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BTS에만 반응하는 신경세포가 있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91호 20면

망각하는 기계

망각하는 기계

망각하는 기계
로드리고 퀴안 퀴로가 지음
주명진 옮김
형주

‘인간 마음과 기억에 관한 최고의 안내서.’ 미국 아마존의 이런 서평에 선뜻 동의할 수 있는 뇌과학책이다.

인간 정체성의 기초가 되는 기억은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는지, 기억의 신비를 해결하면 지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지, 미래의 인공지능은 인간처럼 느끼고 사고할 수 있는지 등을 두루 건드렸다. 내용만 정통하다고 빼어난 안내서가 되는 건 아니다. 어려운 대목이 없지 않지만 대체로 알기 쉽다. 아르헨티나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독일에서 응용수학으로 박사 학위를 딴 다음 영국 레스터대 교수로 있는 저자가 대학 2학년생을 염두에 두고 최대한 쉽게 썼기 때문이다. 분량도 착하다. 200쪽 남짓이다.

가장 솔깃한 내용 두 가지를 꼽으라면 우선 제니퍼 애니스턴 뉴런이다. 할리우드 여배우 말이다. 이 여성의 사진, ‘제니퍼 애니스턴’이라는 컴퓨터 스크린 상의 이름, 이 이름의 음성발음에만 반응하는 신경세포(뉴런)가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어려워하는, 인물 식별의 비밀이다. 저자가 발견했다. 오프라 윈프리 뉴런, 한국에 적용하면 BTS 뉴런도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저자는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루크 스카이워커에 반응하는 뉴런이 또 다른 캐릭터 요다에도 반응했다는 점을 보인다. 뉴런들은 연관 관계까지 저장하는데, 이런 특성이야말로 기억의 핵심, 비밀이라는 것이다.

솔깃한 다른 하나는 얼핏 제니퍼 애니스턴 뉴런과 반대되는 이야기인 것 같다. 인간 두뇌가 쏟아지는 무수한 정보를 최대한 기억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오히려 효율적으로 기억을 거부하는 기관이다. 책의 영어 원제 ‘The Forgetting Machine’처럼 말이다. 저자는 “우리는 거의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는다”라고까지 말한다. 마치 영화 보듯 과거의 특정 장면을 기억한다는 생각은 환상, 뇌의 구축물에 불과하다고 한다. 인간 두뇌는 매우 적은 정보만으로 현실을 구성해 내고, 기억은 지극히 불안정하며, 기억은 의식의 표면에 떠올리는 것만으로 내용이 바뀔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 버리고 일부만 기억하는 과정에서 뉴런들은 서로 연결된다. 헵 세포 집합체라는 것을 형성한다. 뉴런들의 연결 강화가 기억 형성·저장의 기초라는 것이다. 빠져드는 뇌과학책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