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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칩과 인터넷 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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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장강명 소설가

장강명 소설가

작업 중인 원고들을 마치고, 내후년쯤 쓰려고 벼르는 논픽션이 한 편 있다. 나름 내가 거대한 혁명의 중요한 목격자라고 생각해서다. 인터넷이 한국에서 대중화되는 현장을 지켜봤고, 그게 매스미디어 권력들을 무너뜨리는 과정도 안팎에서 체험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한국 사회의 각 부문에 일으키는 크고 작은 영향은 지금도 겪고 있다.

그 논픽션에서 파헤쳐 보려는 중요한 현상 한 가지는 이렇다. 지식이 정보로 쪼개지는 것. 적어도 현시점까지의 인터넷은 빠르고 짧은 정보를 선호한다. 디바이스도, 플랫폼도, 매체도, 이용자도 그렇다. ‘빠르고 짧다’는 표현은 어쩌면 동어반복인데, 인터넷 세상에서 어떤 정보가 빨리 전파되려면 짧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불러일으킨 큰 변화
짧게, 자극적으로, 중독적으로
지식이 정보로 쪼개지고 있다

한데 지식은 대개 짧지 않다. 지식이란 정보들이 논리에 따라 연결되어 있는 구조물이다. 깊은 지식일수록 규모가 크고 구조가 복잡하다. 따라서 문맥이 중요하다. 책 한 권을 문장 단위로 분리해서 마구 흐트러뜨린 뒤 순서 없이 읽는다면, 그 책의 모든 글자를 다 본다 해도 제대로 이해하는 내용은 아주 적을 게다. 그게 인터넷이고 소셜미디어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서 빠르게 잘 퍼지는 자극적인 정보에는 최근에 ‘밈’이라는 호칭이 생겼다. 인터넷이 보급되기 훨씬 전에 ‘밈’이라는 단어를 만든 리처드 도킨스는 자신이 창시자임에도 그 개념을 마뜩잖아 했다. 인터넷에서 번지는 맥락파괴적 유행 요소를 밈이라고 부르는 건 한 겹 더 부적절하게 들리는데, 그럼에도 그 현상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

인터넷 밈과 가장 가까운 현실의 물건은 아마 감자칩 아닐까? 감자칩은 얇고, 자극적이고, 한 번 포장지를 뜯어 먹기 시작하면 멈추기 어렵다. 여기서도 ‘얇다’는 말과 ‘자극적’이라는 말은 얼마간 동어반복이다. 감자칩을 자극적으로 만들려면 기름에 코팅된 면적을 넓혀야 하고, 소금을 비롯한 양념을 최대한 많이 뿌려야 한다. 즉 얇아야 한다.

감자칩이 중독적인 게 과연 맛있어서일까. 감자칩이 정말 맛있는 음식이라면 씹고 있는 내내 맛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입에서 우물거리고 있다 보면 금세 즐거운 맛이 사라진다. 그래서 꿀떡 삼키고 다음 감자칩을 향해 손을 뻗는다. 감자칩의 맛은 깊은 풍미가 아니라 입에 넣어서 부술 때 느껴지는 기름과 양념의 타격감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밈이 주는 즐거움도 얄팍한 타격감에서 온다. 그걸 볼 때 뇌에서 잠시 도파민이 분비되었다가 사라진다. 그러면 우리는 얼른 마우스 왼쪽 버튼으로 손가락을 뻗어 다른 하이퍼링크를 클릭한다. 그 짓을 두 시간 동안 쉼 없이 반복하기도 한다. 그러면 감자칩 한 통을 비웠을 때처럼 속이 메슥거린다. 섭취한 정보의 양은 많지만 영양은 적다.

살면서 가끔 감자칩 한두 통 뜯어먹는 일이 뭐 그리 대수일까. 인터넷 밈의 재치를 적당히 즐기는 게 뭐 그리 잘못일까. 그런데 밥을 거르고 식사 대신 감자칩으로 열량을 섭취하게 되면 그때는 문제다. 그리고 나는 인터넷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본다. 지금 한국의 언론은 인터넷 밈을 흉내내며, 뉴스 플랫폼은 밈-뉴스로 채워지고 있다.

지난해 네이버에서 사람들이 어떤 기사를 가장 많이 봤는지 기자협회보가 조사했다. 1위는 213만여 명이 읽은 ‘이혼 후 자연인 된 송종국, 해발 1000m 산속서 약초 캔다’였다. 기자가 그 내용을 취재한 것도 아니었다. 방송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기사였다. 2위는 페이지뷰 195만여 회를 기록한 ‘대구 상간녀 결혼식 습격 사건… 스와핑 폭로 논란’이었다.

상위 50위 기사들이 대체로 그런 식이었다. 이런 글 많이 읽으면 지식과 지혜가 쌓이나? 이런 ‘콘텐트’들이 결혼이나 명예에 대해 반성적 사고와 통찰을 얻을 기회를 제공하나? 그렇지 않다는 걸 당신도 알고 나도 알고 네이버 대표도 안다. 그런데 왜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는 걸까. 기자들이 다 기레기가 되어서인가. 그렇게 믿는다면, 그런 믿음 역시 최근에 생긴 밈에 불과하다는 게 내 의견이다.

기실 밈은 감자칩보다 더 해롭다. 남이 감자칩을 아무리 먹어도 나만 조심하면 내 몸은 균형을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지식 대신 밈을 섭취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에서는 모든 이에게 건강한 삶의 길이 막힌다. 그렇다면 감자칩 제조사를 규제하듯 밈 생태계의 주요 행위자들도 관리해야 할까? 이런 문제의식을 품고 천천히 논픽션을 구상해보려 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감자칩도, 밈도 줄이려 한다.

장강명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