 기업(파운드리)인 SMIC는 14나노급 공장이 상하이에 단 한 곳 있을 뿐, 28나노급 이상만 제조가 가능하다. 미국은 초미세공정에 필수적인 네덜란드 ASML사의 7나노급 노광장비의 중국 수출도 금지했다.

현재 중국 1위 반도체 제조 기업(파운드리) SMIC.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17억 달러(약 2조원)로 전년 대비 138% 증가했다. [웨이보 캡처]

현재 중국 1위 반도체 제조 기업(파운드리) SMIC.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17억 달러(약 2조원)로 전년 대비 138% 증가했다. [웨이보 캡처]

기술 확보가 차질을 빚자 SMIC는 고도의 장비가 필요하지 않은 구형 반도체 칩 생산에 주력했고 이는 실적 상승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중국 전체의 반도체 생산량이 총 3594억개로 전년 대비 33.3%나 증가한 것도 같은 배경이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중국은 2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반도체 생산 장비를 사들인 국가였다. 지난 한 해만 296억 달러(약 36조원)에 달했다. 최신 설비는 아니었다. 하지만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의 반도체 생산 능력의 성장은 세계가 중국의 공급에 더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도체 기업 7만개…AI기술 강세 

고영화 베이징대 한반도연구소 연구원은 “중국에 현재 7만 개가 넘는 반도체 관련 기업들이 있어 앞으로 우리나라가 파는 것보다 사야 하는 게 더 많을 수도 있다. 그야말로 중국 반도체 인해전술”이라며 “그럼에도 아직 한국은 중국 반도체 현장 상황에 대한 연구가 부족해 먼저 관련 중국 기업들에 대한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③ 인공지능(AI) 관련 반도체 강세= 얼굴 인식이나 평면 인식(지문), 음성 인식 기능에 사용되는 딥러닝 기반의 중국 AI 반도체가 경쟁력이 높다는 평가다. 중국의 기술 개발 흐름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코로나19를 거치며 CCTV의 안면 인식 기능이나 열 감지 카메라 성능을 강화했다. 자율주행차 개발에 앞서가기 위해 전방 장애물에 대한 인식 오차를 줄이는 기술에 집중했다. 인텔·퀄컴 등의 최신 CPU 설계나 삼성의 메모리 제조 능력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차기 틈새시장 공략에 주력한 것이다.

이우근 중국 칭화대 마이크로·나노전자학과 교수는 “지금 중국은 센서나 AI반도체 분야에 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는데, 앞으로 한 번에 대박이 날 수 있다”며 “대학들 또한 막대한 예산 지원으로 고급 인재 양성에 주력하고 있어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주시해야 할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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