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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바뀌었지만 전기요금 인상 쉽지 않네, 한국전력[앤츠랩]

중앙일보

입력

"2020년 이후엔 원자력 발전 이용률 상승, 신규 원전 가동 등으로 영업이익이 대폭 개선될 전망"

2019년 9월 한국전력이 낸 보도자료 한 구절입니다. 명색이 공기업인데, 시장은 이런 장담을 별로 신뢰하지 않았나 봅니다. 2020년 반짝 영업이익이 흑자전환 했지만, 주가는 계속 내리막. '전기요금 인상'이 가능하냐는 질문을 끝까지 풀지 못했던 탓이죠.

한국전력은 발전회사가 생산한 전기를 독점으로 판매한다. 셔터스톡

한국전력은 발전회사가 생산한 전기를 독점으로 판매한다. 셔터스톡

한전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 번쯤 들춰보는 종목입니다. 상장사이지만 주인이 정부인 공기업(산업은행 32.9%, 대한민국정부 18.2%)이다 보니, 정권 따라 경영 방침이 바뀌기 일쑤. 가장 중요한 상품 가격 책정부터 정부 눈치를 봐야 하니 주주들 스트레스가 크죠. 오죽하면 코로나19 거리두기 조치가 해제되기도 전인 올해 3월 주주들이 한전 본사가 있는 나주까지 내려가 집회를 열 정도.

2016년 5월 6만3700원을 찍은 주가는 문재인 정부 내내 떨어져 2만3000원 선으로 추락한 상태입니다. 윤석열 정부에선 좀 다를까요? 이 회사는 구독자 min****@naver.com님이 분석을 의뢰했습니다.

 한국전력이 디자인한 마스코트 에너지보이. 한국전력

한국전력이 디자인한 마스코트 에너지보이. 한국전력

새 정부 기조는 전임 정부와 확실히 다릅니다. 문재인 정부 땐 서민 부담을 고려해 전기요금 인상은 말도 못 꺼내게 했죠.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전기요금 원가주의 요금 원칙 확립'을 정책 방향으로 제시했습니다. 콩이 비싸지면 두부 가격도 올릴 수 있도록 에너지 정책을 정상화하겠다는 거죠. 시장은 반짝 환호했습니다. 새 정부 정책 발표 당일(4월28일) 무려 8.5% 급등. 하지만 그 이후 다시 박스권에 갇혀 있죠.

한국전력의 사업 구조는 단순합니다. 석탄화력·원자력·LNG 등 민간 발전회사가 생산한 전기를 도매로 사서 한전이 독점한 송·배전망으로 소비자에게 파는 구조지요. 전기 판매 매출이 98.5%(2021년 기준)에 달하죠.

발전회사로부터 사오는 전기 도매 가격(SMP)은 석유·유연탄·LNG 등 연료비가 오르면 비싸지게 마련. SMP는 작년 초부터 상승세를 탔는데 올해 들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급등하는 상황입니다. 국제유가와 유연탄 가격 모두가 비싸진 탓.

그래픽=박경민 기자

그래픽=박경민 기자

특히 단가가 가장 쌌던 유연탄 가격이 급등해 올 하반기엔 LNG 가격을 역전하는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돼지고깃값이 쇠고깃값을 추월하는 것 같은 거죠.

그렇다면 결국 시장 관심은 단 하나. '이젠 전기요금을 올릴 수가 있느냐'란 질문에 대한 한전의 대답입니다. 2021년에도 5조8601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는데, 이대로면 올해에도 대규모 적자를 피할 수 없습니다. 증권가가 예상하는 올해 영업적자 규모는 대략 20조~30조원 규모. 지금 전기요금보다 40%는 올려야 손해는 면한다는 계산이죠.

전임 정부도 연료값에 연동해 전기요금을 책정해야 한다는 원칙 자체는 부정하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작년부터 시행한 게 '연료비 연동제'. 직전 3개월 연료비 평균 가격을 반영해 다음 분기 전기요금을 결정하겠다는 정책인데, 이런저런 '예외적 상황'을 이유로 제대로 정책을 시행해 보지도 못했습니다. 기업 적자와 국민 혈세 낭비를 해결하려는 근본적 과제보다 선거가 더 급했던 거죠.

그래픽=박경민 기자

그래픽=박경민 기자

윤석열 정부는 일단은 전기요금 인상에 열린 태도를 보이곤 있습니다만, 실현 가능성엔 또 의문이 남습니다. 대선에 지방선거까지 치렀지만, 인플레이션이란 난관에 봉착. 물가 상승으로 서민이 고통을 호소하는 판국에 전기요금을 올리기가 쉽지 않죠. 냉면부터 마늘값까지 다 오르는데 전기요금은 왜 못 올리냐 싶지만, 정부가 파는 상품 가격까지 올린다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죠.

요금을 올려 수익을 늘릴 수 없으면 비용이라도 줄여야 이익이 늘겠죠. 그래서 정부가 검토 중인 정책이 SMP 상한제. 기름값, 석탄값이 오를수록 계속 오르는 전력 도매 가격의 상한선을 정해 한전의 전력 구매 비용을 낮추겠다는 거죠. 민간 발전회사 입장에선 거의 악덕 원청회사의 '납품단가 후려치기'를 정부가 하는 꼴. 발전업계는 만약 시행이라도 한다면 공무원 고발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태도입니다.

효과도 미지수입니다. 경제학 교과서로 돌아가면 이런 가격 상한제는 오히려 전기 생산을 줄이게 마련. 물론 한전이 독점 기업이라 발전회사들의 유일한 거래처라곤 하지만, 장기적으론 만성적인 공급 부족을 야기할 수 있죠.

정부의 인위적인 가격 개입은 시장 내 수요-공급의 균형을 깨기 마련. 셔터스톡

정부의 인위적인 가격 개입은 시장 내 수요-공급의 균형을 깨기 마련. 셔터스톡

요금을 올리기 힘들면 석유·유연탄 등 원자재 가격이 내려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데, 이건 나무 밑에 누워 사과가 떨어지길 기다리는 꼴. 한전 주주들은 그래서 올해 대규모 영업적자가 날 걸 알면서도 두들겨 맞아야 할 상황이라는 겁니다.

그럼 배당이라도 기대할 수 있냐. 한전은 흑자를 낼 땐 대표적인 배당주로 꼽히지만, 적자를 낼 땐 또 다릅니다. 일반 민간 기업도 적자 배당은 쉽진 않지만, 좀 무리하면 할 수는 있죠. 배당은 재무상태표의 자본금 항목에서 이익을 쌓아 놓은 곳간 격인 이익잉여금이 있다면 어쨌든 불가능한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한전은 배당도 정부 출자 기업의 배당 정책에 따라야 합니다. 이런 정책 아래에선 적자일 땐 배당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국민 세금을 투자한 기업이 적자를 냈는데도 주주들 배만 불린다는 여론이 부담스럽기 때문이죠. 실제로 그동안 한전은 당기순이익이 적자일 땐 배당을 못 했습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그래픽=박경민 기자

그럼 대규모 적자를 견딜 만큼 재무상황은 어떠냐. 작년 말만 보면 적자가 누적돼 이익이 쌓인 곳간(이익잉여금)이 바닥나고 마이너스로 치닫는 최악의 상황은 아닙니다.

그러나 원가는 오르는 데 전기요금은 올리지 못하는 국면이 지속하면 2024년에는 자본잠식에 이를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자본잠식이란 쌓인 적자가 사업 종잣돈(자본금)까지 깎아 먹는 상황을 의미하는데요. 코스피 상장사의 경우 자본이 완전히 잠식된 회사는 상장폐지 가능성도 있습니다.

돈을 제대로 못 벌다 보니까 회사의 혈액 순환이라고 볼 수 있는 '현금 순환'도 원활하지 않아요. 1년 내 갚아야 할 유동부채는 31조7300억원인데, 1년 안에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유동자산은 22조500억원에 불과하죠.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달 한전의 자체 신용도를 BB+로 강등했습니다. 이 정도 등급은 투기등급(투자부적격등급)으로 민간 회사였으면 '돈맥경화'로 부도 직전이었을 겁니다. 정부가 뒷배가 돼줘서 살아있는 거지요. 국민 세금으로 먹여 살리고 있다는 얘기.

한전은 정부 지원이 없다면 이미 신용등급이 투자 부적격 등급(S&P)이다. 셔터스톡

한전은 정부 지원이 없다면 이미 신용등급이 투자 부적격 등급(S&P)이다. 셔터스톡

정부는 부정하고 있습니다만, 이런 자금난 해결을 위한 신종자본증권(영구채) 발행 검토 소식도 솔솔 흘러나오는 중입니다. 영구채는 만기를 끝없이 연장할 수 있다는 이유, 즉 원한다면 안 갚아도 되는 채권이기 때문에 회계상 자본으로 분류합니다. 하지만 만기를 연장할 때마다 금리가 오르기 때문에 기업들은 고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갚는 곳이 대부분이죠.

영구채는 목마를 때 마시는 사이다 같습니다. 시원하긴 해도 또 목이 마르죠. 당장은 회계상 자본금이 늘어나니까 부채비율은 좀 깨끗해 보일지 몰라도 실질적으론 갈수록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이나 다름없으니까요. 더구나 지금처럼 기준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 이런 조달이 좋을 수가 없죠.

그럼 주주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증권가에서도 '기다리라'는 것밖에 할 말이 없네요. 증권사 열에 아홉은 1분기 실적 발표 이후 목표주가를 내렸고 투자의견도 맘 놓고 '매수'를 부르지 못하고 '중립'으로 제시한 곳도 상당수. 올해 하반기 정부의 전기요금 관련 정책이 어떻게 나오는지 분위기를 봐야 하고, 그때쯤 우크라이나 사태가 해결돼 유가·유연탄 가격도 안정화하는지를 봐야 한다는 거죠.

결론적으로 6개월 뒤:

정권은 바뀌었는데, 한전의 봄은 아직

이 기사는 6월 8일 발행한 앤츠랩 뉴스레터의 일부입니다. 이번 콘텐트가 마음에 드셨다면 주변에 소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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