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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위기" 외치며 출마한 李…"전대 나오지 마라" 선그은 친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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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서는 이재명 전 경기지사가 8일 인천 계양산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출마 선언 기자회견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서는 이재명 전 경기지사가 8일 인천 계양산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출마 선언 기자회견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오늘 저 이재명은 (대선 패배에 따른)책임의 길에 나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은 8일 6·1 전국동시지방선거와 함께 열리는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이 고문은 이날 인천 계양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깊은 고심 끝에 위기의 민주당에 힘을 보태고 어려운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 위험한 정면 돌파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현장에는 이 고문의 열성 지지그룹인 ‘개딸’을 비롯해 전국에서 2000여명(주최 측 추산) 가량의 지지자들이 모여들었다.

대선 패배 후 단 61일이 지난 이 날, 군중 앞에 다시 선 이 후보는 “제가 사실은 죄인 아니겠나. 그래서 문밖에 나가기가 힘들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현관문을 나와본 것이 오늘이 네 번째”라며 운을 뗐다. “낙선 인사하시던 선거운동원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처음으로 문밖에 나갔다. 우리 문재인 대통령께서 마지막으로 고생했다고 술 한 잔 주시겠다고 해서 (청와대) 갔다 온 것이 두 번째다. 세 번째는 말하기 어려운 사유고 집 현관문 열고 나온 게 오늘이 네 번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 정치적 안위를 고려해 지방선거와 거리를 두라는 조언이 많았고, 저 역시 조기 복귀에 부정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그러나 당이 처한 어려움과 위태로운 지방선거 상황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저의 모든 것을 던져 인천부터 승리하고, 전국 과반 승리를 이끌겠다”고 덧붙였다.

이 고문의 출마 그림은 인천 지역의 요구→비상대책위의 호응→본인의 결단의 모양새로 숨 가쁘게 그려졌다. 지난 5일 박찬대 등 일부 인천권 국회의원들은 “민주당이 지선에서 승리하게 할 유일한 카드는 이 전 지사의 출마”라고 기자회견을 했고 이튿날엔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나서 “(이 고문) 계양 차출은 지방선거 승리로 윤석열 정부의 독주를 막고 국민과 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는 ‘민주당의 명분’”이라고 주장했다.

박남춘 캠프 보고서엔 “인천시장 선거는 ‘대선 2차전’ 안돼”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6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왼쪽부터 윤호중 공동비대위원장, 박 공동비대위원장, 박홍근 원내대표. 뉴스1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6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왼쪽부터 윤호중 공동비대위원장, 박 공동비대위원장, 박홍근 원내대표. 뉴스1

그러나 그림 완성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5일 인천 지역 의원 회견에 민주당 소속 10명 중 4명만 참석했다. 당시 인천권 친문그룹에선 “낙선 운동을 하겠다”는 표현까지 나왔다. 6일 박 위원장의 공개 요청 전 까지 비대위 내부에선 찬반 양론은 갈렸고, 지난달 말 이 고문의 출마를 부추겨 온 송영길 전 대표를 향해 “계양을과 이 전 지사를 멋대로 연관시키지 말라”는 경고를 던졌던 윤호중 비대위원장도 이때까진 유보적 입장이었다. 비대위는 지난 6일 단 100분의 논의 끝에 이 고문을 인천 계양을 후보로 결정했다. 비대위 관계자는 “박 위원장이 모두발언으로 이 고문 공천을 못 박는 것에 대해 다들 만류했지만 박 위원장이 내질러 버려 사후 논의 자체가 어색한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이 고문의 출마 명분은 박빙 구도가 된 경기·인천 등 수도권 선거 지원 필요성에 맞춰져 있지만 당 내부에선 여전히 회의론이 만만찮다. 지난달 말 박남춘 인천시장 후보자 캠프가 작성한 내부 전략 보고서의 결론도 “이번 인천시장 선거는 ‘대선 2차전’이 아니라 로컬(지역) 중심 선거로 가야 한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포커스그룹인터뷰(FGI·집단심층면접조사)를 토대로 한 보고서였다. 박남춘 캠프에 속한 인사는 “조국 국면에서 이탈한 ‘탈민주’ 성향 유권자 표심을 회복하려면 인천선거가 ‘검수완박’ 등 진영대결로 치닫는 게 맞지 않다는 분석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인사는 “비대위는 이같은 데이터는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적합도 조사를 한 번 없이 이 고문을을 무작정 공천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민주당은 재보궐 선거가 열리는 7곳 가운데 전략공천관리위원회 검토도 없이 비대위가 전권으로 공천을 결정한 지역은 인천 계양을이 유일했다. 이 과정을 잘 아는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적합도 조사 한번 안 해봤으니 어떤 전망이 옳다라고 단언할 순 없지만 이 고문의 출마가 ‘반성 없는 독주’ 이미지를 덧씌워 선거 전체 판세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이었다”며 “비대위가 사법리스크 등을 고려해 정무적으로 판단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친문 진영 “방탄 조끼는 입어라 그러나 전당대회는 안돼”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과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1월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과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1월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이날 출마선언으로 이 전 지사의 출마 여부를 둘러싸고 벌어진 당내 갑론을박은 당분간 수면 밑으로 가라앉을 전망이다. 친문그룹에 속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이미 출마가 공식화된 상황에서 더 이상의 왈가왈부는 불필요하다”면서도 “지방선거 결과가 안 좋으면 이 고문 책임론이 거세게 일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지방선거 이후다. 당 내에선 이 고문의 8월 전당대회 도전은 상수로 여겨지고 있어 이 고문 본인의 당락과 무관하게 친문그룹 등 반이재명 세력과의 일전이 머지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친문으로 분류되는 서울권 초선 의원은 “‘사법리스크가 있는 상황이니 ‘방탄조끼’는 입어라, 그러나 전당대회는 나오지 마시란 뜻을 이 전 지사 측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재선 의원은 “대선 패배에 대한 반성없이 보궐선거에 뛰쳐나온 이 고문이 당권까지 접수하겠다고 나서면 걷잡을 수 없는 당내 분열이 생길 것”이라며 “분당 사태를 부를 수도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순장조 내각’ 에 참여했던 인사들이 갈등의 중심에 설 가능성이 크다. 전해철·황희·이인영·박범계 장관은 이달 차기 장관이 임명되면 국회로 복귀한다. 중립지대에 속한 한 재선 의원은 “대선 국면에선 너도나도 친명을 하는 분위기였지만 송영길 전 대표와 이 고문의 연쇄 출마가 당내 역학 구도에 어떤 변화를 줄지 예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대선 국면에서 문재인 정부 내각 출신으로는 일찍이 이 고문 지지를 선언했던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전날 페이스북에서 “박지현은 에둘러 ‘민주당의 명분’이라는 표현을 썼으나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 화살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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