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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박성훈의 차이나 시그널

"200평당 1만위안 내라" 21세기 가렴주구…중국 경제 심상찮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중국경제는 어디로? 셔터스톡

중국경제는 어디로? 셔터스톡

경제 전망과 현실에는 간극이 있다. 여론이 즉각 반영되지 않는 중국이라면 더 그렇다. 베이징 현장에서 만난 중국인들 사이에 경기 침체에 대한 불안감이 더 커지는 분위기다.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이 지목하는 대표적인 징후는 다음과 같다.

16개 성에서 교사 임금 체불 #법적 근거 없이 갑자기 토지세 #지방 세수 부족에 무법 불사 #중국 경제, 지방서 위기 경고음

#1. 공립 교사 임금 체불

중국 상하이에서 일하는 한 회사원은 지방의 중학교 영어 교사로 일하는 누이가 몇 달째 월급을 못 받고 있다고 했다. 나라에서 월급을 받는데 어떻게 급여가 안 나올 수 있냐고 묻자 답은 간단했다. 지방정부가 돈이 없다는 것이다. 이듬해 중앙정부가 돈을 내려주면 해결될 것이라고 했지만, 교사의 임금 체불 자체가 초유의 일이었다. 중국 B기업 직원 역시 허난성(河南省) 교사로 있는 형이 두 달 치 월급 중 한 번밖에 못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도 중국 사회는 조용하다.

더 확인해 보니 중국 국무원이 이미 16개 성·시·자치구에서 교사의 임금 체불, 사회보장비 체납, 수당 미지급 문제가 벌어지고 있다며 지방마다 경고한 상태였다. 교육 관련 매체 댓글난에는 “여기도 내려와 조사해달라”는 글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달리고 있었다. 보이지 않았을 뿐 민심이 뜨거웠다.

중국 국무원 감찰국은 허베이성 바저우시에서 비세입 항목 7억 위안(1260억원)을 15개의 향(구)에 내려보내 강제로 거둬들이게 했다고 발표했다. [국무원 홈페이지]

중국 국무원 감찰국은 허베이성 바저우시에서 비세입 항목 7억 위안(1260억원)을 15개의 향(구)에 내려보내 강제로 거둬들이게 했다고 발표했다. [국무원 홈페이지]

#2. 21세기 ‘가렴주구’

과거 봉건사회에서나 일어났을 법한 관청의 세금 착취 사건도 벌어졌다. 국무원 감찰국은 지난달 17일 허베이성(河北省) 바저우(覇州)시에서비세입 항목 7억 위안(1260억원)을 15개의 향(구)에 내려보내 강제로 거둬들이게 했다고 발표했다. 중국인들조차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이 일을 조용히 입에 올리며 “지금 중국의 실상”이라고 혀를 찬다. 법에도 없는 세금을 거두며 징수 실적을 간부들의 성과 평가로까지 연계시켰다. 현대판 ‘가렴주구’ 그 자체다.

비과세 노점상에 분담금 징수 

시 재정국은 경제개발구 309개 기업에 명목도 없이 공장 면적 200평당 1만 위안(180만원)씩 세금을 내라고 통보했다. 정부 눈치를 봐야 하는 기업이 안 내고 버틸 도리가 없다. ‘안전생산 점검’ 명목 아래 공무원들이 소기업과 상가, 개별 가정을 다니며 무차별 벌금도 부과했다. 지난해 10월 1일부터 12월 6일까지 두 달 남짓 징수한 벌금이 6718만 위안으로 그해 1~9월 총 부과액(596만 위안)의 11배가 넘었다. 지난해 11월 한 달에만 시 월평균 적발 액수의 80배가 부과됐다고 감찰국은 밝혔다. 걸려든 기업만 2547곳에 이르렀고 수입이 적어 비과세 대상인 노점상에게는 이름도 없는 분담금이 징수됐다. 세금을 거둔 근거 문서조차 남겨놓지 않았다고 한다. 원성이 하늘을 찔렀을 터다.

중국 북부 무역항인 톈진항의 모습. 중국은 12월 8~10일 경제공작회의에서 중국 경제가 '3중 압박'에 처해 있다고 평가했다. [신화=연합뉴스]

중국 북부 무역항인 톈진항의 모습. 중국은 12월 8~10일 경제공작회의에서 중국 경제가 '3중 압박'에 처해 있다고 평가했다. [신화=연합뉴스]

향후 2년간 중국 거시 경제 방향을 정하는 경제공작회의는 지난달 10일 중국 경제가 ▶수요 위축 ▶공급 충격 ▶기대 약화라는 ‘3중 압박’에 처해있다고 결론 내렸다. 안정적 성장을 앞세웠지만 베이징 증권가에선 “수십 년 이래 가장 명확한 위기의 표현”이란 평가마저 나왔다.

이런 사례는 중국 정부의 판단이 이미 눈앞에 다가오고 있음을 시사한다. 지방정부의 심각한 재정 악화는 공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광범위한 문제다. 칭화대(清華大) 사회학과 쑨리핑(孫立平) 교수는 “이번 사태는 우발적인 것이 아니다”라며 “경기 침체로 인한 수요 위축과 투자의 지속적 확대로 인한 부채 증가, 각종 재정 지출 증대가 뒤섞인 결과”라고 분석했다. 소득 증가 속도는 느려지고 공급가는 올라간다. 줄어드는 소비, 위축되는 투자를 메워주던 지방재정이 바닥나면 중국 경제의 ‘민낯’이 드러난다는 얘기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소비 증가율은 지난해 3월 6.3%에서 8월엔 1.5%로 꺾였다. 공급 지수인 생산자물가지수(PPI)는 1월 0.3%에서 10월 13.5%로 크게 올랐다. 국무원 중앙감찰국은 “중앙 방침을 무시하는 곳이 적지 않다”고 밝혀 재정 악화가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님을 시사했다.

지난달 2일 열린 제14차 골든유니콘포럼에서 칭화대 경제사상실천연구원장 리다오쿠이(李稻葵) 교수는 “향후 5년간 중국이 개혁개방 40년 중 가장 힘든 시기에 들어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텅쉰망 캡쳐]

지난달 2일 열린 제14차 골든유니콘포럼에서 칭화대 경제사상실천연구원장 리다오쿠이(李稻葵) 교수는 “향후 5년간 중국이 개혁개방 40년 중 가장 힘든 시기에 들어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텅쉰망 캡쳐]

지난달 2일 열린 제14차 골든유니콘포럼에서 리다오쿠이(李稻葵) 칭화대 경제사상실천연구원장은 “향후 5년간 중국이 개혁개방 40년 중 가장 힘든 시기에 들어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리 교수는 “정부 주도의 다양한 인프라 투자는 경제 성장의 중요한 요소지만 단일 지방 정부 부채는 심각한 수준”이라며 “향후 5년을 목표로 가장 먼저 개선해야 하는 것이 지방정부의 높은 부채”라고 말했다

반면 중국 경제를 비관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달 유입된 외국 자금은 743억 위안(약 13조원)으로 2014년 11월(730억 위안) 이후 월별 최대 순유입을 기록했다. 중국 증시에 외국인 자금이 몰리고 있다. 미국이 최악의 인플레이션에 긴축정책으로 돌아선 데 반해 중국은 지급준비율 및 기준금리 인하 등 양적 완화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중국위기론이 나오지만 정작 중국은 여전히 미국과 싸우며 세계 주요국 중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인다”며 “중국 경제를 진단하기 위해서는 서방 정치인의 입이 아니라 돈이 가는 방향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10일 중국 푸젠성 펑팅현의 한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긴급 핵산검사가 실시됐다. [21세기경제망 캡쳐]

지난달 10일 중국 푸젠성 펑팅현의 한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긴급 핵산검사가 실시됐다. [21세기경제망 캡쳐]

6% 이상 고성장 시대 끝나 

중국 사회과학원은 올해 경제성장률로 5.3%를 제시했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2020년 2.2%를 제외하면 3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6% 이상 고성장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다. 지난해 중국 대졸자는 역대 최대인 1076만 명을 기록했는데 실업 양산을 막으려면 경제 성장률이 최소 5%를 넘어야 한다. 해외 신용평가사 JP모건체이스는 4.7%, 일본 노무라증권은 4.3%로 예측했다. 중국에서조차 4.9%(중국 흥업증권) 전망치가 나왔다.

중국 경제성장률 전망치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중국 경제성장률 전망치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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