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래서 의사는 '철통면허'…환자 죽자 시신 버려도 다시 의사 [그법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그법알

그법알’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기사와 관계 없는 이미지.

기사와 관계 없는 이미지.

[그법알 사건번호 39] 과실치사·사체유기로 처벌받아도 의사 면허는 재발급된다고요?

지난 2012년, 산부인과 의사 A씨는 지인에게 이런 부탁을 받았습니다. "수면장애와 두통, 소화불량이 심하니 잠을 푹 잘 수 있게 해달라." 술을 마신 상태였던 A씨는 밤에 자신의 병원에서 이 지인에게 13개의 약물을 주사했습니다. 프로포폴과 유사한 향정신성의약품인 미다졸람, 수술용 전신마취제인 베카론, 수술용 국소마취제인 나로핀과 리도카인 등을 섞었습니다. 결국 지인은 약 2시간 만에 숨졌습니다.

문제는 그 후에도 벌어졌습니다. 이 사건이 드러날 경우 자신이나 병원에 문제가 될 것이라 생각한 A씨는 시신을 유기하기로 한 겁니다. 숨진 지인의 차에 시신을 싣고, 이 차를 한 공원에 주차해두는 방식이었습니다.

결국 A씨는 업무상 과실치사, 사체유기, 마약류관리법 위반, 의료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의사 면허도 2014년 8월부터 취소됐습니다. 그런데 A씨는 2017년 8월에 보건복지부에 면허를 다시 내달라고 신청합니다. A씨는 다시 의사 면허를 받을 수 있을까요.

관련 법령은!

의료법 제65조를 먼저 살펴볼까요. 우선 보건복지부가 A씨 면허를 취소한 이유는 1항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형 집행이 끝나지 않은 경우를 결격사유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에 따라 면허가 취소됐더라도 일정한 조건이 되면 다시 면허를 재교부받을 수 있습니다. 2항 때문인데요. '면허 취소의 원인이 된 사유가 없어지거나 개전(改悛)의 정이 뚜렷하다고 인정되면 면허를 재교부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의사 면허가 '철통 면허'로 불리죠. 시간제한은 있습니다. A씨처럼 마약류관리법 위반으로 결격 사유가 있을 경우 3년 안에 재교부는 안 됩니다.

2014년 8월에 면허가 취소된 A씨가 3년이 지난 2017년 8월에 면허를 다시 내 달라고 신청한 이유입니다. 이 신청을 받아든 보건복지부는 2020년 2월에 보건의료인 행정처분심의위원회를 엽니다. 위원 6명이 서면심의에 참석했고, 5명이 '불승인' 의견을 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면허를 다시 내주지 않자, 결국 A씨는 이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습니다.

이미 형을 다 살았기 때문에 형실효법에 따라 결격 사유가 없어졌고, 면허 취소 시점으로부터 3년이 지났고, 개전의 정이 뚜렷하다는 게 A씨 주장이었습니다. 의료법에서 규정하는 재교부 요건을 모두 다 채웠다는 겁니다.

법원 판단은?

1심 법원인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김순열 부장판사)는 지난달 A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재판부는 우선 절차적인 문제부터 들여다봤습니다. 보건복지부가 면허 재교부를 거부하면서 명확한 근거와 이유를 제시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심의위원회 결과가 어땠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사유 때문인지 특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재판부는 "처분 당사자가 처분 취지를 알고 있었다거나, 이후에 알게 됐다고 하더라도 행정청이 '이유 제시 의무'를 위반한 건 달라지지 않는다"고 본 대법원 판례도 인용했습니다.

A씨의 '개전의 정'도 인정됐습니다. 재판부는 A씨에게 일어난 변화에 주목했습니다. 아내와 이혼하는 등 가정이 파탄된 점, 10년 가까이 의료기기 판매업·변호사 사무실 사무장 등을 전전하며 생활한 점, 유족들에게 배상금이 지급된 점 등을 언급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A씨가 후회와 참회의 시간을 보냈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는 게 재판부 판단입니다. 특히 일부 약병이 진열장에 잘못 정리돼 있었던 사실을 모르고 실수로 주입한 것을 A씨가 현재까지 후회하고 있다는 겁니다.

결국 종합적으로 '개전의 정'이 인정되는 상황에서, 보건복지부가 법을 넘어서 면허를 내주지 않은 건 잘못됐다는 게 최종 결론입니다. 재판부는 "A씨가 중대한 과오를 범하긴 했지만, 한 번 더 재기의 기회를 부여해 현장에서 봉사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의료법의 취지와 공익에 부합한다"고 썼습니다. 재판부는 A씨의 나이까지 판결문에 적었습니다. 아직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나이라는 취지로 읽힙니다.

보건복지부는 이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습니다. A씨가 다시 의료 현장에 나올 수 있을지, 법적 다툼은 이어질 전망입니다.

그법알

 ‘그 법’을 콕 집어 알려드립니다. 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든 법률 세상을 우리 생활 주변의 사건 이야기로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함께 고민해 볼만한 법적 쟁점과 사회 변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법률 해석도 발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