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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 사진으로 남긴 북한산 친구…“2년간 사귄 20마리 대부분 안락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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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0호 11면

SPECIAL REPORT 권도연 사진작가 인터뷰

권도연 작가는 북한산에서 2년간 80여 마리의 개를 만나 20여 마리와 친구가 됐다. 그중 하나인 ‘검은입’이 반달이 뜬 늦은 오후에 바위에 올라 주변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권도연]

권도연 작가는 북한산에서 2년간 80여 마리의 개를 만나 20여 마리와 친구가 됐다. 그중 하나인 ‘검은입’이 반달이 뜬 늦은 오후에 바위에 올라 주변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권도연]

개를 만났다. 북한산의 한 계곡에서. 굶주려 홀쭉해진 배, 흙 묻어 회색으로 변한 털… . 놓치면 안 된다는 듯이, 바위를 발톱으로 박박 긁으면서 어린 개는 ‘필사적으로’ 기자를 따라왔다.

또 개를 만났다. 북한산으로 향하는 도로에서. 차 한 대가 신호등을 무시하고 내달렸다. 그 뒤로 늙은 개가 숨을 헐떡이면서 ‘필사적으로’  쫓았다. 차는 속도를 높였고 개는 도로 한가운데에서 주저앉았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의 이형주 대표는 “두 경우 모두 유기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가 밝힌 유기견 급증 시기는 2018년과 2020년 사이. 해마다 100마리 안팎이 무인센서카메라에 잡혔다. 2017년에는 31마리였다. 이 시기 북한산의 개를 유심히 살펴본 사진작가가 있다. 권도연(42) 작가다. 권 작가는 2017년 3월 외래종 식물을 촬영하기 위해 북한산을 찾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개를 만났다. 이후 그의 초점은 그들에게 쏠렸다. 권 작가는 2019년에 북한산 개들에 대한 사진 전시회를 열었고, 2021년에 이를 책으로 엮어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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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서울 난지창작스튜디오에서 만난 권도연 작가가 자신이 찍은 ‘뾰족귀’ 사진을 앞에 두고 앉았다. 신인섭 기자

지난 20일 서울 난지창작스튜디오에서 만난 권도연 작가가 자신이 찍은 ‘뾰족귀’ 사진을 앞에 두고 앉았다. 신인섭 기자

“북한산 개의 초상(肖像)을 남겨주기로 했어요. 꼬박 2년간 매일 산에 올라갔어요. 그렇게 시작한 겁니다.”

지난 20일 서울 난지창작스튜디오 1층 작업실. 권 작가가 말했다. 창가에 모로 놓인 책 중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야생동물흔적도감』이었다.

#2010년 안팎 유기된 개들의 자손일 가능성  

책을 참고해 개를 찾으러 다녔나. 맨땅에 헤딩 아닌가.
“먼저 책을 봤다. 막막했다. 처음 4개월 가까이 허탕이었다. 사진을 찍을 수 없겠다 싶었다. 그러다가  ‘찡찡이’라는 친구를 만났다. 작은 소리로 찡찡거려서 붙인 이름이다. 인기척에 되레 겁을 내더라. 슬슬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왜 북한산 개를 찍게 됐나.
“그들은 버려지고 살아가고 사라진다. 먹을 것이 없다. 병에 취약하다. 그래서 2년 넘게 살지 못한다고 한다. 지자체에서 한 마리당 50만원에 포획전문가에게 의뢰한다. 북한산 개들은 포획(혹은 구조)돼 보호소에 옮겨지면 여지없이 안락사당한다. 그들의 초상을 찍고 싶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동물보호연대가 동물보호관리시스템을 분석해 지난 1월 발표한 2021년 유실·유기동물은 11만6984건에 달한다. 1건당 여러 마리인 경우도 있어, 마릿수로 따지면 이 수치보다 늘어난다. 농림축산검역본부는 2020년 13만401마리가 유실·유기됐다고 발표했는데, 당시 건수로는 12만8717건이었다. 이 통계는 전국 280여 곳의 보호소에 ‘입소한’ 동물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북한산 유기견은 포함되지 않는다.

유기동물이 보호소에 들어가면 절반 가까이 사망(자연사+안락사, 2021년 41.5%, 2020년 46.7%)한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현재 유기동물보호소에서 동물을 입양하려는 수요가 적고, 보호소에서 수용할 수 있는 개체 수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안락사가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권 작가는 북한산 에서 지내는 개를 ‘친구’라고 표현했다.

‘뾰족귀(왼쪽)’와 ‘잿빛눈’이 북한산의 한 능선에서 가족 나들이를 하고 있다. [사진 권도연]

‘뾰족귀(왼쪽)’와 ‘잿빛눈’이 북한산의 한 능선에서 가족 나들이를 하고 있다. [사진 권도연]

친구 중에 포획돼 안락사된 경우가 있나.
“북한산에서 80여 마리를 만났다. 그중 20마리와 친구가 됐다. 그런데 2~3년간 대부분 포획돼 안락사 됐다. 용맹한 리더이자 아빠 ‘흰다리’도, ‘검은입’ ‘잿빛눈’ ‘뾰족귀’도…. 앞서 언급한 ‘찡찡이’와 마찬가지로 내가 지어준 이름이다. 흰다리와 검은입 사이에서 낳은 ‘단비’도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평안하게 살라고, 가뭄에 내리는 비라는 뜻으로 이름 붙였다.”
중성화 안된 산속 개들은 번식력이 대단해서 문제라는데.
“검은입이 6마리를 낳았다. 5마리를 절벽으로 밀어내더라. 내가 계속 그 5마리를 검은입 곁에 놔뒀지만 소용없었다. 검은입은 단비 하나만 택했다. 이런 척박한 곳에서는 키울 수 없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찡찡이’가 등산객이 대부분 하산한 해 질 무렵에 모습을 드러냈다. 권도연 작가는 북한산 개를 찍은 위치에 대해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사진 권도연]

‘찡찡이’가 등산객이 대부분 하산한 해 질 무렵에 모습을 드러냈다. 권도연 작가는 북한산 개를 찍은 위치에 대해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사진 권도연]

현재 북한산의 개들은 인근 은평·미아 등 뉴타운과 삼송·창릉 지구 등의 개발이 이뤄진 2010년 전후로 산에 든 유기견들의 자손일 가능성이 크다. 이 대표는 “북한산 유기견은 인근 개발이 이뤄지면서 이주민들이 버리거나 풀어주면서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거기에 더해 지속적인 유기가 더해졌을 수 있다는 게 동물복지단체의 의견이다. 기자가 목격한 어리고 노쇠한 개의 ‘필사적 몸부림’은 각각 2012년과 2014년에 벌어졌다.

유실·유기동물 숫자는 6~8월에 한해의 정점을 찍는다. 지난해 28.7%, 2020년 26.7%가 이 기간 발생했다. 반려동물 번식기와 휴가철이 겹치는 시기다. 동물복지단체에서는 “갓 태어난 동물을 키우기가 부담스러워 휴가지에 유기하거나, 날이 더워져 문을 열어 두면서 유실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반려동물로서는 ‘여름의 비극’인 셈. 권 작가는 “산에서 지내게 된 친구들은 먹을 것도, 마실 것도 부족해 비극 중의 비극”이라고 말했다.

개는 어디에 사나.
“알려줄 수 없다. 그들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자면, 리더격인 친구는 사람을 잘 살펴볼 수 있는 바위 위에 자리 잡는다. 약한 아이들은 흙을 파서 살더라. 일몰 즈음에 활동한다. 그런데 멧돼지와 동선, 먹을 것까지 겹친다. 개와 멧돼지는 산에서 라이벌이 되고 말았다.”
실제 개와 멧돼지가 싸우나.
“개들과 함께 낮잠을 자기도 했다. 하산할 때 그 친구들이 산 입구까지 배웅한 적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멧돼지와 맞닥뜨렸다. 리더 ‘흰다리’가 앞장서 용감하게 싸우더라. 나중에 흰다리가 포획된 뒤 유기동물 앱을 통해 추적해 보니, 보호소에서 ‘소심하고 겁이 많음’이라고 표현했더라.”
멧돼지와 싸우면,  사나운 것 아닌가.
“내가 무섭다고 느낀 적은 없다. 야생화한 이미지인 ‘들개’로 표현하는 것부터가 선입견을 부를 수 있다. 모바일로 들개 이미지를 검색해 봐라. 그렇게 뜨는 ‘대표 이미지’들이 더 무섭다. 내 사진들이 소셜네트워크(SNS)에 침투해, 그 무서운 이미지들을 제발 대신했으면 좋겠다.”
북한산에서 만난 '사자털.' 권도연 작가는 2021년 낸 책 『북한산』에 이렇게 썼다. '놈은 목덜미 털을 사자 갈기처럼 곧두세우고 몸을 앞으로 내밀어 으르렁거렸다.' [사진 권도연]

북한산에서 만난 '사자털.' 권도연 작가는 2021년 낸 책 『북한산』에 이렇게 썼다. '놈은 목덜미 털을 사자 갈기처럼 곧두세우고 몸을 앞으로 내밀어 으르렁거렸다.' [사진 권도연]

# 친구가 된 20마리 중 1마리만 남은 듯
하지만 대부분의 시민은 북한산 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지난 22일 북한산 산성입구에서 등산객 50명에게 ‘산속에서 개를 만나면 어떤가’라고 물어본 결과, 38명이 “공포를 느낀다”고 응답했다. 4명은 “무섭지 않다”, 8명은 “관심 없다”고 밝혔다. 김아현(51, 경기도 성남)씨는 “산속 개란 말만 들어도 무섭다”고 말했다. 김영철(43, 서울 서초구)씨는 “반려견이 있지만, 산에서 개를 만나는 건 다른 문제”라며 “하산 중 유기견 무리를 본 적이 있는데, 섬뜩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임모(52, 경기도 고양)씨는 “이제 개도 산의 일부가 되지 않았나 싶다”며 “유기견도 사람을 피하는데 그다지 무섭다고 느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북한산 유기견 문제는 2012년 이슈화됐다. 시민의 불안과 생태계 교란이 이슈를 이끌었다. 포획전문가가 나섰고, 언론에서는 앞다퉈 포획 장면을 르포 형식으로 다뤘다.

북한산 유기견의 근본 원인은 뭘까. 이형주 대표는 “문제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무책임하게 버리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동물복지문제연구소가 지난해 시민 2000명에게 유기동물 발생 이유를 물어본 결과, 76.5%가 ‘책임 의식 부족’을 꼽았다. 제도적인 문제도 있다. 전문가들은 반려동물 등록 갱신제, 사전교육 이수제, 중성화 수술 지원 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동물 유기에 대한 적극적인 수사와 처벌도 필요하다고 한다. 이 대표는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증가했지만, 책임감 있는 시민 의식과 동물을 인도적으로 보호하고 관리하기 위한 제도, 이를 시행하기 위한 행정력은 같은 속도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 삼박자를 개선해야 전반적인 동물복지 수준이 향상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반짝이는 서울의 야경을 뒤로 하고 해진 뒤 모습을 드러낸 북한산 개. [사진 권도연]

반짝이는 서울의 야경을 뒤로 하고 해진 뒤 모습을 드러낸 북한산 개. [사진 권도연]

권 작가의 ‘북한산 친구’ 20마리 중 누가 남았을까.

“찡찡이가 있는 것 같긴 해요. 포획전문가가 쏜 마취 주사를 맞고도 산에서 버텼어요. 매번 먹을 것도 뺏긴, 상처투성이 ‘왕따’인데, 단비와 결혼도 했어요. 하지만 최근에 북한산에 갔을 때 흔적만 봤을 뿐…찡찡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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