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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츠랩]‘17년 연속 성장’ 기록 쓰던 화장품 대장의 슬픈 오늘

중앙일보

입력

끝없는 추락. 회사 입장에선 좀 서운한 표현이겠지만 1년 주가 그래프를 보면 참혹합니다. 이렇게 규칙적인 속도로 우하향하는 그림도 드문 데요. 1년 전 151만7000원이던 주가가 68만5000원으로 54.9% 하락했죠. 1주당 가격이 상장 종목 중 가장 비싸서 ‘황제주’로 불렸지만 이젠 옛말. LG생활건강입니다.

후의 브랜드 파워가 절대적. LG생활건강

후의 브랜드 파워가 절대적. LG생활건강

앤츠랩도 지난해 4월 한 차례 다뤘는데요. 개미 평점 4마리로 좋은 평가를 줬죠.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혔음에도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는 점에 후한 점수를. 실제로 흐름은 나쁘지 않았는데요. 6월 말엔 주가가 176만원까지 치고 올라갔죠. 하지만 코스피 하락 국면과 맞물려 내리막길을 탔고, 지난해 3분기와 올해 1분기 실적 발표 직후엔 큰 폭으로 하락. 결국 7년 전 주가와 같은 라인에 섰습니다.

실적 둔화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중국의 초강력 봉쇄 정책입니다. LG생활건강의 화장품 매출은 전체의 54.9%고 국내보단 해외에서 더 많이 팔립니다. 거의 중국이죠. 중국 시장에서의 부진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됐지만, 진짜 충격은 올해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무려 19.2%, 52.6% 감소했는데요. LG생활건강의 핵심 물류 라인이 경제 중심지 상하이와 주변 지역에 집중돼 타격이 컸던 거로 보입니다.

둘째는 수익성 방어에 실패했습니다. 매출 부진도 걱정이지만 돈 남기기가 여의치 않은 상황인데요. 해외여행객이 거의 사라진 상황에서도 LG생활건강이 핵심인 면세점 매출을 어느 정도 방어할 수 있었던 건 ‘따이궁(중국 보따리상)’ 덕분! 오래전부터 따이궁 관리에 힘을 써온 게 위기 때 도움이 되는 듯 보였죠. 하지만 비정상적인 상황이 길어지면 항상 문제가 생깁니다.

LG생활건강의 상징과 같은 브랜드 '후'. LG생활건강

LG생활건강의 상징과 같은 브랜드 '후'. LG생활건강

격리 기간 때문에 한국에서 사 가는 것도, 수요 부진 때문에 중국에서 팔기도 쉽지 않으니 따이궁은 수수료를 더 달라(더 싸게 줘!)고 아우성. 회사 입장에선 따이궁 유지도 중요하지만 팔아도 남는 게 없으면(브랜드 이미지 하락도 걱정) 장사의 이유가 없죠.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데요. 코로나 장기화로 따이궁이 면세 채널을 사실상 독점한 부작용이겠죠. 해외여행 정상화, 특히 중국인 관광객이 돌아와야 어느 정도 해결될 문제입니다.

또 다른 원인은 원자재 가격 상승. 화장품은 수요 부진에다 재료값 상승까지 이중고에 시달리는 상황인 거죠. 또 다른 주력 섹터인 생활용품(HDB) 부문에선 팜 오일을 많이 쓰는데 지난해 톤당 1291달러에서 올해 1분기 1551달러로 20%나 뛰었습니다. 1분기 HDB 부문 매출이 소폭 증가했음에도 영업이익은 16.6%나 감소한 이유죠.

좀 더 걱정스러운 포인트도 있습니다. 사실 화장품은 대표적인 레드 오션. ‘경쟁의 끝판왕’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죠. 어느 업계가 안 그렇겠느냐마는 화장품은 유독 그렇습니다. 브랜드는 수도 없고, 업체 간 합종연횡도 활발. 명품 레벨로 가면 로레알 같은 글로벌 업체와 싸우고, 가격을 내리면 국내외 중저가 브랜드와 출혈 경쟁을 해야 합니다.

LG생활건강 본사. LG생활건강

LG생활건강 본사. LG생활건강

판매 채널은 또 얼마나 다양한지, SNS 같은 온라인 채널이 곧 면세점을 추월하는데 여기도 전쟁터인 건 마찬가지.

이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는 힘이 바로 브랜드 파워. 써보고 맘에 들면 비싸도 계속 쓰는 거죠. 그 대표적인 사례가 ‘후’입니다. 연간 2조원어치가 팔리는 최대 히트작이죠. 그런데 1분기 후의 매출이 54%나 감소. 중국 봉쇄에 LG생활건강만 당한 것도 아닌데 경쟁사와 비교해도 너무 충격적인 수치.

공백은 위험합니다. 소비자가 어떤 이유에서 '후'를 구할 수 없었다 치죠. 화장품을 안 쓸 순 없고 대체재를 찾았겠죠. ‘이것도 괜찮네’라고 판단하는 순간 이전에 쓰던 제품은 잊힙니다. 화장품은 특히 그런 현상이 뚜렷한 제품이죠. 브랜드 파워를 만드는 것도, 유지하는 것도 힘든 이유.

닥터그루트 제품군. LG생활건강

닥터그루트 제품군. LG생활건강

가뜩이나 중국 현지 업체가 빠르게 성장하는 상황, 3개 분기 연속 감소한 매출을 고려하면 브랜드 파워가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만합니다. 예전 한국에서 잘 나가던 일본 화장품 기억하시죠?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췄죠.

중국과 원자재값 상승이 실적 부진으로 나타났고, 주가 하락으로 이어졌습니다. 두 이슈 모두 당장 해결될 거로 보긴 힘들고요. ‘면세점 및 현지 사업은 2분기에도 다소 보수적으로 봐야 한다’는 증권가의 대체적인 시각에 고개를 끄덕일 만합니다. 적어도 ‘후’의 매출 회복은 확인해야 한다는 거죠.

일단 지난 3월 완전히 통제됐던 유통망이 다시 오픈. 상하이 보세 구역에 묶였던 제품의 통관이 가능해졌는데 이는 중국 전역으로 배송할 수 있다는 얘기죠. 사실 화장품은 리오프닝 수혜 섹터 중 하나로 꼽혔지만, 회복은 예상보다 더뎠습니다. 마스크만 벗으면 날개를 달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뒤집어 생각하면 코로나발 기저효과 찬스가 남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워낙 많이 빠졌기 때문에 주가 측면에서도 매력이 생겼습니다. 지난해 고점 때 31배에 달했던 12개월 예상 실적 기준 주가수익률(PER)이 16배까지 낮아졌는데요. 올해 들어 내내 팔던 기관도 최근 다시 매수로 전환. 당분간은 기관이나 외국인의 움직임을 잘 살펴볼 필요도 있습니다.

미국 더크렘샵. LG생활건강

미국 더크렘샵. LG생활건강

LG생활건강은 사드 사태도 버텨낸 경험이 있습니다. 이건 정말 돈 주고도 못 살 자산이죠. 기막힌 반전이 없다면 일단 17년 연속 매출 증가 기록은 올해 중단되겠지만, 하루 이틀 장사하고 말 것도 아니니까요.

장기적으로 탈중국 움직임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합니다. 미국이 핵심인데요. 2019년 미국 화장품 업체 뉴에이본, 2020년에는 피지오겔 북미·아시아 사업권을 인수. 최근에도 알틱폭스와 더크렘샵 지분을 사들이며 특히 젊은 층 공략에 힘을 쓰는 중. 물론 돈을 벌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결론적으로 6개월 뒤:

최악의 구간은 지나왔을지도

이 기사는 6월 10일 발행한 앤츠랩뉴스레터의 일부입니다. 이번 콘텐트가 마음에 드셨다면 주변에 소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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