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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처럼만 해라"…덴마크 왕세자도 감탄한 한식기의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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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4일 찾은 서울 종로구 통의동의 한 갤러리. 덴마크 왕실 브랜드로 유명한 로얄코펜하겐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주제는 다름 아닌 ‘한식기 컬렉션 완성.’ 247년 전통의 덴마크 브랜드인데, 한식기로 전시를 한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인터뷰]한국로얄코펜하겐 오동은 대표

로얄코펜하겐은 지난 2013년 첫 한식기를 선보였다. 밥과 국, 반찬 그릇 등 총 5개 세트로 한상 차림이 가능한 구성이었다. 로얄코펜하겐이 특정 국가에 현지화한 제품을 출시한 것은 한국이 최초였다. 올해 가장 최상위 등급 라인에서 밥과 국, 반찬 그릇 등이 새롭게 나오면서 주요 8개 라인에서 모두 한식기가 출시됐다.

오동은 한국로얄코펜하겐 대표가 25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아트스페이스3 전시장에서 열린 로얄코펜하겐 한식기 라인 완성 기념 전시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우상조 기자

오동은 한국로얄코펜하겐 대표가 25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아트스페이스3 전시장에서 열린 로얄코펜하겐 한식기 라인 완성 기념 전시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우상조 기자

현지화된 제품 출시, 한국이 최초

행사장에서 만난 오동은 한국로얄코펜하겐 대표는 10여 년 전 한식기 출시 과정이 “녹록치 않았다”며 “제품을 구분하는 기준이 부피와 입구 지름 정도였던 본사를 설득하는 게 특히 어려웠다”고 했다.

밥을 담는 그릇은 안쪽으로 갈수록 적당히 넓어지면서 깊어야하고, 바닥의 굽도 너무 높지 않고 넓고 얕아야한다. 또 밥그릇과 국그릇이 적당히 포개지는 크기여야하며, 밥·국·반찬이 세트 구성이면서 음식을 담았을 때 조화로워야한다 등. 적당한 용량의 볼이면 되겠거니 생각했던 본사는 까다로운 한국의 요구를 이해하지 못했다. 설득 끝에 약 6개월 만에 최초의 한식기 디자인이 만들어졌다. 제품이 나온 뒤에도 젓가락을 일본식으로 가로로 눕혀 놓고 사진 촬영을 하는 등 소소한 실수도 이어졌다. 오 대표는 “덴마크 태생이지만 한국의 정서를 담은 그릇이 완성되기까지 한국 음식 문화의 세세한 부분을 모두 반영해야해 쉽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오는 하반기 출시 예정인 로얄코펜하겐 최상위 라인 한식기 세트. [사진 로얄코펜하겐]

오는 하반기 출시 예정인 로얄코펜하겐 최상위 라인 한식기 세트. [사진 로얄코펜하겐]

어렵게 완성된 만큼 한식기 라인은 한국로얄코펜하겐의 성장을 이끄는 히트작이 됐다. 현재 전체 매출의 20~25%를 한식기가 차지하고 있다. 전체 700개 제품 중에서 35개 정도인 한식기가 전체 매출의 4분의 1을 차지한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 첫 론칭 당시 네 달치 물량을 발주해 약 한 달 만에 모두 매진시켜 본사를 놀라게 했다. 오 대표는 “기존에 로얄코펜하겐의 입문을 찻주전자와 찻잔으로 했다면 한식기가 나온 뒤에는 한식기로 입문하는 고객이 늘었다”고 했다. 특히 혼수를 준비하는 이들 사이에서의 인기가 높았다. 이는 자연히 젊은 고객의 유입으로 이어졌다.

본사 세계화의 마중물 된 한국의 성공 사례

한식기의 성공 이후 덴마크 본사에서는 새로운 시장에 진입할 때 한국의 성공 사례를 매뉴얼로 만들어 활용하기 시작했다. 오 대표는 “한식기의 성공이 우리나라에서만 잘되고 끝이 아니라 결국 로얄코펜하겐 본사의 세계화 전략의 마중물이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블루 플레인 라인의 밥, 국 그릇 찬기 3종 세트. [사진 로얄코펜하겐]

블루 플레인 라인의 밥, 국 그릇 찬기 3종 세트. [사진 로얄코펜하겐]

10여 년 전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 불과했던 한국은 현재 로얄코펜하겐에서도 전 세계 3위에 해당하는 시장이 됐다. 1위는 유럽, 2위는 일본이다. 몇십 년은 빨랐던 일본 시장에 비해 한국 시장은 후발 주자지만 성장성은 더 크다. 중장년층 VIP 위주로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 아무래도 성장이 정체된 일본과 달리, 한국은 혼수를 중심으로 신규 고객의 유입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 문화의 파급력이 향상되면서 본사에서도 한국을 중요한 시장으로 본다.

한식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플래그십 스토어(대표 매장)에도 한식기가 진열되어 있다. 현지에서 일부 쌀밥(steamed rice)을 인식하는 고객이 늘면서부터다. 한식기 중 밥그릇을 아이스크림 볼이나 오트밀 등을 담는 용기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2년 전 한국을 방문했던 프레데릭 크리스티안 덴마크 왕세자도 한식기의 밥그릇을 보고 아이스크림 볼로 활용하기 좋겠다는 얘기를 전했다고 한다.

고가 식기에 투자하는 MZ들

올 하반기에 출시되는 최상위 라인의 한식기는 최근 달라진 소비 트렌드를 반영한다. 주로 30대가 중심인 혼수 시장에서 식기에 투자하는 비용은 해마다 느는 추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신혼여행 비용이 절제되다 보니 예산을 좀 더 현실적인 곳에 쓰는 경향이 나타났다. 명품 시장이 성장하면서 그릇도 나만의 특별한 것을 찾는 이들이 늘어났다.

무엇보다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는 데 있어 보다 다양해진 방식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 단지 명품 가방이나, 보석이 아니라 매일 먹고 마시는 식기에 투자하는 이들이 늘었다. 오 대표는  “과거에는 혼수 예산 중 식기에 배당하는 비용이 많이 들지 않았다면, 요즘 젊은 세대들은 매일 먹고 마시는 그릇에 큰 비용을 투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단지 기능이 아니라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식기를 바라보다 보니 생겨난 변화”라며 “밥 한 끼를 차려도 내가 만족스러워야 한다는 젊은 세대들의 소비 성향이 반영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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