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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로만 임금 차별 '무효'...헷갈리는 임금피크 4가지 판별법 [그법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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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법알 사건번호 40] 우리 회사 임금피크제도 위법인가요?

최근 대법원의 ‘임금피크제’ 무효 확정 판결에 웬만한 기업들이 떠들썩합니다. 회사 측 인사 담당자는 물론이거니와 정년이 다가오는 모든 직원들의 월급봉투 두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판결이기 때문이지요. 노동부의 지난해 6월 말 기준 사업체노동력 조사에 따르면 정년제를 운용하는 직원 300인 이상 사업체의 52%, 300인 미만 사업체에서도 21.8%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임금피크제는 근로자가 정년을 앞두고 3~5년 일정한 연령에 도달한 시점에 임금을 차츰차츰 삭감하는 대신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입니다. 사회는 고령화되고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 체계가 주를 이루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의 정년은 보장하되 기업 인건비 부담은 줄여 재원을 청년들의 신규 채용에 쓴다는 취지로 도입됐습니다.

2019년 기획재정부 규탄 공공노련 조합원 투쟁 결의대회. 뉴시스

2019년 기획재정부 규탄 공공노련 조합원 투쟁 결의대회. 뉴시스

그러나 실제로 청년 고용이 늘어난 것도 아닌데 괜히 세대 간 갈등만 조장한다거나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직원들만 뒷방 늙은이 신세를 겪게 한다는 등 각기 다른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기업은 기업대로 우리나라의 경직된 임금 체계를 감안해 고령자의 갑작스러운 실직을 예방하고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것이고 각고의 진통 끝에 이미 사회적 합의를 이뤘다는 입장을 내세워왔죠.

이런 가운데 대법원이 지난 26일에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나이’만을 기준으로 임금을 깎는 방식의 임금피크제는 고령자고용법이 금지한 연령에 따른 차별 행위이기 때문에 “무효”라고 판단했습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 경영계는 “임금피크제가 제도화된 상황에서 혼란을 초래했다”며 우려하고 한국노총 등 노동계는 환영하는 정반대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여기서 질문

이들의 질문은 하나로 모입니다. ‘언제, 어떤 경우 합법적으로 고령 직원들의 임금을 깎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관련 법률은

고령자고용법 4조의 4는 “사업주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근로자 또는 근로자가 되려는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라고 연령차별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나이만을 기준으로 임금과 복리후생, 모집·채용·전보·승진·퇴직·해고 등에서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에는 연령차별이라고 했습니다. 연령 외의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특정 연령집단에 ‘특히’ 불리한 경우에도 연령차별로 봅니다.

그러니까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불리한 결과, 즉 임금 삭감을 하면 차별이라는 것인데요. 여기서 ‘합리적인 이유’라는 말을 잘 기억해주세요.

법원 판단은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이 도입한 정년보장형 임금피크제를 놓고 ‘나이만으로 임금을 깎지 말라’는 대법원의 첫 무효 판단이 나온 것 역시 고령자고용법의 ‘합리적인 이유’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해당 규정에 나오는 ‘합리적인 이유’를 충족하기 위해서 4가지 기준을 언급했습니다.

➀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➁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➂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 ➃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해 쓰였는지 입니다. 이런 기준들의 합리적 이유 없이 단순히 연령을 기준으로 근로자의 임금을 ‘획일적으로’ 삭감하는 것은 차별이며, 위법하다는 것이죠.

[중앙포토]

[중앙포토]

대법원 판결 취지 자체가 설사 노사가 합의했다하더라도 임금피크제의 효력은 개별 사안마다 고령자고용법을 준수했는지와 관련해 달리 판단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보니 앞으로 개별 사례별로 각급 법원의 판단은 더욱 중요하게 됐습니다.

대법원 판결 이튿날인 27일에는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13부(부장판사 홍기찬)가 한국전력거래소 직원 3명이 제기한 임금 청구소송을 27일 기각됐는데요. 이 판결은 정년을 기존 56세에서 60세로 연장하면서 연장된 구간에 대해서만 도입한 임금피크제는 연령차별이 아니며 유효하다는 취지입니다. 대법원 판결 취지에 비춰보면 ➀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이 인정됐다고도 해석되네요.

지난 2월에는 임금피크제 시행으로 인건비 절감액을 신규 채용 인건비로 우선 충당한 인천환경공단의 경우 만 58세 이상 직원들의 연령을 차별한 제도가 아니어서 위법하지 않다는 인천지법 민사11부(부장판사 정창근)가 판결이 있었습니다. 대법원 판단에서 언급한 ➃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해 쓰인 경우네요.

대법원 판결의 피고였던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은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기존 정년(61세)을 늘리지도 않았으며, 임금피크제로 임금을 삭감한 55세 이상 직원들의 업무 내용이 변경되거나 목표 수준이 낮게 설정돼 업무량이 감소하지도 않았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었습니다.

반면 지난해 7월에는 대구고법 민사3부(부장 진성철)가 대구환경공단 직원들이 낸 소송에서 근로자 과반수로 구성된 노조가 임금피크제 도입에 합의했다면 동의서를 안 낸 직원에게도 임금피크제에 따른 연봉을 지급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경우는 임금피크제 도입의 효력을 다툰 재판이어서 대법원 판결과 같은 연령차별은 아예 언급되지 않았죠.

이처럼 쟁점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법무법인‧노무법인들은 ‘우리 회사 임금피크제도 위법이냐’는 문의가 쇄도했다고 하네요. 한 고법 부장판사는 “‘합리적인 이유’에 대한 각급 법원의 판례가 더 쌓여야 좀 더 구체화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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