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박성훈의 차이나 시그널

애국계정? 결국 돈벌이였다…'반중' 잡으려던 검열이 깐 민낯

중앙일보

입력 2022.05.09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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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박성훈 기자 중앙일보 베이징특파원
박성훈 베이징특파원

박성훈 베이징특파원

중국에서 검열은 일상과 공존한다. 중국 메신저 웨이신(微信·wechat)에선 ‘교회’(教会)대신 ‘jh’라고 쓴다. 교회의 중국어 발음 ‘jiaohui’의 첫 글자를 딴 영어 약자다. 우리로 치면 ‘ㄱㅎ’으로 표기하는 식이다. 메시지를 들여다볼 수 있으니 키워드 검색은 피하자는 심산이다. 중국에 비판적인 서양 매체의 기사는 링크가 전달되지 않는다. 자유아시아방송(RFA), 미국의 소리(VOA)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의 다음(daum), 네이버 카페, 넷플릭스, 구글, 유튜브도 중국에선 접속할 수 없다. 콜택시를 타고 가다 중국 정치 얘기를 꺼냈더니 기사가 “들릴 수 있다”며 주의를 준 적도 있다.

[박성훈의 차이나시그널]
중국 SNS 위치 정보 공개
뜻밖에 ‘애국 계정’ 된서리
알고보니 해외 거주
“어그로 끌려는 애국 장사”

지난 4월 28일부터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는 개인 계정의 위치 정보(IP)를 공개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로이터=연합]

지난 4월 28일부터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는 개인 계정의 위치 정보(IP)를 공개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로이터=연합]

괜한 두려움은 아니다. 영국 BBC는 지난해, 미국으로 도피한 전직 웨이보(微博ㆍ중국식트위터) 검열원을 인터뷰했다. 그가 “2011~2013년 하루 수십만 단어를 읽으며 수천 개의 민감한 단어를 삭제ㆍ차단했으며 중국이 국내 온라인 콘텐트를 감시하고 최근 지속적으로 여론 공세를 전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항미원조를 다룬 영화 ‘장진호’를 비판했던 중국 기자가 징역 7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그가 올린 글은 단 39자였다. 2022년 현재 중국의 모습이다.

검열은 최근 또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웨이보는 지난달 28일부터 글 게시자의 위치(IP) 정보를 계정에 노출하도록 하는 정책 시행에 들어갔다. 외국에 있을 경우 국가명으로, 중국 내에 있다면 지역으로 표기하도록 했다. 개인 계정으로 한정되고 국영 언론이나 기관 계정은 제외다.

중국의 대표적 소셜미디어 앱인 웨이보, 위챗(중국명 웨이신)이 휴대폰에 설치돼 있다. [EPA=연합]

중국의 대표적 소셜미디어 앱인 웨이보, 위챗(중국명 웨이신)이 휴대폰에 설치돼 있다. [EPA=연합]

우크라이나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중국 정부의 지지, 코로나 창궐과 상하이 봉쇄 등에 대한 정부 비난 여론이 잇따르자 나온 조치였다. 웨이보는 “당사자를 사칭하거나 악의적 루머 유포, 트래픽 방해 등 부당 행위를 줄이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웨이보를 차단할 순 없으니 위치 표기를 통해 해외 SNS 세력의 중국 여론 선동을 막으려는 고육지책이었다.

검열에 익숙한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시행과 동시에 논란이 일었다. ‘사적 정보의 남용’, ‘온라인 토론 공간이 위축될 것’ 등 다양한 비판이 쏟아졌고, 반대로 “‘키보드 워리어(warrior)’를 잡아낼 현실적 해법”, “거짓 정보를 없애 네트워크가 정화될 것”이라는 등 지지 의견도 있었다. 이같은 공방은 더우인(痘印·중국식 틱톡), 샤오홍슈(小紅書·중국식 인스타그램) 등 중국 유명 SNS로 확산될 조짐이다.

유명 애국 블로거 렌위의 웨이신 계정. 그의 위치가 일본으로 표시돼 있다.(빨간 색 밑줄 부분) 렌위는 애국심을 강조하며 일본을 비난해 왔다. 한 네티즌은 "롄 선생, 중국이 그렇게 좋은 나라라면서 당신은 왜 일본에 있는가”라고 비판했다. [웨이보 캡쳐]

유명 애국 블로거 렌위의 웨이신 계정. 그의 위치가 일본으로 표시돼 있다.(빨간 색 밑줄 부분) 렌위는 애국심을 강조하며 일본을 비난해 왔다. 한 네티즌은 "롄 선생, 중국이 그렇게 좋은 나라라면서 당신은 왜 일본에 있는가”라고 비판했다. [웨이보 캡쳐]

그런데 문제는 엉뚱하게도 이른바 ‘애국 계정’에서 터졌다. “중국에 기회와 부가 있다”,“일본에 이민갈 생각마라. 옴진리교같은 사교에 전염될 수 있다”…. 롄위(連嶽ㆍ52)는 이처럼 애국심을 강조하고 이민에 반대하면서 특히 일본에 비판적인 글을 올려 주목받아온 전직 기자 겸 현재 유명 정치 블로거다. 수백만 명의 팔로어를 보유한 그의 입장은 여론의 향배에 영향을 미쳐왔다. 그런데 그가 자신이 비판해 온 일본에 있는 사실이 위치 정보를 통해 확인됐다.

“롄 선생, 중국이 그렇게 훌륭한 나라라면서 당신은 왜 일본에 있는가.” 네티즌들의 비난이 쏟아지자 그는 처음에 “여행차 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다른 네티즌이 ‘3월부터 일본의 외국 관광객 입국이 금지됐다’는 정부 발표문을 올리자 곧바로 “가족들과 의학 치료를 받으러 왔다”며 말을 바꿨다. 중국인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8일 현재 그의 계정은 모든 글이 내려진 상태다.

“대만 사이버 부대가 중국 여론에 해악을 끼치고 있다”고 비판해 온 중국 애국 계정 ‘디바’(帝?)의 게시자 위치가 대만인 것으로 드러났다. [웨이보 캡쳐]

“대만 사이버 부대가 중국 여론에 해악을 끼치고 있다”고 비판해 온 중국 애국 계정 ‘디바’(帝?)의 게시자 위치가 대만인 것으로 드러났다. [웨이보 캡쳐]

“대만 네티즌 부대가 중국 여론에 심각한 해악을 끼치고 있다”고 비판해 온 유명 애국 계정 ‘디바’(帝吧)의 위치 역시 대만으로 확인됐다. 대만 비난 여론을 선동했던 그가 다름아닌 대만에 있다는 사실에 네티즌들은 “디바가 오히려 대만 사이버 부대원이었나”라며 비꼬았다. 그의 위치는 홍콩으로 바뀌었다가 현재는 중국 저장성으로 돼 있다. ‘장진호’, ‘전랑’ 등 중국 애국주의 영화에 주연을 도맡은 중국 최고 배우 우징 역시 위치가 태국으로 확인돼 비난을 샀다.

애국주의 영화에 다수 출연한 중국 배우 우징(吳京)도 위치가 태국으로 확인돼 비난을 샀다. [웨이보 캡쳐]

애국주의 영화에 다수 출연한 중국 배우 우징(吳京)도 위치가 태국으로 확인돼 비난을 샀다. [웨이보 캡쳐]

대만 매체들은 웨이보의 위치 공개로 ‘애국 마케팅’이 들통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만 중앙통신사는 “위치 정보 공개 후 유명 애국 계정들이 해외에 주소를 둔 것으로 나타나 네티즌들의 비웃음을 샀다”며 “당국의 지시는 해외 인터넷 세력을 막으라는 것이었지만 가장 먼저 피해를 본 것은 중국의 가짜 애국 계정들이었다”고 보도했다. 일일 클릭 수, 팔로어 수에 따라 수당을 지급받는 구조 하에 이들이 어그로(aggroㆍ관심 끌기 위해 자극적인 글을 올리는 것)를 끌기 위해 ‘애국 팔이’를 해왔다는 분석도 나왔다. 싱가포르 매체인 연합조보 역시 “과거엔 공공지식을 위조해 돈을 벌었지만 이제 가짜 애국자들이 외국에서 반미ㆍ반일 글을 쏟아내고 있다”며 “애국이 트래픽을 끌기 위한 보너스가 되고 있는 현재 중국의 현실”이라고 전했다.

26만 명의 팔로어를 보유한 샤오쉐리(왼쪽 아래)는 일본에 있다고 했지만 실제 위치는 중국 랴오닝성으로 나타나는 등 해외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다수의 인플루언서가 실제론 중국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웨이보 캡쳐]

26만 명의 팔로어를 보유한 샤오쉐리(왼쪽 아래)는 일본에 있다고 했지만 실제 위치는 중국 랴오닝성으로 나타나는 등 해외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다수의 인플루언서가 실제론 중국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웨이보 캡쳐]

위치 공개로 해외 콘텐트로 주목받은 유명 인플루언서들이 중국에 있는 것으로 밝혀지는 일도 벌어졌다. ‘샤오쉐리 인 재팬’(小雪利在日本)은 일본에서 거주하며 소소한 소식을 전한다고 밝힌 개인 계정인데 팔로어가 26만 명에 달한다. 그러나 위치가 중국 북부 랴오닝성으로 확인되자 폐쇄됐다. 이후 같은 이름의 계정이 만들어졌으나 현재 팔로어는 단 2명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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