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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6개월 시한부 사육 당하던 돼지 ‘새벽이’ 곧 세 살 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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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0호 10면

SPECIAL REPORT

마당을 돌아다니면서 풀을 뜯어 먹고, 코로 흙을 파 냄새를 맡는다. 자원활동가가 아침 저녁으로 챙겨주는 불린 콩과 보리, 찐 고구마, 과일도 먹는다. 본연의 습성대로 땅을 코로 파내는 루팅을 하고, 진흙 목욕을 즐긴다. 나무 그늘이 드리운 땅을 파내 시원한 흙 위에서 낮잠을 잔다. 새벽이생추어리에 살고 있는 돼지 새벽이의 하루다.

지난 2019년 경기도의 한 양돈농가에서 공개 구조된 돼지 ‘새벽이’. [사진 DxE]

지난 2019년 경기도의 한 양돈농가에서 공개 구조된 돼지 ‘새벽이’. [사진 DxE]

새벽이생추어리는 2020년 5월 경기도에서 문을 연 국내 최초 ‘생추어리(Sanctuary)’다. 생추어리는 위급하거나 고통스러운 환경에 놓여있던 동물이나, 야생으로 돌아가기 힘든 동물들의 피난처이자 안식처다. 1980년대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주 등에서 시작됐다. 동물이 가능한 평생 온전한 모습으로 살 수 있는 공간으로 입양처를 찾는 동안 보호하는 임시보호소나, 동물을 수단으로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동물원과는 다르다. 생추어리에서는 거주 동물이 곧 주인이다. 이곳엔 돼지 ‘새벽이’와 ‘잔디’가 살고 있다.

새벽이는 2019년 7월 동물권단체 ‘다이렉트액션에브리웨어(DxE) 코리아’가 경기도의 한 양돈농가에서 ‘공개구조’한 돼지다. DxE 활동가들은 아기 돼지 사체와 오물이 뒤엉켜 악취가 진동하는 농가에서 아픈 아기 돼지 새벽이와 노을이, 그리고 이미 죽은 별이를 데리고 나왔다. 별이에겐 장례식을 치러줬고, 노을이는 치료 과정 중 떠났다. 생후 2주차에 구조할 때부터 이빨과 꼬리가 잘려 있었고 거세돼 있던 새벽이만 살아남았다. 거세는 ‘고기가 됐을 때 냄새가 안 나게’라는 이유 때문이다. 잔디는 실험용 돼지다. 2020년 8월 잔디를 소유하고 있던 회사는 한 동물병원에 잔디의 안락사를 요청했다. 다행히 당시 동물병원이 생추어리 활동가에게 연락을 취했다. 실내생활을 하던 잔디는 지난해 2월 생추어리에 입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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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추어리에 살고 있는 새벽이의 모습. [사진 새벽이생추어리]

생추어리에 살고 있는 새벽이의 모습. [사진 새벽이생추어리]

공개구조는 신원을 공개한 활동가들이 동물을 향한 폭력이 발생하는 현장을 공개하고 동물을 데리고 나오는 행동이다. 현행법상 ‘절도’로 불법이다. 하지만 동물이 물건으로 취급되는 사회를 거부하는 국내외 동물권 단체 DxE는 위험에 처한 동물을 구하기 위해 ‘구매’가 아닌 공개구조를 택했다. 새벽이 공개구조에 참여한 DxE 코리아 활동가 은영씨는 “공개구조는 동물이 감금·학대·학살되는 현재 체제를 거부하는 직접행동”이라며 “처벌을 감수하면서라도 새벽이를 구조함으로써 ‘동물을 죽이는 게 합법이고 살리는 게 불법인 현행법’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해당 돼지 농가 주인이 신고를 하진 않아 법정 공방은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재산으로 취급받던 동물을 최근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늘었다. 새벽이생추어리 운영활동가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동물의 생명이 지닌 가치가 인간과 얼마나 다른지를 묻는다. 활동가 무모(31)씨는 “생추어리는 인간이 아닌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사회에서 생존한 생명체들이 존재 자체로 살아갈 수 있는 안식처이자 피난처”라고 말했다. 피난처인 이유는 새벽이와 잔디가 매일 수많은 돼지가 죽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구조돼 살아남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활동가 누리(30)씨는 “통상 6개월 만에 도축되는 돼지가 자연에서 살아가는 모습 등 가려져 있던 동물의 모습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들은 더 다양한 동물들이 본연의 모습 그대로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꿈꾼다.

현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곰 생추어리를 계획하고 있다. 2026년부터 곰 사육이 전면 금지되며 사육곰 농장에 있는 곰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환경부는 전남 구례군과 충남 서천군에 곰 생추어리를 건립할 예정이다. 활동가 누리씨는 “동물원이나 체험 공간으로 쓰이지 않도록 본연의 목적에 맞는 시설과 환경이 잘 갖춰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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