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차이나 박성훈의 차이나 시그널

‘친러’ 했더니 일대일로에 난제...우크라이나 침공 중국 ‘트릴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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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블라디미르 푸틴(70, 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69, 오른쪽) 중국 국가주석이 4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 14호각 팡화위안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발발 이후 처음으로 만나 환하게 웃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70, 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69, 오른쪽) 중국 국가주석이 4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 14호각 팡화위안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발발 이후 처음으로 만나 환하게 웃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침공은 러시아와 중국의 수렴을 보여준다. 목표는 미국의 힘을 제한해 패권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두 나라의 셈법이 같을 순 없다. 중국은 러시아와 과연 한배를 탄 것일까. 상황이 길어질수록 중국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1972년 2월 21일 중국 베이징 중남해(中南海)의 마오쩌둥 집무실인 국향서옥(菊香書屋)에서 마오쩌둥(毛澤東) 중공 중앙위 주석과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1972년 2월 21일 중국 베이징 중남해(中南海)의 마오쩌둥 집무실인 국향서옥(菊香書屋)에서 마오쩌둥(毛澤東) 중공 중앙위 주석과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러시아 끌어들여 미국과 맞서

1972년 미국은 소련과 관계가 악화하고 있던 중국의 손을 잡으며 미·소간 세력 균형을 무너뜨렸다. 닉슨 대통령의 방중으로 미국은 소련을 상대로 주도권을 얻었고 중국은 세계 시장과 접점을 찾았다. 그로부터 50년, 이번엔 러시아가 중국을 끌어들여 미국과 맞서고 있다.

[박성훈의 차이나 시그널] # 중국 전략적 ‘트릴레마’ # ‘동맹유지ㆍ영토불가침ㆍ여론’ # 러시아 제재 확산되면 # 중국 진정한 선택의 기로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미국과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는 틈새를 러시아가 파고들었다. 주러시아 미국 대사였던 마이크 맥폴은 “푸틴이 닉슨-키신저의 ‘대본’을 들고 중국을 끌어들여 미국에 저항하기를 원한다”고 설명했다. 미국을 견제하려는 양국의 이해관계는 어느 때보다 일치했다.

시작은 순탄한 듯 보였다. 지난 4일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막 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난 시진핑 주석은 정상 중 유일하게 마스크까지 벗으며 예우했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지속적 확장에 반대한다”며 러시아 편에 섰고 향후 30년간 러시아산 가스 1175억 달러(140조5000억원)를 수입하는 계약도 체결했다. 푸틴은 중국의 정치적 지지를 얻었다고 확신했다.

지난 25일 시 주석은 푸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러시아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 캡쳐]

지난 25일 시 주석은 푸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러시아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 캡쳐]

‘나토 동진 반대’ 중국, 개전 이후 중재자 자처

그런데 막상 침공이 시작되자 중국의 행보가 다소 모호해졌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러시아 규탄 결의안에 기권함으로써 암묵적 지지는 유지했지만, 중재하는 모양새로 방향을 틀었다. 지난 25일 시 주석은 푸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러시아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푸틴이 “나토가 러시아의 전략적 이익에 도전했다”고 강조했지만 이에 대한 의견 표명 여부는 공개되지 않았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전날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의 통화에서 “러시아의 합리적인 안보 우려를 이해한다”면서도 “중국은 각국의 주권과 영토 보존을 존중한다”고 했다. 러시아의 침공이 정당하다는 것인지, 우크라이나의 주권이 존중돼야 한다는 것인지 의미도 맥락도 불분명하다. 대신 중국 외교부는 “미국이 긴장을 고조시키고 전쟁을 선동하고 있다”며 책임을 미국에 돌렸다.

 23일(현지시간)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열린 ‘중ㆍ러 관계의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를 주제로 한 좌담회가 열렸다. [CSIS 캡쳐]

23일(현지시간)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열린 ‘중ㆍ러 관계의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를 주제로 한 좌담회가 열렸다. [CSIS 캡쳐]

중국의 전략적 고충 그대로 노출

이런 상황을 놓곤 중국의 전략적 고충을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3일(현지시각)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열린 ‘중·러 관계의 향방’ 토론회에서 오바마 정부 때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이었던 에반메데이로스 조지타운대 교수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중국이 세 가지 전략적 이해관계의 어려운 균형을 맞춰야 하는 트릴레마(trilemma)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첫째는 러시아와의 동맹 유지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러시아가 중국의 핵·미사일 방어 능력 확대를 위한 조기경보시스템 구축을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푸틴 대통령은 “양국 관계는 전례 없는 수준”이라고 했다. 중국은 러시아에 공을 들이고 있다. 2014년 이후 양국 간 무역과 에너지 교역량은 지속적인 증가 추세다.

둘째, 외교 원칙 고수다. 중국은 1954년 이후 영토 존중·내정 불간섭·상호 불가침 등 5대 원칙을 대외 기조로 내세웠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로 이중잣대가 드러났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안드레아 켄달 테일러 전 미 국가정보국 유라시아 국장은 “우크라이나 영토 주권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중국은 어떻게 답변할 것인가”라며 “말과 행동이 다른 나라”라고 했다. 중국이 대만 점령에 나설 것이란 의심도 커지고 있다. 이에 중국 대만사무판공실은 “서구 여론이 우크라이나 문제를 악용해 중국 위협론을 조작하고 반중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고 반박했다.

셋째, 유럽과 개발도상국 등과의 우호 관계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협력 국가는 지난해 말 기준 우크라이나를 포함해 84개국에 이른다. 시 주석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통화에서 “중국과 유럽은 공동 이익을 가진 전면적, 전략적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유럽이나 다른 나라를 잃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2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주민들이 러시아의 로켓 공격으로 파손된 건물 앞을 지나고 있다. [AP=뉴시스]

2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주민들이 러시아의 로켓 공격으로 파손된 건물 앞을 지나고 있다. [AP=뉴시스]

중국 “미국 등 서방 제재 영향 제한적”  

메데이로스 교수는 “중국이 이 같은 광범위한 이익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양립하기 어려운 외교적 과제들과 마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러시아의 제재 완화에 얼마나 기여를 할 것인가의 문제를 놓고 진정한 선택의 기로에 설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전면 제재에 이어 러시아를 돕지 못하도록 세컨더리 보이콧(2차 제재)까지 나설 경우 중국의 선택은 더 어려워진다.

반면 중국 매체들은 미국 등 서방의 제재가 러시아에 미칠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란 보도를 앞다퉈 쏟아내고 있다. 추이홍젠(崔洪建) 중국국제문제연구소 유럽연구국장은 “러시아가 비달러 지급 결제 확대를 통해 무역 결제에서 달러화 비중을 30%까지 줄일 수 있다”며 “미국의 금융제재 효과는 매우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리젠민(李建民) 중국 사회과학원 연구원은 “2014년부터 러시아의 군사 및 첨단 기술 기업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어 미국의 금수 조치가 러시아에 압박을 가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고 했다.

미국은 27일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배제하는 추가 제재에 나섰다. 스위프트 퇴출은 러시아가 달러로 원유를 거래할 수 없다는 의미여서 중·러 간 위안화 거래 규모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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