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강의, 연구심사 강화 등 빠른 변화에 교수들이 지친 것 같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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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윤대(61.사진) 고려대 총장은 14일 "내 임기 동안 연구업적 심사 강화, 영어 강의 확대 등의 빠른 변화에 교수들이 지쳤던 것 같다"며 "영어 강의를 강요했던 것도 불만의 요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날 교수가 참가한 차기 총장 자격심사 투표에서 절반이 넘는 교수로부터 반대표를 받아 후보군에서 탈락, 충격을 던졌다.

<본지 11월 14일자 2면>

어 총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결과에 승복한다. 일부 언론에서 '쇼크'라는 표현을 썼지만 나는 연임 가능성을 50대 50으로 봤다"며 논란이 확대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하지만 그는 "관행처럼 (교수들이) 총장 연임을 반대하는 것은 대학 경쟁력 강화에 걸림돌이 된다"고 밝혔다.

교수들의 자격 적부심사와 관련, 어 총장은 "네거티브 방식의 투표(부적격자를 뽑는 투표)는 한 사람의 강력한 후보가 나오면 다른 후보의 지지자들이 이 제도를 이용해 해당 인물을 떨어뜨릴 수 있는 약점이 있다"며 "(적격자를 뽑는) 포지티브 방식의 투표로 바뀌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임기 중 추진했던) 좋은 정책을 오래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 총장 후보에 다시 나오는 모험을 감행했다"고 덧붙였다.

◆ 당혹스러운 동문.학생들=어 총장의 연임 실패는 국내 대학들의 총장 선출 관행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고대의 한 관계자는 "간선제에 직선제를 가미한 총장 선출 방식을 일부 대학이 벤치마킹하기도 한다"며 "그러나 과열된 선거열풍으로 본래의 제도 취지가 왜곡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고대 총장 선거의 부적격자 투표는 2002년 총장 선임으로 내홍을 겪던 재단과 교수들의 협의에 의해 도입됐다.

사범대의 한 교수는 "단대별로 번갈아 가며 총장을 내는 관행이 발목을 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개교 이래 총장을 못낸 이공계 교수들이나 국제화 추진에 불만 높은 인문계 교수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학교 관계자는 전했다.

정충교 고대 교우회 사무총장은 "놀라운 결과지만 (우리는) 원칙적으로 교수 판단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 임원은 "어 총장 임기 동안 고대의 위상이 높아지고 졸업생의 자긍심도 그만큼 커졌다"며 "최고경영자(CEO)형인 어 총장에게 본선(추천위 투표)에 갈 기회조차 주지 않는 교수의 결정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이 학교 인터넷 게시판엔 어 총장의 각종 개혁정책을 지지하는 재학생과 동문의 글이 잇따랐다.

한편 교수 투표를 통과한 후보 6명은 15일 총장추천위 표결을 거쳐 20일 재단이사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이공계의 폭넓은 지지를 받는 김호영(57.기계공학)교수, 경실련 등 대외활동이 왕성한 이필상(59.경영학) 교수, 대선 토론 사회자로 유명한 염재호(51.행정학) 교수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천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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