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아랍계 난동에 골머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지난 6일 프랑스 남부 소도시 볼정블랭의 아랍이민 거주지에서 청소년 난동이 발생, 프랑스 정계 및 사회가 충격을 받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막대한 비용을 투자, 슬럼화 되고 있는 아랍이민 거주지의 생활환경 개선 작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해 왔으나 이번 난동사건으로 적지 않은 상처를 입게됐다.
장 마리 르펭이 이끄는 극우 국민전선은 즉각 이 사건이 미테랑 대통령의 관대한 대 이민정책 때문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미테랑 정부는 또 이번 사건으로 국민전선에 가입하는 백인들이 늘어날 것을 우려,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프랑스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약4백만 명. 이중 알제리·모로코·튀니지 등 북아프리카 지역. 아랍계 이민이 약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건물 관리인·청소원·간호보조원 등의 직업에 종사하면서 프랑스 도시의 빈민가에 살고 있다.
이런 빈민가는 프랑스 전국에 약4백여 곳으로 각종 범죄와 마약이 난무하는 사회문제의 온상이 돼왔다.
이번에 폭동이 일어난 볼정블랭시는 프랑스 정부의 빈민가 환경개선 노력이 가장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자랑하던 곳이라 충격은 더 큰 실정이다.
인구 4만5천명의 소도시인 볼정블랭시는 아랍이민 거주지 마뒤토르에 1천2백만 달러(86억원)를 투자, 거리에 밤나무를 심고 낡은 아파트를 보수해 깨끗이 정비했었다.
그밖에 새 도서관과 탁아소도 짓고 특히 청소년들의 여가선용을 돕기 위해 암벽 등반연습용 탑을 세우는 등 각별한 관심을 쏟아온 곳이다.
난동은 46m 높이의 자주색 플래스틱을 씌운 이 탑의 준공식이 있은지 1주일만에 일어났다.
난동은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아랍계 청년이 경찰차와 충돌, 사망하면서 시작됐다.
이 난동은 아랍계 청소년들이 마뒤토르에 새로 세워진 상가지역 상점들 대부분을 약탈, 방화하고 화염병과 돌을 던지는 폭동으로 이어졌다.
아랍계 청소년들은 이번 사건의 원인은 단 한가지 경찰이 그들을 괴롭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다른 도시인 리옹시 인근지역에서만 경찰과의 충돌로 아랍계 청소년 10명이 숨졌으며 사건을 현지 조사한 조사단도 사건 발단의 가장 큰 원인으로 경찰의 자세를 지적했다.
아랍계 청소년들은 이곳 경찰들이 아랍계 이민들에게 아무 때나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고 피부색을 두고 모욕적인 언동을 일삼는 등 이들의 감정에 상처를 입혀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랍계 청소년들의 주장은 단순히 외형적 개선만의 생활개선 계획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 모욕을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프랑스 정치 지도자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 사회가 4백만명의 외국 이민들이 더 이상 사회적·경제적「한계지대」에 머물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특히 소외된 이민 자녀들을 프랑스 사회에 융화되도록 각별한 조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미테랑 정부는 지난 88년 총선에서 이같은 빈민가 생활개선 정책을 통해 외국인 추방을 주장하는 국민전선의 정치적 공세를 눌렀고 국민전선은 이 선거에서 후보 1명만이 당선하는 참패를 했었다.
국민전선은 미테랑 정부의 빈민가 재활정책이 정착되기 전인 지난 86년 선거에서 외국인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을 촉발, 35명의 후보를 당선시키는 성과를 거두었었다.
그러나 88년 총선에서 패배했던 국민전선은 볼정블랭시 사건을 미테랑 정부에 대한 최선의 공격무기로 삼고 86년의 대승리를 되찾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이번 아랍계 난동사건의 앞으로 프랑스 정국에는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강영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