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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송곳니 발치 비용 80배 차이, 반려동물 병원비 천차만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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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0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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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는 반려인 이재윤(28)씨는 자신을 ‘고양이를 위해 돈 버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매월 소득의 20%를 반려동물을 위한 전용 적금에 붓고, 생활비 절반가량을 반려동물 병원비, 식비, 용품 구매비로 지출한다. 이뿐만 아니다. 고양이 세 마리가 연 1회 건강검진을 받으면 200만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혹여나 입원이나 수술이 필요한 질병에 걸렸을 경우 매주 15만~20만원씩의 병원비를 추가로 지출해야 한다. 이씨는 “식비 정도는 각오했지만, 병원비로 이렇게 많은 지출이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며 “가족 구성원들이 지급하는 비용까지 포함하면 웬만한 직장인 월급 수준”이라고 말했다.

3월 20일 서울동물복지지원센터에서 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하고 있다. [뉴시스]

3월 20일 서울동물복지지원센터에서 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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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게는 수백만원에 달하는 반려동물의 병원비는 반려인들의 주머니 사정에 큰 영향을 준다. 한국소비자연맹이 지난해 동물병원 이용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반려인들은 1회 평균 진료비로 8만4000원씩 지출했다. 응답자 82.9%는 동물병원 진료비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1999년 동물의료수가제가 폐지됨에 따라 병원마다 제각기인 진료비는 반려인들의 애로사항 중 하나다. 2019년 같은 단체에서 진료 항목별 진료비를 조사한 결과 반려동물 송곳니 발치는 최저 5000원부터 최고 40만원까지 무려 80배 차이가 났다. 반려동물의 필수 예방접종 항목인 개 인플루엔자는 최대 5배, 광견병 백신은 3.3배 차이가 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웅종 연암대학교 동물보호계열 교수는 “사람의 경우 통일화된 질병 코드가 있고, 그에 따른 수가가 매겨지는 방식인데 동물병원의 경우 코드가 병원별로 제각각”이라며 “의료비에 인건비, 임대료까지 포함돼 제반 비용까지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반려동물이 병에 걸리면 경제적 부담이 만만찮다. 반려인 김혜림씨는 “커뮤니티에서 반려견 치주염 수술에 200만원을 들인 경우, 만성 신장염에 걸린 반려묘 치료비로 매달 100만원 이상 쓰는 등의 사례를 자주 본다”고 말했다. 최혜주씨는 “반려동물은 의료보험 시스템이 없다 보니 언제 문제가 닥칠지 몰라 경각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치료가 잘 됐는지, 과잉진료가 아닌지 확인할 수단이 없는 점도 문제다. 지난해 췌장 질환으로 반려묘를 잃은 김모(21)씨는 “수백만원의 병원비를 지불하면서도 치료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며 “반려묘가 입원할 경우 24시간 지켜볼 수도 없고, 전적으로 의료진의 진찰에만 의지해야 한다는 게 답답했다”고 토로했다. 이렇다 보니 반려인 사이에서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목돈을 저축하고, 과잉진료가 없는 병원을 공유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2017년 농림축산식품부 연구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동물병원 진료비는 미국, 독일 등 선진국과 비교해 낮은 편이다. 대한수의사회 관계자는 “매달 납입하는 건강보험료를 포함하면 사람과 동물 의료비 차이는 크지 않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반려인에게 의료비가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사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이상 전액 스스로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려인구 증가에 발맞춰 출시된 ‘펫보험’도 병원비 경감에는 큰 효과가 없다. 보험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국내 반려동물보험 가입률은 0.25%로, 스웨덴(40%), 영국(25%), 일본(6%) 등에 비해 현저히 낮다. 김경선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펫보험은 보험료가 월 5만원에서 최대 30만원 이상으로 고가인데다 사람 보험보다 커버리지가 낮아 선뜻 가입하기 쉽지 않은 구조”라며 “보험사 입장에서도 진료비가 제각각이다 보니 손해율 계산이 어려워 판매에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고액의 진료비가 반려동물 유기의 주원인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등록된 유기동물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대다수는 어리고 건강한 개체다. 전진경 동물권행동 카라 대표는 “치료비가 고액으로 느껴지는 측면이 있지만, 그것을 이유로 반려동물을 유기하게 된다는 건 핑계에 불과하다”며 “병원비가 부담된다면 애초에 키우지 않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수의사들은 소비자 체감 의료비를 낮추기 위해선 무엇보다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서울 송파구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박모 원장은 “과거 진료수가제를 폐지해 진료비를 시장에 맡기고 제각각 매기게 한 주체는 정부”라며 “이를 통일하려는 노력 또한 정부가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반문했다. 대한수의사회 관계자는 “동물 진료비에 부과된 부가세 폐지, 의료 소모품을 사람 병원과 동일한 가격으로 공급, 동물병원 진료비에 대한 세액공제 등 몇 가지 규제만 개혁해도 반려인들의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국회에서 심사 중인 부가가치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반려인들의 의료비 부담이 소폭 줄어들 전망이다. 미용·성형목적을 제외한 반려동물 진료비를 부가세 면세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이다. 이웅종 교수는 “부가세를 폐지한다고 해도 병원이 물가나 관리비를 핑계로 진료비를 인상하면 인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정부 차원에서  중성화 수술이나 필수 예방접종 등 반려인들이 자주 이용하는 의료서비스부터 가격을 평준화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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